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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졌다는 편지 - 장석남

Joyfule 2010. 7. 12. 09:26
      
      꽃이 졌다는 편지 -  장석남  
      1.
      이 세상에서 
      살구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 
      복숭아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 
      꽃이 만들던 그 섭섭한 그늘 자리엔 
      야윈 햇살이 들다가 만다고 쓰고 
      꽃 진 자리마다엔 또 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 
      살구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 
      복숭아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 
      그러니까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써야 할까 
      내 마음 속에서 
      진 꽃자리엔 
      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 
      다만 
      흘러 가는 구름이 보이고 
      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 
      달이 뜨면 
      누군가 아이를 갖겠구나 혼자 그렇게 
      생각할 뿐이라고 
      그대로 써야 할까 
      2. 
      꽃 진 자리에 나는 
      한 꽃 진 사람을 보내어 
      내게 편지를 쓰게 하네 
      다만 
      흘러 가는 구름이 잘 보이고 
      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 
      그 바람에 
      뺨을 기대어 보기도 한다고 
      나는 오지도 않는 그 편지를 
      오래도록 앉아서 
      꽃 진 자리마다 
      애기들 눈동자를 읽듯 
      읽어 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