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의 정 - 정영숙
해마다 여름이 오면 지리산 자락에 계시는 고모로부터 연락이 온다.“ 종호에미냐? 언제휴가 올끼고? 올 때 꼭 전화하고 온네이 ,,라고.
고모의 가냘픈 전화 음성을 듣고 난 나는 그날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발을 덤벙덤벙 헛짚고 다닌다. 그리고 마음은 고향산천을 뛰어다닌다.
아름다운 내 고향 함양.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과 쓰레기로 오염된 땅이지만 어릴 때는 감격스리 아름다운 산천이다.
우리 가족은 일주간의 휴가를 얻어 고모의 집을 향하여 버스를 탔다. 버스의 창틈으로 코를 간지럽게 하는 그윽한 풀꽃 향기는 온몸을 사그라지게 녹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차창 유리알 사이로 필름처럼 돌아가는 고모의 소탈한 표정은 나로 하여금 무언의 미소를 짓게 하였다.
항상 인정덩어리를 손에 쥐고 계시는 고모를 만난다는 보고픔에 버스가 천천히 가는 것 같은 성급함이 왔지만, 가슴을 누르고 누르는 사이에 차는 고모의 집 입구까지 왔다.
“고모! 고모!,, 큰소리를 지르며 부르니까 밭에서 일을 하다가 달려온 고모는“아이구 내 강생이 왔구나,, 하고 만나자마자 내 엉덩이를 톡톡 때린다. 아들딸이 결혼을 하여 손자까지 얻은 나를 보고 고모는 강생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나는 고모 앞에서는 강아지가 되어 졸랑졸랑 꼬리를 흔들며 돌아다니고 싶다.
고모는 자그만 한 체구인데 키가 크고 잘생긴 아들을 넷이나 낳아 두 아들은 외국에 두 아들은 한국에 살고 있었다. 며느리들이 어찌나 효성이 지극한지 보는 이로 하여금 기쁨과 시샘이 졸졸 흐르게 한다.
복뎅이 우리고모, 점심 식사 후 산 수박을 툭 쪼개어 나의 입에 넣어주며 “내 새끼 많이 묵어라이. 내 강생이 순하기만 했지 욕심이 없어서 만날 동생들 한테 뺏기기만 하고 , 아이 내 귀여운 강생이-,,
또 고모부가 참나무에서 따온 표고버섯을 맛있게 복아 주며 “새끼야, 많이 묵고 많이 커라이,, 가만히 앉아 웃고 있던 딸의 참았던 웃음이 한꺼번에 폭발하여 밥상이 좀 어수선하게 되었다. 딸이 하는 말“고모할머니는 엄마가 지금 몸무게가 몇 키로 그램인데 먹고 커라 합니까?,,하며 비식비식 웃었다.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토종꿀에다 약초, 열매 등을 따와서 입에 넣어준다. 또 얼굴을 쓰다듬어 면서“ 내 강생이 어찌 그리 큰오빠를 쏙 빼 닮았을까! 나는 천국가신 오빠가 생각나면 강생이 사진보고 오빠를 부른 다이,, 그 말에 나도 눈물이 핑 돈다. 어머니도 목멘 소리로 “그건 맞다. 종호 에미가 꼭 오빠를 닮았지. 얼굴, 식성까지 꼭 닮았지. ,,
칡넝쿨 걷어치우며 산길 깊숙이 들어가면 아무도 모르는 야외 목욕탕이 있다. 하나님과 우리들밖에 아무도 모르는 독탕 개울이다. 우리들은 여기가 -에덴동산- 이라고 즐거워하며 물장난을 치고 논다. 고모는 달콤한 향기 풍기는 꽃가지를 꺽어와 나의 머리에 꽂아주며 “새끼야 우찌 이리 예쁠꼬, 목욕 깨끗이 해라이-,,
또 계곡을 타고 올라가면 피서객들이 텐트를 처 놓고 짚시 촌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 계곡의 물은 힘차고 맑게 흐른다.
나는 물살을 잡으며 올라 가다가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하였다. 뒤에서 미심쩍어 따라오던 고모는 내가 발을 헛디딜 것 같이 느끼면 깜작 놀라 “아이구 업어줄까?,, 참으로 어이가 없어 배꼽을 잡고 웃을 지경이다. 겨우 40kg이 조금 넘은 고모가 70kg의 질녀를 업고 물살을 혜 쳐 간다니...
내 새끼 많이도 컷 다며 엉덩이를 두드리는 고모를 몇 일간 보아오던 딸이“고모할머니는 엄마만 너무 좋아 하는데 이모가 질투 내겠다,,며 미안 적어 하였다. 그 말에 공감이 같지만 낸들 막을 둑이 없어 정이 터져 나오는 대로 흘러버릴 뿐이다.
내일 떠나자는 약속을 한 우리 가족들은 6일간의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도란도란 하였다. 그중 딸이 느끼는 바를 말하면서 엄마는 쬐끔 반성해야 된다고 지적하였다.
왜냐하면, 고모할머니는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 하시는데 엄마는 조카와 질녀들한테 호랑이 같이 무서운 고모로 통하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깨닫고 고치라는 것이었다.
충고를 듣고 보니 맞는 것 같다. 나도 고모인데 조카와 질녀들은 나만 보면 무서워서 살살 피하고 말을 안 한다. 대학졸업을 한 조카들, 꼬막내기 조카들, 심지어는 한집에 살다싶히 한 여동생의 아들딸도 이모가 무섭다며 인사만 하고 나간다.
오늘날까지 한 번도 그들에게 꾸중이나 작난 삼아 헛 주먹도 올린 적이 없는데 왜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졌는지 몰라서 고모에게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고모 ! 나는 고모가 좋은데 조카들은 나를 피하거든요. 어찌하면 돼요? 내손에 가시가 돋친 것도 아니고 내 눈에 권총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만 보면 슬슬 피해 도망만가니, 아마 내가 죽고 나면 울어줄 조카 놈들은 하나도 없을 것 아닙니까,, 하고 반 농담으로 물었더니 고모가 펄쩍 뛰며 “ 고 년놈들이 피해? 네가 얼마나 순하고 좋은데, 어릴 때 좀 말이 없어서 내가 땅바닥을 치고 말을 시켰다만, 그래도 입을 열었다면 씨가 되는 말을 하여 요게 뭐가 되여도 될 것 같아 내가 얼마나 자랑을 하고 다녔는데,, 라며 열을 올렸다.
질문의 판단을 정확하게 하지 않고 그저 나를 어릴 때 업고 기른 사랑만 남아 내편만 들고 있으니 답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말수가 적고 했다면 씨가 꼭 박히도록 했다는 그 냉정함이 나로 하여금 반성의 요지가 되었다.
이름 모를 새들이 푸드득 푸드득 날고 밤이면 꾸르륵 꾸룩 시를 읊는 듯 한 운율을 느끼게 하는 지리산 깊은 곳에, 여름 오면 구름과 산이 한 몸 되어 어울리는 산꼭대기에 살고, 봄 가을은 들꽃을 꺽어 면류관을 쓰고 다니는 고모부부는, 겨울이 오면 마을로 내려와 장작불을 지피며 자연인으로 사시는데 그 삶이 시냇물 같다.
초록의 산과들은 내 영혼을 분홍빛으로 곱게 물들이고 돌 뿌리를 차고 가는 하얀 물살은 오염된 회색의 물을 깨끗이 정화시킨다.
낭만이 조개껍질처럼 깔린 고향의 정취를 가슴과 눈에 담고 우리는 숨이 막힐 듯한 도심의 생활터전으로 돌아왔다. 내년여름에 또 고모님이 오라는 정다운 음성을 들으리라 생각하고---.
조시 =
고모님을 보내면서
만나면 만날수록 기쁘고
사랑이 바닷물처럼 출렁이는 고모님
순진한 마음씨에 타인을 욕하거나
괴롭힐 줄 모르는 고모님
만나서 이야기하면
가을 들녘 같이 푸근하고
구름에 떠 있듯이 신난 정의 주머니를
차고 있었는데
아, 뜻밖에 중병 얻어
아들 넷 손자 여섯 두고
훌훌히 가셨습니다
가시는 그 길도 마음씨 같아 따스함의
바람 뿌려주는데
육체의 진한고통 세수하듯 씻어 버리고
맏며느리 막내며느리 지극정성 간호 받다가
잠자듯이 숨쉬듯이 하늘 길을 가셨습니다
고모님!
이국땅에 세 아들 보내고
하늘나라 남편 보내고
오로지 막내아들 낙을 삼아 일가친척
낙을 삼아 사랑 주며 사셨습니다
주와 함께 사셨습니다
전화벨이 울릴 땐 ‘효자아들 내 아들’
조카들 만날 때면 ‘내 강생이 내 새끼’
다정한 음성도 그 반가운 모습도
이제는 눈가루 되어 하늘을 갑니다
고모님!
무지개 같이 곱고 보석처럼 황홀한
천국에서 앞서간 가족들과
성도들의 찬양 들으며
영원히 사시옵소서
춤추며 사시옵소서
우리들도 그 날을 기다리며
하이얀 눈길을 걷겠습니다
1995년 12월 24일 질녀 정영숙
*피아노교사 42년 역임
* 계간 크리스챤 문학 수필 당선
* 월간 아동문학 시 부문 당선
* 미 국무성과 에피포토(epipoto)문학사 주최수필 문학상 수상
* 고려문학대상
* 전국재소자 문예작품 심사 17년 연임
* 수필집:어머니만 있다면
* 작사집:정영숙이 지은 마음의 노래
* 음반 수록 시18편
* 작곡집 수록 시80편
* 사랑샘공동체 월간지 칼럼니스트
* 그외 신문. 잡지.교도소. 인터넷 문서선교 수십회
* 고려문학회 부회장 역임.
* 21세기 한국교회음악연구협회 작사분과 회원
* 한국아동문학. 크리스찬 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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