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끈을 풀다 / 이윤경

Joyfule 2014. 7. 21. 09:22

 

 

 

끈을 풀다 / 이윤경

 

 

끈을 풀었다. 끈의 단단한 매듭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손으로 붙잡고 입으로 물고 당긴 끝에 고리 지어진 것들이 서서히 풀렸다. 손톱 밑이 얼얼해 왔다. 왜 아닐까. 한 사람의 몸을 붙들어주고 지탱해 주던 끈, 삶에 대한 강렬한 힘으로 잡아당기던 것이었기에 그리 만만하게 풀릴 수는 없었겠지. 땀에 절고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해진 끈을 들고서 난감해졌다. 이 끈을 어찌 처리할까? 마침 베란다 구석에 놓인 커다란 보따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님이 입으시던 옷가지 속에 끈을 차곡차곡 접어 넣었다.

 

지난 봄부터 아버님은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밤에 누우면 발바닥에서 열이 나고, 후끈거린다고 하셨다. 그런 아픈 다리로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가자고 하셨다. 큰애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째의 옷을 입혀 할아버지 손을 잡혔다. 셋째는 등에다 업고 유모차를 접어 힘겹게 택시를 탔다.

 

나서기를 잘했다. 아이들도 아버님도 함박웃음이다. 아이가 풍선장수 앞에 섰다. 할아버지 손을 끌고 가더니 기어코 노란 텔레토비 풍선을 샀다. 매 주 하나씩 사니 단골이라고 오백 원을 빼 주었다. 아이는 저만치 앞서서 팔랑팔랑 뛰어갔다. 아이는 가야 할 코스를 이미 다 외우고 있었다. 얼룩말을 지나 공작새 앞에 잠시 섰더니, 사자 우리 앞으로 뛰어갔다. 다리가 아프신 듯 아버님은 멀찍이 벤치에 앉아 잠든 아이에게 부채질을 해 주셨다.

둘째의 울음소리, 또 끈을 놓친 게지. 벌써 노란 텔레토비는 방긋 웃으며 아이에게서 멀어져갔다. 끈을 손목에 묶어 뒀는데 답답했던지 그새 풀어버렸다. 삼천 원을 날려 버리고, 또 사달라고 할아버지를 잡고 조르다가 자장면 먹자는 말에 아이는 텔레토비를 잊어버렸다. 동물원 입구에 있는 중국집도 우리의 단골집이었다. 손자가 할아버지를 빼닮았다는 말에 맛에 상관없이 아버님은 꼭 그 집만 가신다. 긴 면발을 작게 잘라 한 가닥씩 아이에게 먹이는 것도 아버님 몫이었다.

 

시집 와서 연이어 딸 둘을 낳아도 싫은 내색을 한 번도 않으시더니, 시동생이 결혼해서 아들을 낳자 아버님의 사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질투로 열이 났다. 질투의 힘이랄까? 셋째가 들어섰고, 나와 아이들은 그전보다 더한 사랑을 받았다. 셋째는 아버님의 사랑을 이어주는 끈이 되어 주었다. 셋째의 두 돌이 지난 후부터 동물원 가는 일은 끝이 났다. 아이가 유모차에서 내려 제 발로 또박또박 걷고, 제법 다리에 힘이 붙어 뛰기도 할쯤, 아버님의 다리에서는 힘이 다 빠져 나가 제대로 서는 것도 어려워졌다. 유모차가 서 있던 자리에 휠체어가 들어왔다. 아버님을 태운 휠체어를 밀면, 막내는 손잡이에다 작은 손을 얹고, 얼굴이 새까맣도록 따라다녔다.

 

아이들은 아버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시기 편하도록 안방 벽에다 긴 쇠 파이프를 박고 끈을 매었다. 화장실 변기 앞에도 끈을 달았다. 아버님은 질긴 끈을 의지 삼아 몸을 일으키고 눕혔다. 딱 맞는 튼튼한 끈을 찾다가 아이들이 쓰던 기저귀를 꺼내왔다. 친정집으로 함이 들어오던 날, 함을 묶어서 지고 왔던 광목을 잘라 가장자리를 감치고, 폭폭 삶아 기저귀를 만들어 두었다. 우리를 결혼시키고 아이들을 키웠던 끈이, 이제는 아버님을 붙들어 주었다.

 

어느 날부터, 끈을 당기는 횟수가 줄어들다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 끈은 축 늘어져 매달려 있었다. 아버님의 등과 엉덩이에서 물집이 잡히더니 이내 피부가 벗겨지고 진물이 흘렀다. 물을 채워 넣은 욕창 매트를 깔고, 연고를 바르고 햇볕을 쬐여도 성난 염증은 가라앉지 않고 서서히 온 몸은 헐고 있었다. 네 살이 된 막내는 아픈 할아버지 옆에서 놀다가, 뼈만 남은 팔을 베고 낮잠을 잤다.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손자를 바라보며, 통통한 볼과, 작은 귓바퀴를 쓰다듬던 아버님, 생명이 서서히 빠져 나가는 순간에도 아들을 지나 손자로 이어지는 끈이 있어 행복한 듯,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쥐고 계셨다.

 

내 아이들이 세상을 살면서 누구에게 그런 사랑을 또 받을 수 있을까? 나보다 내 아이들을 더 사랑해 주시던 분, 남편의 말처럼 누워 계시기만 해도 힘이 되 주시던 아버님이 떠나셨다. 깨끗하게 닦은 몸 위에 새 옷들을 입혀 드렸다. 세상과 연결된 모든 끈들을 다 잘라 냈는데, 흙이 될 육신을 싸매는 끈들이 너무 많았다. 버선을 신기고 대님 끈을 매고, 발목을 끈으로 묶고, 무릎을 묶고, 얼굴위로 명목을 덮고, 또 끈으로 묶었다.

 

사람의 삶은 태어난 순간부터 뱃속 끈을 자르면서 시작된다. 끈을 맺고, 끈을 잇고, 자르는 과정들이 삶이리라. 마지막 가는 길, 끊어버린 세상의 끈들이 아쉬워서일까, 태어난 그때처럼 끈을 온몸에 감고 아버님은 떠나셨다.

삼우날, 산소 앞 공터에서 옷가지를 태웠다. 활활 타는 불길 속에서 무명 끈이 녹아 들고 있었다. 문득, ‘쉬’ 라는 시가 떠올랐다. 환갑이 지난 아들이 아흔 넘은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듣고, 시를 썼다는 시인, 그가 말하는 길고 뜨신 끈. 붙들어 매고 싶은 아들과 힘겹게 풀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온 우주가 조용하겠다고 했다. 이제 불길이 꺼졌다. 옷가지도 끈도 한 줌 재로 묻혔다. 붙들어 매야할 끈도 풀어 내야할 끈도 사라졌다. 단지, 또 하나의 끈처럼 남편이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비탈진 산길을 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