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야인시대 / 송명화

Joyfule 2014. 7. 18. 10:10

 

 

 

야인시대 / 송명화

 

한 남자가 걸어나온다. 중절모 아래로 보이는 그의 얼굴에 지난한 생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삶에 쫓겨 종종거리는 이들로 혼란스러운 우미관 앞길에서 그는 한쪽 어깨를 앞세우며 모자를 고쳐 쓴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허공을 가른다. 곧장 나를 향해 꽂히는 그 눈빛에 가슴이 서늘하다. 동공으로 뱉어내는 허무와 다짐에 강철 같은 미소가 흐른다. 묘한 그의 캐릭터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본다. 아는 것만큼 본다는 말은 한결 의미심장한 말이지만 단순하게 보면 하나의 영상물은 대체로 보이는 만큼만 느끼게 된다. 행여 그것과 관련된 자신의 체험이 있거나 연결되어지는 상상을 할 수 있다면 좀더 깊이 있는 감상을 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드라마 「야인시대」를 감상하는데 좀더 만전을 기하기 위해 내 절친한 친구인 김 선생처럼 열렬한 시청자는 김두한의 전기도 구해 읽고 그 시대의 정치나 사회상도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에 있어서 그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는 가치있는 투자를 하기도 한다.

 

드라마를 자주 본다. 그렇지만 나는 김 선생처럼 공부해서 제대로 비평하려고 노력하는 수준 높은 시청자가 되지 못한다. 어떤 때는 사극에서 굴절된 내용을 그대로 믿고 동료와 설전을 벌이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사극이 다큐멘터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한 덕분이다. 오늘 방영된 「야인시대」의 내용으로, 우미관 앞에서 보여준 김두한의 그 복잡 미묘한 표정에 대해 김 선생과 또 설전을 벌인다면 이번에는 역사상 원전에 충실한 정도라든지 배우의 연기 완성도라든지 극의 짜임 같은 문제가 아닌 다른 방향에서 대화를 풀어나가게 될 것이다.

 

인터넷뉴스를 통해 알게 된 극 연출자의 엄청난 비극에 놀란 뒤끝이라서 화면에 클로즈업된 인물의 얼굴을 마주 하는 순간 내 온몸의 통각들이 갑자기 깨어 꿈틀거렸다. 극으로서만 말하는 보이지 않는 얼굴인 연출자의 모습이 주인공의 영상에 덧씌워졌다. 그 영상 속에서 아프게 다가오는 한 아버지의 눈빛을 보았다. 그것은 가슴뼈가 맞히는 기막힌 통증을 경험한 후 진땀을 닦으며 내쉬는 한숨처럼 고독했다. 김두한의 눈빛을 통해 보는 그 사람의 통곡이 고스란히 내 마음에 전해져 와서 화면 속 배경 공간에 핏빛 화소를 퍼뜨렸다. 비명에 간 딸의 울음소리를 견뎌내며 이순의 나이를 오래 전에 넘긴 그 남자는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다. 온갖 강력사건이 다 일어나는 세상이지만 오랜 세월 백년가약을 지키며 살던 남편에 의해 죽음을 맞은 딸의 소식을 듣는다는 것은 어떤 아픔일까. 그의 정서는 블랙홀이 되었으리라. 흐려진 시력으로 터질 듯한 두통을 견디기 위해 밀폐된 공간에서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비탄의 신음을 흘렸으리라.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딸의 보살핌을 받아오던 사위, 내 몸보다 소중한 딸, 남은 이들의 슬픔, 그 아이의 빈소, 신을 부르는 그의 중얼거림이 들리는 듯하다.

 

산 사람은 산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식을 전쟁터에서 잃은 할머니는 평생을 진정되지 않는 가슴으로 조심스레 살았고, 불치병으로 어쩔 수 없이 자식을 먼저 보낸 한 부부는 울음을 베어 물고 말없이 삶의 지난 순간들에 머물러 있다. 가슴에 묻은 자식을 제대로 떠나온 곳으로 돌려보내는 날까지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할 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의 모습에서 큰바위얼굴을 본다. 아래로 처진 눈매와 입매에서 단호한 이 시대의 거인을 본다. 가까운 스텝들도 모르게 비탄만이 가득한 판도라의 상자에 자물쇠를 굳게 잠그고 슬픔을 유보한 채 시청자들의 기대 속으로 돌아온 그의 자세에서 한껏 고양된 우리 조상의 정신세계를 느낀다. 고난과 격동의 세월을 뚝심과 애국심으로 이겨낸 김두한의 이야기를 연출하며 그는 어쩌면 이 시대의 야인이 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직업에 대한 의식이 많이 달라졌다. 생활이 나아졌기 때문일까. 생활의 질을 내세우며 일보다는 가정이 그리고 휴식이나 취미생활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은연중 확산되어 가고 있다. 물론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다. 예전에 누군가가 내게 가장 멋진 사람의 모습을 물었을 때 나는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답하였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이는 아름답다. 예쁜 모습에 흠이라도 날까봐 분노하는 연기도 감독 눈치 보며 종종거리는 공주형 여배우보다는 눈물 콧물 흘리며 눈에서 불이 뚝뚝 떨어질 듯 고함을 질러대는 김희애의 망가진 모습이 더욱 감동적이다. 목젖이 보이도록 화끈하게 웃어대는 전원주의 사발 깨지는 듯한 요란한 웃음소리 또한 얼마나 속이 후련한가.

 

얼마 전 동창들과 가진 회식 자리에서 두 교사의 판이한 행동이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이 선생은 고속도로를 달려 서너 시간이 걸리는 본가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새벽길을 달려 아침 출근시간에 정확히 출근하였다. 며칠 뒤 매사에 활기가 넘치는 젊은 신 선생은 같은 일에 연가를 내고 보결배당을 요구하였다. 무슨 바보 같은 비교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자신이 담임한 아이들을 남에게 맡기는 것은 누가 무어라 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일이라서 나는 경력이 짧은 어린 교사의 당연한 권리 행사를 부러워할 수 없었다. 실제로 몸이 아파도 자신의 다리로 걸을 수만 있으면 권리보다는 의무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교단의 변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까.

 

작업에 지장을 줄까 염려되어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이 열정적으로 큐를 외쳤던 그에게서 이 시대의 진정한 직업인의 모습을 본다. 그가 연출한 많은 극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온 국민의 사고를 자극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 내었다. 그런 그의 전문가적 자질이 억울한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딸에게 자신의 피땀어린 작품을 선물하게 하였고, 그 작품에 성원을 보낸 시청자들의 사랑과 위로를 명부를 찾아가는 노자로 쥐여주게 하였다.

 

정제된 이성으로 억눌렀던 애끓는 아픔을 한없이 토하고 그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가 사랑한 김두한이 자신의 아버지를 역사와 민족에 내주고 자랑스러워했듯이 그도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킬 것으로 믿는다. 개인의 일에 더욱 가치를 두는 풍조가 팽배한 세태에 한 줄기 솔바람 같은 청정한 기운을 세상에 알린 그를 나는 이 시대의 귀감이 되는 장인으로, 또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기억하고 싶다.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끈을 풀다 / 이윤경  (0) 2014.07.21
촌스러운 아나운서 / 이금희  (0) 2014.07.19
달팽이 / 손광성  (0) 2014.07.17
소 / 박시윤   (0) 2014.07.16
밥 / 정성화  (0) 2014.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