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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신달자

Joyfule 2012. 2. 21. 05:52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신달자 (지은이) | 민음사

 






신달자 시인이 자신의 화려한 삶 뒤에 감추어진 처절한 고통의 나날들을 고백하는 에세이다. 뇌졸증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며 시어머니와 어머니의 죽음, 본인의 암 투병 속에서도 잃지 않은 삶과 문학에 대한 열정을 얘기한다.

총 44장의 내용은 시인이 딸 같은 제자인 ‘희수’에게 지난날을 술회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산문 중간 중간에 시인의 고통스러운 삶에 뿌리를 둔 13편의 시가 실렸다. 뼛속까지 새겨진 상처를 온몸으로 고백하는 시인은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 주며 “영원히 싸우고 사랑해야 할 것은 오직 인생뿐”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신달자 -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숙명여대 국문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현대문학」에 박목월의 추천으로 등단했으며, 1964년 '여상 신인여류문학상',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2001년 '시와 시학상', 2004년 '시인협회상', 1998년 춘향문화대상을 수상했다. 평택대 교수를 거쳐, 현재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시집 <봉헌문자>, <겨울축제>, <모순의 방>, <시간과의 동행>, <아버지의 빛>, <아가>, <아버지의 빛>, <열애> 등과,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산문집 <백치애인>,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 <너는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 등이 있다.


    

대학교수인 남편이 결혼 9년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한 달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만 반신불수가 된 남편과 팔순 시어머니, 어린 세 딸아이를 뒷바라지하며 지옥 같은 현실을 헤쳐 나간다. 간신히 학교에 복귀하지만 뇌졸중 후유증으로 사회생활이 쉽지 않은 남편을 물심양면으로 돌보지만, 자괴감과 절망감에 빠진 남편은 시인에게 매질을 하는 등 점점 난폭해져만 간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설상가상으로 시어머니까지 쓰러져 9년 동안 병상에 계시다 돌아가신다. 기구한 운명 앞에 신을 원망하였지만 종교에 귀의한 후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보따리 장사로 생활을 꾸려 가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문학과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한다. 대학교수의 꿈도, 베스트셀러 작가의 꿈도 이루지만 끝내 남편은 세상을 뜨고, 시인마저 유방암 판정을 받는다.

    

그 남자의 죽음
죽음 연습
이제야 나는 너에게 진실의 입을 연다
운명을 받아 안다
결혼은 왜 하는 거니?
서울에는 청파동이 있다
나의 자주색 신혼여행 가방
젊고 싱싱한 눈물이 넘치던 대방동의 아름다운 집
나는 여자에서 어머니가 되었다
죽음의 강
한심하고 한심한
작은 잎새에게도 나는 부끄러웠다
어머니, 피눈물을 닦아 드릴게요
중환자실에는 돌비가 내린다
혜화동 성당을 가다
붉은 울음꽃
기적의 아침이 왔다
시퍼런 채찍이 내 목을 감아 오다
다시 한방병원으로
운명의 구둣발이 내 가슴을 짓밟다
어처구니없이 변해 가는 그의 행동들
그 남자의 첫 강의
이끌어 주소서
암울한 겨울날의 일기
알 수 없는 고통의 높이
걱정하지 말라
벼랑 위의 생
어머니의 죽음
상처에 피는 꽃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또 하나의 비극이 내 등에 업혀 왔다
다시 부는 바람
드디어 학장이 된 그 남자
백치애인의 부활
내 꽃밭에 무지개 서다
등 푸른 여자
푸른 하늘 위로 흰 나비 날아오르다
여보! 비가 와요
사진 한 장과 두 권의 책
나는 다시 아내가 되고 싶다
결혼하지 마!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다
내가 수술대 위에 주인공으로 눕다
꽃밭에서 꽃밭으로


    

“영원히 싸우고 사랑해야 할 것은 오직 인생뿐”

시인 신달자의 화려한 삶 뒤에 감추어진 처절한 고통의 나날들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며 깨달은 인생의 빛과 그림자
그 절망의 늪에서 건져 올린 희망의 메시지

“어쩌면 나는 불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 절체절명으로 불행한 일은 없다. 사람들은 아직 벗어날 방도가 있는데도 너무 일찍 절망하는지 모른다. 인간은 희망에 속는 일보다 절망에 속은 일이 더 많다. 내가 그랬다. 너무 빨리 불행하다고 외쳐 버렸는지 모른다. 그러고는 지쳐 쓰러지고 희망이 없다고 단정했는지 모른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어느 현자는 말했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마음이 편안할 때 그것이 지고의 경지라고. 그래, 나는 지금 물처럼 편안하고 고요하다.”
- 본문 중에서

지상에서 가장 붉고 처절한 울음꽃으로 피어난 시인 신달자
그녀의 붉은 눈물, 노을로 번지며 세상을 끌어안다


“나는 지금 지난 세월이 아주 희미하다. 내가 결혼을 했었는지, 내가 그 남자 때문에 피를 토하며 죽는 고비를 넘겼는지, 내가 암 수술을 받은 환자인지 나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가 쓰러진 것도, 정신병원을 기어오르던 일도, 그가 쥐약을 먹고 널브러져 있었던 일도, 작은집 가듯 자주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도, 내 팔이 부러지고 눈알이 터졌던 일도, 온몸이 멍으로 푸른 바다를 짊어지고 다닌 것도, 하늘과 땅이 딱 들러붙는 생의 이상 현상도, 그가 숨을 거둔 일도 생각나지 않아. 24년이라는 그의 환자 생활 속에서 내가 열두 번도 더 곤두박질하며 죽음 연습을 했던 것도 나는 생각나지 않아. 시어머니가 9년이나 환자로 누워 있었던 사실도 기억나지 않아. 다 모르는 일이야. 나는 모든 걸 잊어버렸어.”
다름 아닌 시인 신달자의 고백이다. 삶의 실존론적 고뇌를 섬세한 여성적 감성으로 표현하며 우리 문학에서 여성 시의 영역을 개척하고 대표해 온 신달자 시인이 자신의 화려한 삶 뒤에 감추어진 처절한 고통의 나날들을 고백하는 에세이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를 펴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며, 시어머니와 어머니의 죽음, 본인의 암 투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과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고통을 이겨 낸 감동적인 드라마로서,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뼛속까지 새겨진 상처를 온몸으로 고백한다.
이 책에서 시인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깨달은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 주며, “영원히 싸우고 사랑해야 할 것은 오직 인생뿐”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질곡의 세월 속에서 탁월한 감수성으로 건져 올린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깊은 사유를 때론 열정적으로, 때론 담담하게 풀어 나가는 시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노라면 삶의 한 고비를 넘어온 여성의 여유로움과 따스함, 모성과 포용력이 느껴진다.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시인의 눈이 뜨겁다.
딸 같은 제자인 ‘희수’에게 지난날을 술회하는 형식으로 4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산문 중간 중간에 수록된, 당시의 감정을 눈물로 쓴 13편의 시는 그녀의 삶이 어떻게 그녀의 시의 뿌리를 이루었는지 여실히 보여 준다.

1
처절한 삶의 싸움

 

 

‘한 젊은 여자가 중환자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흐느끼는 모습이 보인다. 멍한 시선과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손을 보아 너무나 놀란 가슴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모습이다. 며칠이 지나 그 여자가 다시 보인다. 독한 눈빛에서 이전의 두려움에 떨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인가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두 주먹이 불끈 쥐어져 있다. 그러다 고개를 내젓는 모습이 불행한 생각, 불길한 생각이 자꾸만 드는 자신을 질책하며 그 생각들을 애써 떨쳐 버리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뒷모습이 홀가분해 보였다.

 20여일이 지난 어느 날. 마주친 그녀의 모습은 2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삶의 의미를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삶의 희망도, 즐거움도 모르는 감정이 없는 인형과 같았다. 그동안 보아왔던 당당함과 끈질긴 노력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책을 읽으며 남편이 쓰러지고 깨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앞부분을 읽고 저자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아마 저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절한 삶의 싸움이 너무나 솔직하게 적혀있다. 장기 환자를 둔 가족의 자존심과 고통,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은혜를 갚지 못한 죄송스러운 마음, 내가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한 게 후회되는 게 아니라 자존심과 내 어머니께 아무것도 못해준 딸이라는 멍에에 가슴아파하는 저자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온다.

 ‘아프다. 가슴이 미어진다’ 유독 큰 사고가 많아 병원에 자주 입원해 대 수술을 받으셔야 했던 아버지. 언제나 병원에서 병 수발을 들어야 했던 어머니. 낮에는 들녘에서 농사를, 밤에는 병원에서 새우잠을 자며 자신은 챙기지 않고 병수발을 들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심장이 좋지 않은데도 가족과 아버지와 농사일에 신경 쓰며 단 한 번도 힘들다 말하지 않으셨던 어머니. 아마 어머니도 신달자 작가의 마음처럼 지치고 힘겨웠을 것이리라. 오랫동안 뵙지 못한 어머니의 얼굴이 책속 저자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나는 고개를 오르고 다시 오르고, 맨발로도 오르고 가시신발을 신고도 오르고, 넘어지고 깨어지고 터지고 부서지고도 다시 일어나야만 했다” (p.140)

 얼마나 처절했고 얼마나 간절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신불수가 된 남편을 오랜 기간 동안 수발해야 하는 힘겨움. 아이들을 키워야 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을 씻기고 먹이고, 약 달이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증오하면서도 마음에서부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챙겨주는 작가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왔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남편에게 바친 그녀의 인생이 안타까웠다.

 인생을 포기한 남편, 남편의 자존심과 존재감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아내. 아내의 노력에도 자살을 시도한 남편 그리고 정신 이상과 폭행, 정신병원입원 등 아내를 절망과 고통으로 빠뜨린 남편의 모습. 그리고 장기 환자를 둔 가족에게 찾아온 금전적 고통.

 “내 글 한 줄이 10원짜리 동전 하나도 되지 못한 부끄러운 나의 문학”이라는 글에서처럼 인정받지 못하고 쓸모없이 느껴지는 자신의 글에 가슴아파하는 저자의 마음이 묻어난다.

 “내가서면 남편도 설 것이다. 내가서면 아이들도 서게 될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시작해야 했으며 그대로 무너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손에 불끈 힘을 주었고 그 현실을 순응하였다.” 장애 남편,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정신 이상이 있는 남편을 버리고 도망간 아내들은 많다. 하지만 작가는 절대 무너지지 않았고 자신을 속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남편의 고통을 이해했고 고쳐 주리라 마음먹었다. “그 가슴 썩는 냄새를 나는 안다…….(중략).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쾅하고 쏴버리고 싶은 내면의 용광로 같은 광기를 안다.... 다 안다. 다 안다” 남편의 고통을 그녀는 이해했고 자신이 삶에 고통과 절망만 안겨준 남편이 마지막 세상을 떠나갈 때 마음속에서 그동안 제발 빨리 죽어 달라 외치던 목소리가 아닌 제발 곁에 있어 달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고통과 원망의 순간에서 죽음이라는 강을 넘는 순간 모든 원망은 산화되어 아프기 전 남편과의 추억과 좋은 기억들만을 간직한 채 외로움의 그늘에 혼자 남지 않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인 것이다.

 책을 읽으며 한 여인이 겪은 고통의 시간에 같이 가슴아파했고, 잃어버린 삶의 시간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두 번째 농사(인생)를 준비한다는데. 두 번째 농사만큼은 외롭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