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수채화 - 양순태
후두둑 후두둑 베란다 천정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귀가 열린다. 휴일을 맞아 혼자서 집안을 정리 중인 차분한 심경에 파문을 일으키며 나의 大정원 남산으로의 산책을 충동질 한다. 비 내리는 가을산의 운치는 상상만으로도 매혹되어 가벼운 방수옷을 걸치고 집을 나선다.
굵은 빗줄기가 요란스레 내리치며 짓궂게도 반긴다. 혀끝에 묻어 드는 비 맛이 생소하다. 꿋꿋한 의지의 표상이며 시민의 귀감이 되는 남산은 빗물을 흠뻑 품은 채 모든 사물을 포용력으로 일관한다. 비 소리 물소리로 가득한 계곡 길에는 비구름 자욱이 내려앉아 아늑함이 더하여 호젓함마저 갖게 한다.
세상과는 별도의 공간을 형성하여 가까운 시야에 펼쳐지는 자연 경관은 천당일까 극락일까 무아경을 방불케 한다. 넓은 산길에는 온통 계절 변화로 어우러진 화려한 축제마당이다.
갖가지 종류의 나무 밑에는 다양한 빛깔의 단풍들이 비바람에 몽땅 쏟아 내려 식은 대지 위에 폭신한 이불을 연상 시킨다. 가지각색의 예쁜 잎 들을 책갈피에 끼워 둘 요량으로 골라 모아 주머니에 담는다. 나무 막대기로 낙엽에 막혀 길을 잃은 작은 도랑의 물길을 터 준다. 자유스럽게 촐촐 거리며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경쾌하다. 쏟아 내리는 빗물이 물살을 일으키며 계단 위에 흩어진 낙엽들을 쓸어내린다.
모여진 잎들은 식어 가는 토양에 훈기를 채워 새 봄에 싹 틔울 씨앗들을 보호할 것이 다. 자연 속에 펼치지는 축제 한 마당에 어우러져 구름과 벗하여 계단에 걸터앉아 남산의 푸근함에 묻힌다.
중후한 자태로 서울의 중심에 자리한 호남 好男 형의 남산은 창설 600년 역사를 안은 서울의 얼굴이며 시민의 자랑이다. 중구민의 열린 정원으로 새벽운동 코스로도 즐겨 찾으며 깊은 애정을 느낀다. 전망대에 올라 시내전경을 내려다보면 벅찬 감동에 우월감마저 갖게 한다. 자연의 생동감이 있고 넘실거리는 활력이 보인다. 꽃 피고 지며 단풍 들어 낙엽진다. 설산 雪山 의 비경은 모든 공해를 정적케 한다. 한 낮의 북적 이는 시내전경도 회전식에 앉아 돌며 보노라면 잔잔한 평화의 물결로 일렁인다. 석양의 불덩이는 거대한 서울을 붉게 물들이고 황홀감에 들뜨게 한다.
땅거미 드리우는 서울타워는 불빛으로 단장하여 8등신 각선미가 서울미인의 표본으로 당당하다. 전광이 투여된 밝은 기둥은 긴 유리관을 연상 시키는 투명감이 고고하다. 한강을 가로질러 남북으로 이어진 차도는 날렵한 불다리 되어 강물과 함께 출렁인다. 길 위에 넘쳐 나는 불빛은 끈임 없이 웅장한 도시의 면모를 드러낸다. 600년 수도서울로 역사해온 명당 중에 명당으로 자랑스러운 서울의 탄생 설을 들어본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외성 쌓음에 있어 고심하던 어느 날 밤에 큰 눈이 내렸다고 한다. 하늘이 계시를 내린 듯 기이하게도 하나의 선을 그려 놓았던 것이다. 눈이 쌓이고 녹음이 뚜렷하여 그 선을 경계로 성곽을 축 성하였다고 전한다. 눈 울타리라는 뜻으로 설울이라 이름하였다가 세계적인 도시 서울로 바꿔 지금에 이른다. 명당으로는 지면에 훈기가 배어있어 地氣를 중요시하여 도읍지로 정한 서울은 기발복지 氣發福地 임에 틀림없는 사실로 믿고 있다. 복이 있는 땅은 매사가 융성하여 택지로도 선호하며 조상의 묘 자리에 있어서도 신중하였음을 익히 보아왔던지라 늘 염두에 두고 있다.
사적 제10호로 지정된 성곽으로 태조5년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지 2년 후인(1396년) 봄에 시작하여 그 해 가을에 완성 하였으며 20여만 명의 인원을 동원 하여 쌓았다고 한다. 그리고 26년 후 세종4년에 모두 돌로 쌓았으며 활과 총을 쏠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높이1.2m에 길이18km로 자리하여 외적들의 침범이 잦았던 우리조상들의 지혜를 일깨워 준다. 서울의 북악 인왕 남산 낙산의 능선을 잇고 있는데 모양은 타원형에 가깝다.
동서로 흥인지문 돈의문으로 이어지며 남북으로 숭례문 숙정문으로 성안 사방에 4대문을 건립 하였으며 성곽을 경계로 서울이 자리하게 되었다. 축복 내린 대지 위에 건립된 도시는 세계적으로 거듭나 오늘에 이른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지방민들의 꿈과 기대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세계로 향한 눈부신 성장에 힘입어 타국인들에겐 기회의 도시로서 선망의 대상이 되어 몰려들고 있다. 서울은 역시 선조께서 택한 명당으로서 발복은 계속될 것이다.
후덕해서 아름답고 든든하여 자랑스러운 수도시민의 정원 남산. 그 정상에 자리한 서울타워는 해발480미터 높이에 동양최고의 탑으로 돋보이는 관광명소다. 서울 시민에게는 자부심을 갖게 하고 관광객들에겐 서울을 꿈꾸게 한다. 하늘 향해 치솟아 대한국민의 의지와 기상이 담대하다. 세계로 도약하는 이상을 추구 하며 미래로 향하는 희망을 부추긴다. 아름다운 서울에서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며 행복도시 서울사랑을 응원한다.
때 아닌 대 낮의 어둠 속에서도 전망대의 회전반복은 거듭되고 기상조건에도 아랑곳없이 맛난 요리들이 오감을 자극하여 섭취의 포만감으로 고공에서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표정들을 떠 올린다. 한식경이 지났나 보다 허기진 빈 속 에 한기를 동반한다. 식은 체온에 진저리치고 굳은 몸에 자세가 부자연스럽다. 빗물이 흘러 든 주머니가 출렁인다.
물 밟으며 철벅이는 발질이 짓궂고 팔 흔들며 걷는 걸음이 흥 겹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비 소리와 합창하여 애국가를 흥얼거린다. 솔숲에서 풍겨 오는 솔향기가 싱그럽다. 물기 흠뻑 머금은 검푸른 솔가지가 싱싱하다. 제각기 다른 기교를 한껏 뽐내다 낙엽 지며 드러난 큰 키에 붉은 나체가 멀뚱하여 저들끼리 멋적어한다. 자연이 있어 삶은 여유롭다. 남산이 자리하여 서울이 아름다운 것처럼.
자연이 변화무상하여도 남산은 침묵으로 포용한다.
수필가.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수필작가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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