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실인이란?
나실인 이란?
나실인이란 특별한 거룩함의 신분으로 구별되는 사람, 또는 머리를 기르고 포도주와 독주를 삼가함으로써 스스로를 봉헌할 것을 서원한 사람을 가리킨다.역사적으로 나실인은 성별된 사람이었다. 후대에 와서 나실인은 스스로 의지적으로 맹세한 서원에 의하여 특별한 지위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초기에 나실인은 신비스러운 신적 은사로 인한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서원으로 인한 카리스마적인 존재였다. 나실인이란 신분에는 성별의 동기가 가장 뚜렷하였다. 나실인은 그 스스로를 구별하고 그 자신을 '구별된' 자로서 인식하는, 하나님께 열심있는사람이었다(민 6:2,6-8,12; 삿 13:5,7; 16:17). 그 성별은 금욕적인 구별이 아니고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의 한 표현인데 이 금욕의 형식들은 이 충성심의 본질을 구성하는 구성적인 요소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충성심을 드러내 보여주는 예증적인 요소이다. 나실인에 대한 언급은 구약성서의 전편에 걸쳐 있으며 초기 기독교 시대에까지 확장되어 있다.
처음에는 그 나실인의 위탁은 무의지적이며 전생애에 걸치는 것으로서 개인의 카리스마적 은사들을 표출하였었다.그러나 후에는 제도가 표준화되고 법으로 규정되어져서 규정된 행동방식을 준수하기로 서원한 사람은 누구나 일정기간동안 나실인이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실인은 더 이상 특별한 은사로 인한 원초적으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룩한 의무를 수행하기로 서원한 사람이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대단히 점진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이 변화는 후대의 왕정체제 시대에 그 전환기를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적절한 자료의 결핍때문에 이 변천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이러한 변천으로 말미암아서 후대에 와서 서원의 마지막에 드리는 제사가 나실인 봉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던 것이다.
1. 거룩한 사람으로서의 나실인: 초기 이스라엘에 있어서 거룩한 사람은 대단히 큰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이 아닌 중동지역과 그밖의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구약성서에만 독특한 것은 그 거룩한 사람을 이해하는 구약의 신 중심적인 방식이다. 거룩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 아래 있었다. 그 거룩성은 어떤 윤리적인 성질보다는 정신적이며 물질적인형식들로 표현되었다. 황홀경이나 종교적 열광주의로 표현되는 무의지성이 언제나 이 거룩한 사람들을 특징지었다. 초기 예언자들과 전사들은 이러한 계열에 속했던 자들이다. 사울과 그리고 그가 참여했던 예언자들(삼상 10:9-13)은다음과 같은 무의지적이고 자발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사울이 야베스 사람들의포위에 관한 소식을 듣고 그는 '하나님의 신'에 사로잡혀 거룩한 분노를 품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는 전사가 되었다(삼상 11:5-11). 초기 나실인은 이러한 무의지적 자발성이란 의미에서 하나의 거룩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뜻대로 되는 은사들에 의하여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
나실인과 전사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들이 있다. 나실인이라고 불린 삼손은 사울처럼 거룩한 천사였다. '여호와의 신'(삿 14:19 등)은 그에게 특별한 육체적인 힘을 주셨다. 삼손은 긴 머리털을 가진 카리스마적인 인물이었다. 초기 이스라엘에 있어서, 전쟁은 하나의 거룩한 기업이었다. 따라서 출진 중에 있는 전사는 어떤 특별한 유형의 행위로서 표현되는 거룩함의 상태에 있었다(신23:9-14, 삼상 21:4-6, 삼하 11:11-12). 다른 지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요셉지파의 나실인직은(창 49:26, 신 33:16) 고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사에 있어서 요셉 지파의 군사적 용맹에 기인한 것일 것이다. 방백들은 그들이 전사들의 두령들이었다는 점에서 나실인들일 수 있다(애 4:7; KJV는 princes로서, 한글개역은 '존귀한 자'로서 번역하였다). 아모스는 예언자들과 나실인들이 그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되어 버린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람들로 함께 언급한다(암 2:11-12). 하나님께서는 둘 다 부르셨다. 그러나 이러한 소명의 사실 외에우리들은 예언자들과 나실인의 관계를 기술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 사무엘은 확실히 예언자인 동시에 나실인이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또한 제사장이기도 했으며 성소 안에 거주함으로써 예언자와 전사의 황홀경적 거룩함을 대신한 사람이었다. 그는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다(삼상 1:11). 이러한 것은 후대에는 제사장의 규정에 속하지 않게 되었다(레 21:10). 그리고 칠십인역 성서는 그가 포도주를 금했다는 사실을 첨가하고 있다(삼상 1:11). 초기 나실인처럼 사무엘은 일평생에 걸친 봉헌자였다. 많은 점에서 사무엘은 특별한은사를 지닌 무의지적인 봉헌자에서부터 제사에 의해 완성된 의지적 서원을 행하는 사람에로의 나실인의 변천을 촉진시켜 교량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2. 나실인의 율법: 오경에 있어서 나실인에 관련된 모든 법규들은 민 6장에서 발견된다. 이 나실인에 관한 율법은 카리스마적인 측면들이 점점 규격화된 공동체적 규율에 밀려나가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율법은 남자나 여자가 특정기간동안 의지적인 서원을 함으로써 나실인이 되었던 사실을 보여준다(민 6:2,5). 많은 나실인적 특징들을 나타내고 있는 레갑인들은(렘 35장) 의지적인 서원과 세습적이고 평생에 걸친 위탁을 결합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선조 요나답을 제외하고 레갑인들은 카리스마적인 존재들이 아니었다. 아모스는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나실인들을 "일으키셨다"(암 2:11-12)고 했다. 삼손은 천사에 의해서 이렇게 명명되었으며(삿 13장), 사무엘은 그의 어머니의 서원 아래서 살았다(삼상 9-11장). 율법서는 카리스마적 나실인에 대해서는 규정하고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런 유형이 계속 유지되었는지를 알 수는 없다.
아모스의 언급들은 카리스마적인 인물들이 원래 나실인이라는 칭호를 가진 것이아니었으며 그 칭호는 후대의 저자들이 그들에게 적용했다는 어떤 학자들의 가정을 신빙성없는 것으로 만든다. 나실인의 성별의 율법에 있어서 나실인은 그 거룩함의 증표가 되는 세가지 조항들에 의해 의무가 지어진다. A. 포도주와 독주를 삼가고 '포도나무 소산'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된다(민 6:4). B. 구별하는 날 동안에는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않는다. C. 그의 부모의 시체일지라도 시체를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
이 모든 것들이 초기 나실인들에 의해서 준수되었다는 것은 의심스러운 일이다 이미 말했듯이 사무엘이 포도주를 금했다는 사실은 칠십인 역 성서에만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삼손의 어머니가 금주했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후대의 해석에의한 것일 것이며 어쨌든 삼손이 금주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삿 13:4, 14:10).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규정이 옛 설화들에는 결코 언급되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 시체 접촉의 금지는 나실인을 대제사장과 같은 거룩함의 영역에 두며(레 21장) 다른 제사장들보다 앞서게 한다(레 21:1-10). 이 금지 규정은 나실인의 율법에 제사장직의 역할을 적용한 후대적 적용의 증거일 수 있다.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나실인의 관습은 계속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한가지 말해 둘 것은 초기의 나실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머리를 평생토록기르는 것인 반면에 민 6장의 율법에서는 서원의 기간이 차면 머리털을 잘라서 제물로 바치는 데 초점이 있다는 점이다(민 6:18). 피와 마찬가지로 머리털은 한 사람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자기헌신의 한 형식으로서 머리털을 바치는 것은 고대 셈족의 제의나 기타 여러 곳에서 공통된 것이었다. 민 6장에서는 머리털 외에도 이스라엘 고유의 제의의 제물들이 많이 언급되지만 머리털은 여전히 불에 놓여진다. 그리고 미쉬나는 머리털을 하나의 제물로서 인정했다. 더 나아가서 미쉬나는 서원이 잘못된 경우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머리털을 제단 불 위에 올려 놓기보다는 땅에 묻어야만 했다. 삼손과 같이 영구적인 나실인의 경우에 있어서는 머리털은 한사람의 생명의 상징이라기보다는 그에게 천부적으로 부여된 카리스마적인 신적인 권능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머리털의 기능은 이스라엘 민족 이전의 역사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지만 그원래의 의미와 이스라엘적 의미는 매우 다르다. 우리는 나실인에 대하여 규정된 이 율법이 그 이전에 있었던 다양한 형식들을 채용하여 동화시켰다고 결론지어야 한다. 이와 비슷하게 포도주를 삼가는 것도 농경문화적 가나안의 사회적양태에 대한 유목민적인 반동으로서 종종 설명되어진다. 그러나 여러 민족의제의에 있어서 그리고 이스라엘에 있어서도(렘 10:8-9) 그의 사역을 실행하는 제사장은 포도주를 금했다. 나실인의 율법에 나오는 금지 규정들에 대한 출처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3. 후기 발전: 나실인의 성별기간은 보통 그가 서원을 한 때에 지정된다.
미쉬나에서 그 기간은 특별한 규정이 없을 때는 30일로 정하고 있다. 이 짧은기간은 나실인이라는 신분보다도 그 제물이 점차로 더 중요하게 되었던 사실을 보여준다. 오래지 않아서 곧, 비나실인이 서원에서 풀려나는 비용이 힘에 겨워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 비용을 대신 떠맡는 것이 덕스러운 행위가 되었다(외마상 3:50; Jos. Antiq. XIX vi.1; 행 21:24). 그의 성별의 날들이 완전히 반복되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은 그만두고라도, 시체로 더럽혀진 나실인에 의해 초래되는 실제적인 부담은(참고. 민 6:9-12; 19:11 이하) 추가로 있어지게 된 제물의 비용을 떠맡는 것이었다. 이방인들은 나실인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여자들과 노예들은 가능했다. 그러나 어떤 형편 아래서는 아버지나 남편이 여자의 서원을 무효화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관습은 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있었던 것 같다(참조. 민 30장). 후대의 변천한 나실인의 서원과 이슬람교 순례자들이 행하는 이람(Ihram: 메카로 순례하는 중인 이슬람교도들이 지녀야 하는 성별의 상태를 이람이라 한다)의 서원 사이에도 많은 유사성들이 있다. 두 가지 경우에 모두다 술을 삼가는 것이 제사에 예비하는 것인데, 그 제사는 특별한 장소에서 행해지며 머리털을 자르는 것을 포함한다. 둘다 타고난 카리스마적인 은사에 의해서 거룩한 상태를 표현한 대단히 고대적인 제의형식들의 흔적이 거룩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따라야 할 규율로서 바뀌어진 것이다.
나실인 삼손 (삿16:28-31)
"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고전10:12)
삼손( Samson, 태양과 같은 )
1) 삼손은 소라땅 단지파의 마노아의 아들이다. 모친은 석녀였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껴야 할 신앙적 교훈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고통과 계율을 어기어서 비참한 최 후를 맞은 삼손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성도의 강장제와 같은 믿음의 힘과 성결성을 하루아침에 무너트리는 정욕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던 태도 이것은 우리의 가장 큰 적이다.
첫째, 나실인의 서약으로 성결된 삼손 민수기6장에 의하면 '나실인'은 독주를 마시거나 죽은자의 몸에 손을 대어서는 절대로 안되며 헌신의 표시로서 머리를 깍지 않아야 했다. 삼손의 부모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며 그의 경외심을 아들에게도 전해주고 그런 삶을 살도록 애를 썼다.
둘째, 삼손이 커다란 힘을 잃었던 이유들 우리는 삼손의 실패를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은 그에게 구별된 성령을 주어서 당대에 삼손의 힘과 재치를 따를 자가 없었다. 그러한 힘과 재능을 잃어버리게 되었던 원인을 조심스럽게 조사해 볼 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부모의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이방인과 의 결혼, 및 정욕)
셋째, 머리깍인 삼손의 마지막 기도 성별된 삼손이 계율을 어기고 정욕을 다스리지 못한 육체적 사랑 때문에 들릴라와 블레셋의 계략에 머리를 깍낀다. 그런 삼손은 능력을 잃고 패잔병의 신세가 되며, 눈까지 뽑혀 버린 맹인이 된다. 조롱을 받게 되었고 회개를 하였지만 이전의 능력으로 회복할 수 없는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결론
1)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은 경건한 생활을 해야 한다.
2) 자신에게 부여된 능력을 무모하게 사용하여 유혹과 타협하고 죄 와 더불어 살지 말아야 한다.
3) 끝까지 사명을 다할것과 선택한 백성 은 기도해야 힘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의 약점은 기도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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