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친구와 화장품 - 고정숙
늦여름 남편의 친구 두 쌍이 춘천에 사는 우리 집을 방문을 한다는 소식이 왔다. 무엇을 어떻게 대접할까 근심이 되었으나 기쁘게 이것저것 반찬을 사다 저장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그동안 청소를 하지 못한 곳곳을 모처럼 쓸고 닦고 이부자리와 베개도 깨끗이 빨아두었다. 남편은 賓客不來 門戶俗 (빈객불래 문호속)이라 집안에 손님이 드나드는 일을 복 된 일이라고 하며 부지런히 집안청소를 도와주었다.
이 친구들은 남편의 수산대학 동창생들인데 삼총사라고 불리 울 만큼 절친한 친구 사이었다. 결혼 할 당시에도 금 세 돈씩을 신부 목걸이로 해 주는 둥 막역한 친구사이였으나 결혼 후에는 서로 직장과 사업, 그리고 아이들 키우는 일로 자주 내왕을 하지 않고 지내었다. 이제 직장 정년퇴임도 하고 사업도 안정이 된 지금 아이들 결혼 축하해주는 일로 자주 만나게 된 것이다.
남편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고 하니 젊은 시절 이 친구들을 이용해 내 실수의 위기를 넘겼던 일이 떠오른다. 남편은 수산대학을 나왔으나 마침 교원수급 사정이 좋지 않았던 60대 말, 전공한 분야로 나가지 못하고 교직에 머무르게 되어 평생교직에 몸을 담았다. 어쨌든 수산 대 증식과를 졸업했으나 그 당시 정부시책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에 불응하고 자식을 넷이나 증식 시키는 일에 전공을 살린 셈이다. 사범대 출신도 아니요 교대출신도 아닌 수산 대 증식과 출신이라고 웃어보자고 농담으로 해 오는 말이다.
결혼 후 삼 개월 만에 분가를 하여 여러 세대가 한집에 사는 집에 세 들어 살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해 저물녘에 말쑥한 할머니 한분이 찾아들었다. 그분의 말이 제사공장 아가씨들로 부터 주문 받아왔는데 문이 닫혀 있어서 화장품을 전하지 못하고 가게 되었다고 하면서 (당시 일본제품 화장품이 좋다고 밀수가 성행하던 때였다.) 이 화장품을 받아 이윤을 남게 해 줄 테니 사라고 하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많은 이윤을 남길 것 같았다. 아랫방에 세 들어 사는 새댁을 불러 장사를 해보라고 했다. 새댁은 돈이 없어 못한다고 했다. 내가 돈을 대신 지불해 줄 테니 해보라고 하면서 장롱 속에 깊숙이 넣어 둔 월급봉투를 내다가 지불해주고 물건 한 보따리를 건네 준 것이다. 이 새댁이 잘 팔아 이윤을 남기고 내게 돈을 갚았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그날 밤 한밤중에 그 새댁이 떨리는 소리로 나를 불렀다. 남편이 당장 돌려주라 했다면서 보따리를 내미는 것이었다. 꼼꼼한 남편이 이 사연을 듣고 노발대발하여 밤늦도록 꾸중을 해서 꼼짝없이 당했다. 이 물건을 생판모른 낯선데서 누구를 붙잡고 팔아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갑갑할 노릇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기가 막힌 지혜로 그 물건을 학교 선생님들에게 며칠 만에 다 팔게 된 것이다. 대학 친구가 일본을 드나드는 길에 가지고 왔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스산하게 내리는 오후 드디어 전라도 순천에서 차 교장 내외와 경상도 통영에서 임사장내외가 올라왔다. 이들의 첫마디가 '퇴직을 하고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왜 강원도에 와서 살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몰랐다가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있는 이 도시를 보고 그 이유를 알았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저녁을 물리고 난 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 신혼시절, 화장품으로 친구들을 팔아 이익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지금에 와서 그 화장품을 사간 선생님들을 찾아 거짓말을 했노라고 실토 할 기회는 없을 것이고 이 친구들에게 나마 30 여년 만에 털어놓게 되니 그나마 마음 후련하다.
육순이 넘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모두 건강에 위협을 느껴 고비를 넘겼다는 이야기가 진지하게 오가고 이제부터 건강을 지키며 사는 일이 제일 큰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튿날도 비가 왔지만 소양댐, 의암댐, 공지천, 신숭겸묘소, 화목원등을 같이 돌아다녔다. 남편은 제 2의 고향이라며 설명하고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부터는 자주 만나자며 우의를 다지고 우리 여자 셋도 아쉬워하며 단풍이 곱게 물든 날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이박삼일 추억의 한 페이지를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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