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 초반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다. 정년퇴직을 한 아버지가 바로 중풍에 걸려 몸을 쓰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내가 모셔야 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까지 돌봐야 했다. 나는 이미 가장이었다. 아내와 어린 딸과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돈이 없었다. 직업 장교로 있다가 복무기간을 끝내고 뒤늦게 사법연수원을 들어가 막 수료한 무렵이었다.
나는 운이 없는 것 같았다.
고시에 합격하면 대부분 무난하게 판검사가 되던 시절이었다. 나는 특별한 사유로 공직이 막혔다. 불공정이라고 생각했지만 항의한다는 자체가 구차했다.
나는 바람 부는 거친 들판 앞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변호사사무실을 빌릴 돈도 없었다. 국회의원인 선배 변호사의 사무실에 잠시 얹혀 지냈다. 그가 없는 사이에 그의 상담실을 빌려 썼다. 내가 상담 중에 선배가 의뢰인을 데리고 들어오면 지하다방으로 가야 했다. 주변머리가 없어서 그런 궁상을 떨었는지도 모른다.
당시는 변호사가 희소할 때였다. 변호사는 지성과 재력을 갖춘 직업으로 존중을 받기도 했다. 변호사를 개업하는 친구들은 빚을 얻어서라도 번듯한 사무실과 고급 승용차를 샀다. 운전기사를 두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토큰을 내는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사람들이 나의 옷깃에 달려있는 뱃지를 보고 이상한 듯 쳐다보기도 했다. 그들의 고정관념과 맞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의 내면은 고드름이 얼어붙은 날 같이 추웠다.
따뜻한 온기가 그리웠다.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보았다. 빈민운동을 하던 어떤 목사는 겨울 감옥에 있는데 너무 추워서 성경에서 ‘불’이라는 글자가 있는 부분만 찾아 읽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그 좁은 감방의 벽이 사우나 같이 후끈해 지더라고 했다.
나는 비슷한 내면의 불지피기를 시도했다. 성경과 함께 여러 권의 해설서를 가져다 놓았다. 예수는 자기 말이 내면에 머무르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라고 했다. 마음에 와 닿는 말들을 공책에 썼다. 그 말들이 녹아서 내 핏속에 그리고 영혼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 읽고 또 읽었다. 이런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살자니 문제가 있지 죽자고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죽기 싫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었다.
‘때릴 용기가 아니라 맞아 죽을 용기를 가져라’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소리가 전부 죽으라는 것이었다.
십자가를 지라는 것도 결국 죽으라는 것이었다. 몸이 죽지 않아도 자아는 죽이라는 것 같았다. 옳은 말씀들이 소화되지 못한 채 날 것인 상태로 내면을 떠돌아다니다가 영혼의 통로를 막기도 했다.
잠시 빌려 쓰던 선배의 사무실에서 쫓겨났다. 상황이 몽둥이가 되어 나를 후려치면서 어디론가 몰고 가는 느낌이었다. 고시 동기인 변호사의 사무실에 얹혀서 몇 달을 보내게 됐다.
그 부근은 또 다른 종류의 변호사들이 모여있는 양산박 같은 곳이었다.
민주투사로 알려진 조영래 변호사가 후배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밑에서 나와 군대 동기인 천정배 변호사와 고교 일년 후배인 박원순 변호사가 활동하고 있었다.
대학생인 박종철이 고문을 당하다가 죽었다는 보도가 날 때였다.
조영래 변호사와 박원순 변호사는 그 것 뿐 아니라 부천서 성고문에 분노하며 싸우는 투사였다.
내 옆방에는 국회의원이 되고 여당 대표까지 했던 신기남 변호사가 있었다.
우리들은 근처 식당에 모여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다. 신기남변호사가 이런 말을 했었다.
“인생은 무지개 빛 같이 여러 색깔이어야지 법을 한다고 꼭 검은색만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조영래 변호사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검사가 자기 방에 들어온 구속 피의자의 포승과 수갑을 풀게 하고 담배 한대를 권하거나 자판기 커피 한잔이라도 줄 수 있어야 인간이 아닐까?”
엉뚱하게 그곳에서 나의 눈이 열린 면이 있다.
의인은 불의에 성내며 분노하고 악인은 정의를 보면 반드시 화를 낸다는 걸 알았다. 그 불의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서이다. 양심의 급소를 찔리어 놀라서 펄쩍 뛰는 것이다.
나이 먹은 지금도 그 시절 위로받기 위해 공책에 썼던 그분의 말씀들을 읽는다. 그게 뒤늦게 속에서 불이 되어 타오른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지난 세월 환난이라고 생각한 것이 축복이었다.
나를 눈뜨게 한 그분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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