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추천사
신혜림씨를 만난 적이 있다. ‘목마르거든’이라는 작은 책을 만들어 온 분이다. 그녀가 만든 책 안에는 복음이 팥소같이 들어간 정신적 떡인 글들이 가득했다. 그녀는 하얀 손으로만 그 책을 만들지 않았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서 소외된 채 절규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 사연을 글로 만들었다. 그녀의 글은 마치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세상을 향해 “도와주세요”하고 외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외침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고 내게 추천사를 쓰는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보내온 글들을 읽었다. 고단한 이웃의 이야기들이었다. 잊고 있었던 내 어린 시절 우리 동네의 광경을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내 의식 밑바닥에 남아 있던 몇몇 장면이 있다. 산동네 판자집들. 항상 취해있는 무기력한 아버지. 돈이 없어 닭장 같은 봉제공장의 노동자가 된 아이들. 더러는 깡패나 작부가 된 아이들도 있었다. 내가 자라던 시대 자체가 시궁창이었는지도 모른다.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의 가난, 불공평한 사회에서 가난은 소외이고 빗자루로 쓸려나갈 쓰레기 같은 운명이기도 했다. 나는 신혜림씨가 글로 알린 그런 사람들의 사연을 소설이나 드라마의 전반부같이 본다. 주인공이 절망의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댄다. 살려고 할수록 더 위기로 빠져 들어간다.
익사해 죽을 지경인데 도움의 손길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이 느끼는 절박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게 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같은 인생의 후반부는 다를 수 있다. 대역전이 일어나고 주인공은 빛으로 가게 된다. 인생도 대단원의 막까지 가 봐야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절망의 가난 속에서 살았던 두 종류의 인간군을 보았다.
어둠에서 나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존재도 많았다. 구더기 속에서 살다가 구더기가 되어버렸다고 할까. 두 달 전 화장장에서 그런 사람을 배웅한 적이 있다. 빈민촌에서 자라면서 인간성 자체가 상실됐다. 절도와 폭력을 일삼다가 평생을 감옥에서 보냈다. 면회오는 한 사람도 없었다. 석방이 된 후 몇 달 만에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변호사로 살면서 그런 종류의 어둠의 자식들을 종종 보곤 했다.
어둠에서 빛의 세상으로 옮겨간 사람들도 있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넝마를 줏기도 하면서 배고파 하던 소년이 있었다. 과일가게 남자가 그 소년을 보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거지차림이면서도 그 소년은 항상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과일가게 남자는 빈 과일상자를 그 소년에게 주곤 했다. 성실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소년은 때로 청소를 해 주기도 했다. 과일가게 남자는 시장안 국밥집에서 이년간 그 소년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돈을 대 주었다.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그 넝마주이 소년이 검사가 되어 결혼한 아내와 함께 과일가게 남자에게 인사를 왔다. 검사 부부는 아내와 함께 큰 절을 하고 감사의 뜻으로 돈을 오백만원 주고 갔다. 그 검사는 지금 팔십대 노인이 되어 지방 도시의 법률사무소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우연히 알게 된 비밀이었다.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하늘은 빛을 비치는 것 같았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들어간 내 친구가 있었다. 중학시절 판자집에 사는 가난한 친구가 있었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나갔다. 엄마는 그의 방에 쌀을 놓아두고 돈 벌러 갔다. 어린 눈으로 지켜봤지만 친구는 처절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쌀 한 줌으로 끓인 밥과 라면스프를 끓는 물에 푼 국을 먹고 학교를 다녔다. 정신병자가 되어 동네를 방황하던 그의 형이 몰래 그의 방에 들어와 쌀을 훔쳐 가려다가 피투성이 싸움을 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 친구는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면서 “이럴 거면 차라리 낳지를 말지”하고 절규했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시절 그 친구를 살리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준 하나의 줄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사는 판잣집 방의 깨어진 유리창 아래 작은 책상에는 손때묻은 성경이 놓여 있었다. 그는 개천가 작은 교회에 다녔다. 그는 그 시절 내가 이해못할 얘기를 했다. 어른이 되면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선교사가 뭔지 그가 아프리카로 왜 가야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그는 놀라운 성공을 했다. 뉴욕의 최고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 있는 그의 저택에 가 본 적이 있다. 홍콩섬의 가장 비싼 곳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도 갔었다. 그의 사업체가 해외 곳곳에 있다. 그는 남모르게 기부도 제법 한 것 같았다. 서울에 왔던 그는 내게 자기가 어려서 살던 판잣집을 가 보았다고 얘기했다. 그에게 과거는 아련한 추억이지 더 이상 절망의 회색은 아닌 것 같았다.
성경은 이웃을 따뜻하게 대하고 아껴주라고 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기를 권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그 영혼이 먼저 구원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타인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스스로 음침한 사망의 계곡을 벗어나는 일이다. 마중물이 되고 디딤돌이 되는 후원금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물질적 도움은 그 다음이 아닐까.
나는 넝마주이였던 법조선배의 스스로 노력하는 점을 하늘이 봤던 것으로 생각한다. 극도의 불행속에 있었던 판자집 친구의 책상 위에 있던 복음이 그를 구원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빛을 비추는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글속에서 아우성 치는 그들의 분노가 감사로 그들의 시선이 사람에게서 하늘에 계신 그분에게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선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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