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다 네 것이잖아
김요한 선교사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 15:31-32)
집 나간 둘째 아들을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사랑과 돌아 온 탕자와
집 안에 있었던 맏아들의 이야기가
그리스도인들의 참 회개와 참 신앙이 무엇인지 잘 말해 줍니다.
만약 이 시대에 집 안에 남아 죽도록 충성한 맏아들과 같은 신자가 있다면
교회는 보물 같은 일꾼으로 여기고 귀중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니올시다’입니다.
일은 열심히 했으나 하나님과 관계를 모르고 그 하나님의 인자함에 거하지 않고
종처럼 언제나 벌을 서듯 하는 신앙일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들이지만 종의 입장입니다.
‘여러 해 아버지의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실 일이 없더니’(눅15:29) 얼마나 답답한 모습입니까?
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면서 돌아 동생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은 것이 배가 아파
‘염소 한 마리’ 운운 하면서 집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농성을 하며
노사분규를 벌이고 있습니다. 아들답지 못합니다.
자신이 가진 재산도 아직 자신의 것이 아니고
동생이 말아먹은 재산도 아버지의 것이라고 여깁니다(눅15:30)
이는 아버지와 바른 관계를 같지 못한 신앙입니다.
아버지의 생각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잖아’입니다.
이 맏아들은 엄청난 부자이지만 사실은 가난뱅입니다.
이미 상속 받은 자신의 재산에 대한 불감증입니다.
아들이지만 종의 의식에 사로잡혀 있어 자신의 축복을 깨닫지 못하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한 기업, 한 살림이 되지 못하고 열심히 하나님의 머슴이 되어
일하다 보면 죽은 다음에 상급을 두둑하게 주시겠지 하는 신앙의 유형입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빈곤에 처해 있습니다.
만약 이 아들이 아버지와 아버지의 재산에 대한 관계만 정립이 되어 있다면
‘내게는 염소 한 마리도 왜 안 줍니까?’ 하고 투정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정도는 생각만 해도 충분합니다.
‘아버지의 것이 다 내 것이 잖아’ 이렇게 넉넉하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것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고
아버지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주변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낭비하는 사람들을 못 마땅하게 생각할 뿐 아니라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안 주는 하나님을 은근히 불평하고 있습니다.
맏아들과 같이 깜냥에 신앙의 모범생이 되어 입이 언제나 쑥 나와 있지 말고,
차라리 그리스도 안에 자신을 죽여 아버지의 기쁨이 내 것이 되고
아버지의 것이 다 내 것이 되는 탕자의 신앙이 되도록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