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있는 인생을 살아가려면
아시다시피, 영성학교는 충주의 한적한 시골에 위치해있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7,80대의 노인들로서, 여름이나 겨울이나 경로당에 모여앉아 무료한 일생을 보내고 있다. 영성학교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근처에 사는 이들이 아니다. 전국에서, 아니 외국에서도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다. 그 이유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집근처 교회에서 해결 받을 수 없는 지난한 삶의 문제를 가지고 한줄기 희망의 빛을 가지고 찾아온다. 그게 정신질환이나 고질병이든지, 아니면 풀리지 않은 인생의 문제이든지 간에, 지옥 같은 삶을 헤매다가 혹시나 해서 찾아오는 것이다. 어제도 카페의 상담게시판에, 중증 자폐증 자녀를 둔 부모인데 영성학교를 찾아오겠다고 하면서 주소를 알려달라는 다급한 글을 올렸다. 영성학교가 문을 연지 3년 반이 지났다. 그동안 이런 사람들이 수도 없이 찾아왔었으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영성학교가 한적한 시골에 위치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유이다. 영성학교에는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동안 필자의 주장이 공허한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수도 없이 증명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도, 아니 앞으로도 그런 능력을 증명해보여야 할 것이다. 과거에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든지 간에, 앞으로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지나가다가 교회가 있기에 찾아오는 이들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고민은 다른 교회에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고질병을 치유하며 지난한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으며 해결할 생각도 없다. 그래서 우리네 교인들은 자신들이 지난한 문제를 교회에서 해결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가 서서히 바다에 빠져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능력이 없는 교회는 물론, 회사나 심지어는 국가일지라도 역사에서 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의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차서 이 칼럼을 읽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필자가 놀라운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치유하면서 사역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능력이 내려오는 통로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다.
1. 능력의 원동력은 믿음이다.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4:17~20)
어떤 중년남자가 간질로 고통 받고 있는 아들을 데리고 제자들에게 찾아갔다. 그러나 제자들이 아무리 기도해도 끄떡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남자는 다시 예수님께 아들을 데리고 가서 아들의 문제를 해결 받았다. 그러자 머쓱해진 제자들은 왜 자신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냐고 예수님에게 물어보자, 믿음의 부족이라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덧붙여서,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기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래서 당신에게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크리스천은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이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성경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이다. 그래서 영접기도에 동의하고 주일성수를 비롯한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믿음이 없다면, 왜 교회마당을 밟겠냐고 되묻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믿음의 잣대는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다. 즉 자기 확신인 셈이다. 그러나 믿음의 잣대가 성경에서 말하는 근거여야하고, 예수님이 인정해주셔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판단으로 천국에 들어간다면, 당신이 피조물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것이 아닌가? 안타깝게도, 이런 인본적인 믿음이 우리네 교회에 판을 치고 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우리네 교회에서는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덮어두고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이런 기적은 사도시대에만 허용한 것이라는 기이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그러나 성경의 위인들은 기적과 이적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였다.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만 있어도 기적이 일어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외면하며, 믿음의 표적이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는 것이라는 증거조차 덮어두고 있는 게 예수님의 몸 된 교회에서 하는 행위인가? 그렇다면 이런 믿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믿음은 절대적인 순종에서 시작된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17:5~10)
위의 예수님의 말씀도 기이하기 짝이 없다. 제자들이 믿음을 더해달라는 요청에,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도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을 거라고 하시면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동력을 얻는 비유를 말씀하신다. 그 내용은 기이하기 짝이 없다. 어떤 종이 하루 종일 불볕더위에 수고하다가 해가 져서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자, 그늘나무에서 하루 종일 놀던 주인은 식사를 준비해서 바치라며 메몰 차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군소리 없이 부리나케 식사를 준비해서 바치니까, 주인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수종을 들으라면서 냉정한 명령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종의 태도이다. 종은 어떤 주인의 명령이라고 즉각 순종한 후에, 자신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라는 극도의 겸손을 보이고 있다. 이 내용인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믿음을 더해달라는 부탁에 대한 답변이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은 우리네 교회에서 들어볼 수 없다.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은 자기 확신으로 대신하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면 축복을 받을 믿음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과 겸손한 태도가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믿음이라고 콕 집어서 말씀하고 계시다. 그래서 당신은 모든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고 계신가?
이제 너희는 온 이스라엘 곧 여호와의 회중이 보는 데에서와 우리 하나님이 들으시는 데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너희 후손에게 끼쳐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대상28:8)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민15:40)
계명이나 율법,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 예수님의 명령은 같은 의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계명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다. 그래서 당신은 모든 하나님의 뜻을 철저하게 순종하며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모든 계명을 지킬 생각을 처음부터 시도할 생각조차 없지 않은가? 우리네 교회는 성경에서 명령하신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여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고, 대신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만을 주문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않는 이유이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킬 생각조차 없기 때문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예수님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부른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만이 들어간다고 선포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생각조차 없는 우리네 교인들은 죄다 지옥의 불에 던져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는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덮어주고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비틀어버린 교단교리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기이한 일이다. 어쨌든 당신에게 성령의 능력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철저하게 순종하며 지킬 수 있는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눅17:1)
위의 예수님의 말씀에서 실족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원문은 ‘죄에 걸려 넘어지다’라는 뜻인 ‘스칸달리조’이라는 단어이다. 말하자면 실족이라는 것은 죄를 짓는다는 뜻이다. 없을 수는 없다는 번역은 ‘아네브데크톤 에스틴’이라는 헬라어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즉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내용이다. 죄성으로 변질된 자아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죄가 좋고 죄를 추구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죄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수 없다. 죄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악한 하나님이신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없음을 잘 알고 계셨기에, 우리에게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셨다.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게 허락하심으로, 그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회개하는 자녀들의 죄가 씻음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또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부르는 자녀들에게 들어오셔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심으로 모든 계명을 지킬 능력을 허락해 주셨다.
3. 전심으로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만이 능력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이 모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해결책은, 성령께서 당신 안에 들어오셔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한다. 말하자면 성령의 능력이 당신의 영혼과 인생을 이끄셔야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모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능력이 없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오시도록 쉬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요청하는 것뿐이다.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3,14)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1,42)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예수님을 3년 반 동안 따라다니면서 제자훈련을 받았던 사도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실망 끝에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나님의 약속이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전심으로 성령의 임재를 요청하는 기도 끝에 성령이 임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또한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행한 기도를 가르쳐서 성령이 임하는 제자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들이 바로 빌립집사와 스데반집사 등이다. 이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들이 일으킨 고질병을 치유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영혼을 구원하면서 초대교회를 세워나갔다.
당신도 사도들과 제자들처럼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싶지 아니한가? 능력이 내려오는 통로는 믿음이지만, 그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이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고 하셔야 한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모든 하나님의 계명에 즉각 순종하고 절대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죄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모든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오셔서 그 능력을 주셔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오시도록 쉬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을 드리는 것이다.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성령께서는 오래 머물지 않으신다. 결국 능력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쉬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는 길 뿐이다.
우리 영성학교 식구들은 이미 적지 않은 시간동안 이 기도를 훈련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마음으로 이 기도를 하고 있는가? 정신질환과 고질병이 낫거나 지난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이라면, 성령이 당신을 찾아오실 리는 만무하다. 놀라운 능력이 내려오는 믿음은 모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선물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당신의 속내와 동기를 날카롭게 살펴보시는 하나님께서 이를 모르실 리가 없다. 그래서 오래 기도해도 아무런 일이 없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가 죄의 덫에서 해방되며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라. 그래서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쉬지 않고 있을 때만이 주어진 기회를 잃지 않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면 죽기 살기로 하나님을 부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때서야 비로소 능력 있는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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