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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예수를 믿고 행복하게 살고 계신가?

Joyfule 2018. 10. 21. 08:40



 
     당신은 예수를 믿고 행복하게 살고 계신가?

 

 

울 영성학교 식구들은 예전에 다른 교회에 다녔던 분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성경에 약속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를 찾아서 유목민처럼 찾아다닌 분이 상당수이다. 그들이 다녔던 교회는 대형교회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교회거나 무언가 특별한 사역을 하는 교회가 대부분이었다. 필자가 오늘 소개하려는 분은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성경지식이 탁월한 형제였다. 그는 어느 날 마음에 쏙 드는 설교를 하는 교회를 발견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는 강해설교를 어찌나 쫀득쫀득하게 잘 하던지, 너무 감동해서 온 가족을 이끌고 그 교회에 등록했다. 이 교회가 다른 교회와 다른 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을 따라서, 교회공동체 식구들이 형제자매처럼 지내는 게 특징이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교인 중에 초상이 나면 99%의 교인들이 문상을 갔다고 한다. 또한 이 교회는 다양한 교회행사를 통해 교인과의 친목을 강화했으며, 대안학교까지 설립해서 자녀들에게 기존 학교를 중퇴하고 교회의 대안학교에 들어갈 정도였다. 그래서 이 형제는 서로 사랑하고 끈끈한 교회공동체가 너무 든든하고 좋다고 만족해했다. 수요예배에 모이는 교인들이 주일예배 모이는 숫자의 99%라고 하니, 공동체 식구들의 충성심을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다. 담임목사의 강해설교를 들으면 은혜를 듬뿍 받고, 공동체 식구들과 사랑을 끈끈하게 나누니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행복감이 몰려왔다. 당신도 이런 교회가 주변에 있다면 당장 찾아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몇 년의 시간이 지나자 예전의 만족감이 스멀스멀 사라지는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설교를 들을 때는 은혜가 넘치고 좋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다시 그 느낌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어지곤 했다. 교회공동체 식구들과 자주 모이며 끈끈한 우애와 사랑을 경험하는 것은 좋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기쁨은 아니었기에 2% 부족한 마음이 들었다. 눈만 뜨면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듣거나 성경공부를 하고, 교회식구들과 이런 저런 교회행사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정작 자신의 식구들과는 만나는 기회가 별로 없는 아이러니한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이 형제는 고민 끝에 그 교회를 떠나기로 결단을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자에게 기도코칭을 요청하고 영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영성학교에 다니면서, 이전에 다니던 교회에 왜 진정한 만족이 없었는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교회를 선택할 때 목회자의 설교를 가장 중요시한다. 설교를 들을 때 공감이 가고 깨달음이 오는, 소위 은혜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성을 터치하며 현학적이고 지성을 만족시켜주는 설교자들이 인기가 높다. 잘 가르치는 목회자들은 율법, 계명, 예수님의 명령, 하나님의 뜻을 조목조목 알려준다. 그래서 이런 교회를 다니면 하나님의 율법이나 계명을 잘 지켜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된다. 그래서 교회공동체 예배나 행사에 더욱 열심히 참석하고, 구제나 선한 행동에 열정적이고,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교회나 교인들에 비해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신들에게 만족하고 위안을 삼고 있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다. 그들은 성경을 통째로 암송하며,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명령하신 600여 가지가 넘는 율법의 조항들을 꼼꼼하게 지켰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해야 독사의 새끼라는 독설을 쏟아 붓고, 그들이 두루 다니며 교인 한사람을 만나면 배나 지옥자식을 만든다고 저주를 퍼부으셨다. 아니, 그들이 한 신앙행위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알려주신 율법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를 듣고 죄다 지옥의 불길로 던져졌는가? 그들은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더욱 열정적으로 함으로서 자기만족과 자기 의를 삼았기 때문이다.

 

이 형제가 다녔던 교회는 담임목사의 강해설교를 듣고 은혜가 넘쳤고, 교회공동체 식구들이 마치 초대교회를 보는 것처럼 서로 끈끈하게 사랑했다. 이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부르짖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목사의 말이 성경적일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37~40)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5:3)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

 

위 세 구절을 살펴보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똑같은 개념은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포함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교회공동체 식구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사모하여 날마다 그분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부르고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를 쉬지 말고 전심으로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도를 생략하고 교회공동체식구들을 사랑하는 행위로 바꾸어 버려서, 정작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를 소홀히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가장 일 순위가 무엇인가? 바로 가족을 사랑하고 가정을 돌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는 교회행사에 참여하고 공동체 식구들과 만나느라고 정작 자신의 식구들의 얼굴을 볼 시간조차 없으니 기이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이 형제의 마음 깊은 곳에 공허와 건조함으로 가득 차게 된 이유이다. 진정한 만족과 기쁨은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눌 때 채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날 때마다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어야 한다. 이 형제의 가족이 그 교회를 떠나 울 영성학교에 둥지를 튼 지 3년여가 흘렀다. 그래서 이 형제가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찾고 있는지 당신도 궁금하시지 않으신가? 궁금하면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