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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배팅 하라 - 조한금

Joyfule 2012. 11. 19. 08:23

  멋지게 배팅 하라 - 조한금 


  염력이란 신념이 가져다주는 힘, 또는 집중된 정신력이라고 국어사전에 쓰여 있다. 「머피의 성공법칙 100가지」를 보면 모든 염력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꼭 이뤄진다는 것이다. 염력은 명령받은 대로 이행하는 힘은 있으되 명령을 거부하는 힘은 없으니 무조건 명령을 해놓고 보란다.
염력은 희망의 씨다. 이 씨앗은 마음 밭에서 더디게 자라지만 종래는 결실을 맺는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말이 씨 된다.’고 입단속을 시켰던가보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염력의 힘을 경험했는데 그 중에서도 장기적인 염력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음에 정말 깜짝 놀랐다.  


37세 때의 일이다. 여성동아 복간 10주년 기념 특집으로『우리의 미래, 우리의 꿈』이란 큰 제목 하에 10년 후, 20년 후, 그리고 더 노후에 <내 꿈은 무엇인가>를 쓰라는 원고청탁을 받은 적이 있다. 각계각층의 젊은 여성들에게 미래의 자화상을 그리라는 주문이었다. 나는 자신이 늙은 후의 모습을 얼른 유추해 내기 쉽지 않았으나 어쨌건 타의에 의해 미래를 생각하며 노후를 설계한 글을 썼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우연히 그때 쓴 글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마치 명령항로의 뱃길을 따라가듯 20여 년 전에 쓴 글 그대로를 따라가고 있지 않은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그 강한 염력의 힘을 새삼 확인한 셈이다. 그때의 글〈주부에게도 일자리를〉을 그대로 옮겨본다.

요즘 들어 나는 세상을 멀미하면서 산다. 회전목마처럼 온통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을 타고 살기가 왜 이렇게 어지러운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 세상 속에서 가끔은 돈 놓고 돈 먹는 야바위 놀음인 부동산 투자로 억대의 재산도 모으고 싶고, 또한 명예나 권력을 항상 소유하며 패물이 주렁주렁 달린 몸뚱이로 거드름을 피우면서 거리를 활보하고도 싶다. 그리고 목까지 차오르는 서울 어느 미장원의 우유 목욕실에 앉아서 우유 욕을 즐기며 세상 안의 가장 으뜸가는 아름다움을 지닌 귀부인이 되어 보고도 싶다. 하다 못하면 직업인이 되어 르뽀 기사를 쓴 미국의 최초 여기자였던 ‘넬리블라이’ 같은 멋진 여기자가 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가진 게 없으니 내게 있어 이런 것들은 꿈이 아니고 욕심이며… (중략)


원래 천부(?)의 가난을 타고난 나인지라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어떻게 치부하며 최대한 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느냐의 쪽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희생하고 덕행하며 살 수 있느냐의 편일 수밖에 없을진대, “가난한 자여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희 것”이라는 성경말씀만을 오로지 구세주처럼 떠받들며 살아갈  따름이다.
그럼 과연 평범한 소시민인 나의 꿈은 무엇인가. 내가 살아가는 데 별로 불편하지 않게 밥 먹고 아이들 교육시키며 살 수 있게 끔만 남편회사의 봉급이 올랐으면 하는 게 우선 당장 최상의 꿈이요 희망이다. 그 다음은 아이들 다 키우고 난 무료한 시간을 구석방에서 화투 놀이로 달래는 활동전성기의 모든 젊은 부인들을 구제할 수 있는 어떤 일자리의 마련이니, 그렇지 않아도 세상 살기 힘든 남편들을 도와 같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으면 하는 것이 또한 꿈이요 바람이다. 그리고 더욱 더 바라는 꿈은 나 개인의 가장 큰 이상으로서 자기 사랑과 희생을 바쳐 남을 사랑하고 이웃을 도와가며 사회에 순종하고 봉사하는 한줌 소금이요 빛이고 싶다.


앞으로 10년 후쯤에는 우리나라 경제 발전 속도에 비례해 받아들여지는 물질문명의 공해 속에서 방황하는 10대나 20대의 내 아이들이나 그들 또래의 세대들에게 인간의 근본 윤리와 가치, 좀 더 나아가서 종교적인 사랑과 희생을 가르쳐, 인간은 물질로써만은 충족되지 않는다는 경험을 심어주고 싶고 또한 그렇게 노력할 것이다. 더 나아가 20년 후 라면 나도 50을 훨씬 넘어선 아낙일 게고, 아이들도 다 성장한 후일 테니, 그땐 남북통일의 염원이 이루어져서 “금강산이나 한번 가봅시다!” 하며 영감(?)과 함께 여행준비나 하고 있지 않을는지….
그보다 더 이후의 노후모습은 모든 사람들에게 거추장스럽지 않은 어진 할미로 살아가고 싶고, ‘드볼작’의 ‘신세계’에 귀 기울이거나 못다 본 책을 뒤적이며, 자전적인 얘깃거리나 수필 따위를 모은 수필집에 투영된 한 평생의 자화상에, 총기 잃은 눈을 비비며 이른 새벽의 종소리를 맞는 정갈함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옛것들을 들춰내 정리하다가 해묵은 월간지 여성동아에서 젊은 날의 ‘나’를 만난 것이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이렇게 그때의 염력 그대로를 따라가고 있으리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원고청탁의 글로써 끝났기 때문에 곧 잊어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하는 일과 이렇듯 구체적으로 연결돼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해본 내 인생항로였던 것이다. 젊은 날, 내가 나에게 명한 대로 지금도 진행 중인 것에 가벼운 흥분마저 느끼면서 그렇다면 더 먼 훗날을 설계해 염력을 연장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주는 만큼 되돌려 받는다는 이치도 깨달았으니 더 많이 받기 위해서라도 나는 다시 나를 멋지게 베팅 하리라.
모두가 반할 주식회사 바네스(van-esse)를 년 전에 출범시켰다. 남편의 해직에 한이 많았던 나는 고용창출에 역점을 두고 회사하나를 만든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반하는 기업으로 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많은 인재들을 기용하고, 국가에 한 몫 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되 숨어서 좋은 일 하는 회사가 되기를 내 ‘염력’에게 다시금 명령하노라.
그리고 내 개인의 소망으론, 세계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사람 사는 얘기들을 모아와 기행수필집 두세 권쯤 더 묶었으면 좋겠고, 죽을 땐 딱 3일만 아프다가(아이들에게 얼굴 한번은 보여줘야 서운하지 않다고 할 테니)웃으며 죽기를 염력 한다. 꼭 그렇게 되어질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