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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 - 박 상혜

Joyfule 2012. 11. 20. 04:06

  인연(因緣) - 박 상혜 

  오래간만의 옛 직장동료가 보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얄팍한 세정 탓일까. 7년이 넘는 퇴임교사를 찾아주는 情誼에 감동하여 모처럼 상큼한 기분이 되었다.

  콩깍지 같은 황혼을 한껏 포장을 하고 깃털인 양 사뿐히 약속장소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우리의 만남의 초점이 어긋났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생기라고는 전혀 없는 죽은 나뭇가지 같은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장님, 얼마나 행복하세요. 지겨운 학교를 떠났으니… . ” 
  “그럼 그대도 떠나면 되잖아? ”

요지는 학생, 학부모 때문에 생존인 교직이 너무 버겁다는 것이다. 그만 둘 수 없는 현실이 더 참담해서 선배인 나에게 자문을 듣고 싶다는 것이다. 흥겨운 추억담을 즐기려 왔던 나는 황망했다. 적확한 대답에 준비가 없었기에 대충 영양가 없는 몇 마디 대화로 차만 마시고 어설프게 헤어졌다. 돌아서는 그 때, 내 마음 속 한 켠 구석에서 풋 별 하나가 빤짝빤짝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햇병아리 교사시절, 자그마한 시골학교에서의 인연이었다. 
  중1학년 담임 반에 하 은총이란 학생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는 은총이 아닌 애물단지였다. 그의 부모는 그 골짝 마을에 십자가도 대롱대롱 불안한 사과 궤짝 같은 교회의 목사님이셨다. 그는 은총을 낳고 흔쾌하여 성씨도 ‘하’씨라, 하느님의 선물이란 의미로 ‘하 은총’이라 했다 한다. 출석부에서 그의 이름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좋은 인연으로 잘 키워야겠다고 제법 해병아리답게 설레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하느님의 은총이가 햇병아리인 나를 울렸다. 좋은 인연으로의 향심이 악연으로 침몰하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까웠다. 그는 요새 말로 약간의 부적응 현상이 있었던 것 같다. 수업시간에 좌정을 못하고 수시로 자유로웠고, 엉뚱한 질문으로 학습 분위기를 흐리고, 생경한 짓으로 학급을 놀라게 했다. 나 또한 학급 전원을 꼼짝 못하게 좌정시켜야만 수업이 되는 신경성 햇병아리 교사였다. 부적응 현상은 오히려 내가 더 심각했던 것 같다. 

  학력만 갖추면 교사가 되던 그 시절. 변변한 ‘청소년기의 심리학 특성’ 하나도 안 읽고 교단에 서는 愚를 범했던 나는 애꿎은 은총이만 미워했다. 
  “ 남들은 다 가만히 앉았는데 왜 너만 … , 부모님 모시고 와. “

가난한 목사님 내외가 오랫동안 아끼고 간직했던 귀하디귀한 ‘구루무(크림)’ 한 곽을 들고 와 허리를 못 편다. 할 수없이 급우들과 좀 떨어져 앉혔더니 자유인은 즉각 그들 곁으로 가서 여전히 담소를 즐기는가 하면, 슬쩍 나갔다 들어오기도 한다. 무엔가 의문을 찾아 헤매는 듯 약간 얼뜨기 같기도 하다. 열이 오른 나는 이번엔 책상과 함께 복도로 쫒아 버렸다. 그래도 창문으로 칠판을 향하게 앉혔더니, 칠판은 고사하고 창문으로 학급전황을 관찰하며 보고를 한다.

  “선생님, 식이가 밥 먹으려고 벤또(도시락) 꺼내요. 분이는 순이하고 얘기해요. ”

  실내에서 보다 더 시끄러워 햇병아리는 교탁을 탁 치고 복도로 나간다. 다시 입실을 시키고 뒷켠, 후미진 곳에 홀로 격리시키며 협박을 했다. 협박이 좀 먹혔는지 학생들한테 오지는 안했지만, 이번엔 연필 뒤 끝에 책을 올려놓고 팽이 돌리 듯 돌리며 신난다고 괴성을 지르는가 하면, 잡아 온 곤충을 드려다 보며 희괴한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협박도 때려도 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무시하지 못하고 먼저 곤두서는 내 신경이 더 문제였다. 다른 과목 시간엔 말은 좀 있으나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고, 오히려 과학이나 수학 시간엔 흥미도가 만점이란다. 그야말로 나하고만 절묘한 궁합이었다. 은총은 지극히 정상아였다. 의사소통이 정확하고 정직했다. 교우관계도 원만하고 성적도 쏠쏠했다. 야외 수업이나 봉사활동 시에는 혼이 빠지도록 적극적이다. 성정이 너무 착해 그의 눈은 천국 어느 녘을 보는 듯 낯설었다. 트집을 잡아 전학을 시키려 해도 사유가 없다. 부적응의 상식도 없던 시대에 ‘수업산만‘은 통할 리가 없다. 날마다 수업연구는 고사하고 은총이만 미워져 학교가 가기 싫어졌다. 

 

  그 날도 은총이를 교무실로 끌고 와 히스테리를 부리며 한참 분풀이 기압을 줬다. 때리고 꿇어 앉혔다. 그리고 깜박 잊고 밖으로 나와 한참을 묘책궁리로 마음을 복대겼다. 
  “선생님, 이제 집에 가면 안 돼요? ”

  정작 주인공을 잊고 있었던 것이 미안했지만 미운 오리 새끼에겐 눈길도 안 주고 
  “ 내일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어? 그러면 가도 돼. ” 
  “ 네~. ” 
  대답은 언제나 확실하게 떡을 친다. 그 명확하고 유창한 대답에 또 한 번 失笑가 날린다.   그래도 벌 받을 때는 가만히 감수한다. 제 딴에도 그것마저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은 모양이다. 그를 보내 놓고도 정신없이 지략을 짜보았지만, 재수 없는 그와의 인연만이 확연할 뿐 방법은 캄캄했다. 한숨과 함께 교무실에 와 퇴근 준비를 했다. 토요일 오후라 빈 교무실이 썰렁했다. 핸드백을 들고 막 나서려 하는데 
  “따르릉 따르릉… ,” 
  늘, 듣던 전화 벨소리가 그날은 유난히 모골이 송연하도록 섬뜩했다.

  “ 네~ xx 중학교입니다. ” 
  “ 여기 순경인데요. 앞산 밑, 전봇대 있는 곳이에요. 그 학교 학생이 감전사고가 났어요. 와서 확인하세요. 죽었어요. 빨리 오세요. ” 
  아무도 없으니 내가 달릴 수밖에, 산간 마을 산기슭엔 송전을 위한 전봇대가 있었다. 산속이다 보니 전봇대와 나무가 어우러져 이들을 교대로 타면 전봇대를 오를 수도 있었다. 전봇대와 나무 요소요소엔 산새들이 둥지를 틀었고, 그 곳은 새들이 알을 낳고 부화하고 기르는 요람이 되었다. 


  헐레벌떡 달려가 확인하니, 대자로 뻗은 작은 시신은 불과 두어 시간 전에 나와 헤어진 은총이었다. 새알을 뒤지러 전주를 탔던 그는 새들도 피한 그 위험한 곳을 어떻게 건들었는지 즉사한 것이다. 호기심과 장난이 심한 것은 알았지만 이럴 수가… .

  어데서 날아든 일격의 뻔치가 나를 가격했다. 심장이 멎는 듯 아찔하며 혼미해졌다. 애물단지 미운 오리 새끼는 이렇게 처참하게 갔다. 하느님의 선물을 잃은 그 부모는 참담함을 딛고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선상님, 어쩌겠어요. 제가 장난이 심해서… , 선상님 속만 섞이고 보답도 없이… , ”

  은총이가 나와 막 헤어지고 죽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의 죽음은 아무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천하가 다 아는 장난꾸러기요. 애물단지였으니까. 그의 부모도 신앙인들이라 하늘의 뜻이라고 아픔을 달랬다. 그렇게 그와 나의 짧은 인연은 간단명료하게 깔끔하게 끝이 났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은 이제는 박물관으로 보내야한단다. 어찌 보면 은총과의 인연은 옷깃만큼의 짧은 스침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짧던 길던 인연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 것 같다. 은총과의 스침 인연도 우리는 아마도 무덤까지 동행할 것 같다. 세월과 더불어 햇병아리 교사도 성숙했건만, 대자로 뻗었던 그 작고 검은 주검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아무리 철없는 어린놈이라도 선생님의 히스테리 기압은 필경 스트레스가 되었을 테고, 그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본능은 저도 모르게 새알을 찾아 전주를 탔을 것이다. 이 秘藏의 비밀은 내 인생의 멍에가 되었다. 그리고 더욱 저어되는 것은 그가 진실로 신이 주신 은총의 선물이었던 것 같다. 어떤 박해도 노할 줄 모르는 그 천진무구함, 성스러워 낯설었던 그 눈빛, 잠시도 가만히 머무를 수 없었던 그 강한 호기심, 탐구심… . 
  그 천재성을 못 알아보고 그저 속박하고 병적인 내 신경에 맞추려 했던 나. 그는 맞춤교육의 전문적 교사를 만났다면 아마 저명한 과학자나 훌륭한 발명가가 되었을 것 같다. 

  누구나 다 가슴에 그만의 별 하나쯤은 간직하고 사는 것 같다. 자랑으로 빛나는 황금의 별, 아름다운 추억의 황홀한 별, 미완의 꿈 슬픈 별, 은총이처럼 아프고 애린별… . 
  하지만 일생동안 내 가슴에 박힌 애리고 슬픈 은총별은 너무나도 푸르고 풋풋한 별이다. 벌을 받다가도 선생님을 찾아 와 ‘이제 가도 돼요’ 하던 그 천진무구함이 나를 용서한다는 듯  항상 가슴속 깊은 곳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내가 교직 일생을 무난히 봉직할 수 있었던 것도 은총 별 덕분이다. 어려울 때마다 가슴 속에서 웃는 그 놈 때문에 얼마나 회한의 눈물을 흘렸던지, 그리곤 속죄하는 마음으로, 보시하는 의지로 새롭게 마음을 다지곤 했었다.

  교직은 봉급을 위한 직업이 아니고 많은 인연들을 만나는 성직이다. 아차 실수로 좋은 인연을 악연의 늪으로 침몰시키는 위험한 직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교사는 아무나 못하는 소명의 성직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의식을 가진 천직 교사가 몇이나 될까. 분명한 것은 교사들은 교직이 끝났을 때, 성직의 본질을 자각하고 아쉬워한다. 다시 한 번 주어진다면, 하지만 주어질 수 없기에 더욱 통석해 한다.

  어차피 교사는 어항 속의 물고기 신세다. 제한된 먹이로 한정된 어항 속 삶이 운명이라면, 후배처럼 축 처진 몰골로 수면으로 떠올라 흐느적거릴 것이 아니라 천직으로 지업 의식을 바꿔 보면 어떨까. 소명의식을 갖고 주체적으로 뛴다면 삶이 훨씬 힘을 받고 윤색이 돌 것 같은데, 또 역으로 힘들었던 학부모와 학생의 존경 대상이 될 것 같은데… . 

  그 동료후배에게 이글을 보내야 하겠다. 
  당신에게는 아직도 기회가 있다. 그 호기를 놓치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성직으로 의식만 바꾸면, 생기가 발발한 나뭇가지가, 물을 치받고 솟아오르는 활어가 바로 당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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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여대 국문과 졸업 
  에세이 문학 등단 
  원종린 수필문학상 수상 
  한국수필 문학 진흥회 기획위원 
  한국문인협회. 이대 문인 협회 
  수필집: 달빛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