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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면서도 닮은 점 - 임병식

Joyfule 2013. 11. 20. 11:28

 

 

다르면서도 닮은 점 - 임병식

 

 

사람은 살아가면서 존경하는 사람의 영향을 직접 받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고  먼 발치에서 흠모하며 사종하면서 닮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성격이나 살아온 모습이 은연중 누구와 닮은 채  살아오다가  나중에 우연히 그걸 발견하는 때도 있다. 후자의 경우로 나와  윤모촌선생의 비교가 아닐까  한다.

 

이점은 지극히  조심스러워서  먼저 밝히고 들어갈 부분이  있다. 그렇게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분명히 말해서 우선  다른 점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분은  뛰어난 문사인데다  이미 우리수필문단에서  비중있고 존경을 한몸에 받을 뿐 아니라  후배문인의 귀감이 되고 있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이점은 내  스스로 충분히 깨닫고 있는 점이니 독자제현께서는  선입견을 가져 ‘시건방지다’거나 ‘주제넘다’고 조소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러면 그 문제는 이쯤해서 넘어가고, 그렇다면  무엇이 닮았는가. 이제  부터는 그점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언급해 보고자 한다.

 

그럼 먼저  선생이나 나나 함께 수필을 쓴 작가이니 수필이야기부터 꺼내보겠다. 선생의 작품을 읽어보면 유독 성정이 곧고 지사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리고 글속에서  역사의식이라든가 대  일본에 대한 비판의 시각이 강하다. 나 또한 마찬가지 성향이 강함을 인정하게 된다.

 

또한 선생은 살아오면서 서화 수집에 몰두했던것 같은데  나또한 분야는 다르지만 수석수집에 빠져든 적이 있다. 이는 하나의 집념을 요한 것으로 닮은 꼴임을 알수 있다. 나는 그동안 모아온 돌 일부를  고향지자체에 기증하기도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생은  글을 쓰면서 문인의  자세를 특히  강조하고 인격수양을 요구하는데 나도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어 여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아니다.

 

 써내는 글이 ‘글 따로 사람 따로’의 이중적인 것이 되어서는  아니된다고 늘 경계하는 것이 나의  신조요  버릇이기도 한 것이다. 선생이 어느 글에서 써놓은 다음과 같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상을 타는데  몰두하거나 기웃거리는 것이 심히 거부감을 준다는 것이인데 나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상이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받아야 하고 또 그렇게 주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더라도  한해에 같은 사람이  2-3개 씩이나 싹쓰리 해서 받는 것을 보면 도대체 그런 사람은 ‘안줘서 못받고 없어서 못 받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  대단히 추해 보이기 까지 한다. 성정탓이 아닐수 없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치  공산 국가의 원로들이 큰 행사  때면 큼직한 훈장을 있는대로 가슴에  달고 나와 과시하는 것처럼 보여서 눈살이 찌뿌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수상자격이 의심스러운 사람이 상주는 동네를 기웃거리고 그런 상을 타기 위해 몰두하는 것을 보면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되고 절로  혀가 차진다. 그런 것 또한 나와 선생은  공유하는 점이다. 그것은 어쩌면  기질문제로 말 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생은 잘못을 보면 참지 못하고 행동하는 버릇이 있었던것 같은데 나 또한  지난날을 돌아보면 이런 점이 한두가지가 아닌 것이다.

 

내가 전에 저질은  일을 두고 선생도 아마 그런 상황이면 그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일이 있다. 생각하면 되짚어 보기도 싫은 일인데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  나는  서울에서 개최한  주요 문학행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한데  어떤 사람이 사회권이 없으면서도 중간에 일어나서  회칙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회의를 주도하지 않는가.

 

그것도 치기 회장단 선출은 전임회장이 사회를 보도록 되어 있는 회칙을 무시하고 그런 일을 자행하는 것이었다. 아마 내가 폭발을 하고 만 것은 나의 권한을 침해당한 것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만장해 있는 상태에서 큰 소리를 치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선생의 작품을 읽어보면  직장에서 쫓겨나는등  시련을 겪은 일이 눈에 띄는데 나도  불의를 보고 참지를 못하여 곤욕을 치르고  봉변까지 당한 일도 있다.

 

직장 초년시절의 일이다.  담당업무인 방위업무를 인계받고 보니 자원이 10명이나 모자랐다. 파악해 니서니 상당수가 이탈하여 원양어선을 타거나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한데 그 배후에는 전임자와 예비군중대장이 있었다. 이는  작품 ‘어떤 봉변’에서도 이미 언급을 했지만 그 일로 중대장과 격투를 벌린 일은 두고 두고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한 둘 더 소개하자면,  하루는 파출소 차석근무를 할  때이다. 모방송국 PD가 신고를 했다. 그런데 실상을 파악하니 처벌할 사람은 오히려 그 사람이었다. 그는 노점상을 단속하라는 것이었지만, 알고 보니 수박을 흥정하는 과정에서 시비가 일어난 일이었고, 홧김을 수박을 몇덩어리나 땅에 내려쳐서 깨놓은 상태였다. 그걸 확인하고 변상해 주고 사과하라고 말하자 그는 안하무인격으로 나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이렇게 하여 격투가 벌어졌고, 다른 직원들은 후환이 두려워 모두 모습을 숨겨버렸다. 파출소장까지도 연락을 받고는 나타나지 않고 꽁무니를 뺐다. 그가 그렇게 기고만장한 것은 당시 세태가 언론사종사자들의 이런 행포를 눈감아 주던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가 특별히 서정과 인척관계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경찰서로 상황실장에 의해 압송을 당하기도 했는데, 만약에 내가 저자세를 보였다면 중징계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번은 사법고시를 합격하여 과장으로 부임한 사람이 동료에게 심히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머리를 모자나 쓰려고 폼으로 달고 다니느냐. 왜 머리를 쓰지 않아요?”했던 것이다. 그 말에 그 직원은 눈물만 흠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나섰다. “당장 사과 하십시오. 그게 부하 직원에게 할 수 있는 말입니까. 앞으로 승승장구할 분이 그러시면 안되지요”했더니 미안하다고 사과는 하면서도 괘씸한 생각이 들었든지 나는 다음날로 시골 지서로 내쫓기고 말았다.

 

나는 글을 쓰는데도 올곧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선생은 글속에서 그런 기질과 예화가 많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선생에 대해서는 김태길선생이 평한 말이 있다.

 

'수필가는 크게 나누어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수필을 대하는 사람으로, 자기가 좋은 수필을 쓰고, 좋은 잡지에 자기 수필이 실리고, 한 마디로 말하면 개인주의적인 견지에서 수필을 대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시야를 넓게 해서 한국의 수필계 전체를 염두에 두고 수필을 대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윤모촌 선생은 한국의 수필계 전체를 항상 염두에 둔 그러한 수필가라고 평한다. 한국 수필의 위상을 넓히고 한국의 수필인들이 훌륭한 수필을 쓰기에 맞는 인격 갖기를 원한 선비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윤모촌 선생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속됨이고 속된 사람인데 예를 들어서 상 타기를 좋아한다든지, 자기 이름을 앞에 내세우려고 하는 속된 사람, 그러한 수필가를 아주 싫어했다'는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당신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올 여름이 가기 전에 기획을 하나 해놓은 일이 있다. 당신은 수년전에 이미 작고를 했지만 그의 문하생을 통해서 당신이 평소에 수필을 쓰는 후배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무슨 생각을 전수하고자 했는가를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아마 간접적으로 듣게 되는 자리지만 유익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 날을 기대하고 있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