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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인생 역정 (3) 쫓기는다윗:

Joyfule 2018. 6. 23. 09:47
 

다윗의 인생 역정 (3) 쫓기는다윗: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놉의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가서 왕명이라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먹을 것과 칼을 얻었다. 여기서 다윗의 옛날 신앙과 용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삼상 21:1-9). 그 곳에서 다윗은 사울의 대적인 아기스에게 보호를 구하여 가드로 갔다.

 

그러나, 이 블레셋(가드는 그 5개 중요 성읍의 하나) 왕은 그의 보호를 거부하고 오히려 붙잡았으므로(삼상21:14,시 56편표제)다윗은미치광이를 가장하여 간신히 석방되었다(시 34편표제).그는신앙을다시 찾고(시 34편)유대로돌아와아둘람 굴에 숨었다(삼상 22:1).

 

그러나 그의 부모는 모압으로 도망갔다(삼상 22:3,4).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사모하여 부하로 따랐다. 그 중에는 놉의 제사장 아비아달과 선지자 갓도 있었으므로(삼상 22:5,20,26:6) 신앙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 다윗은 그일라의 위급함을 듣자, 자신의 위험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구출했으나, 그는 배신하여 다윗을 사울에게 내어주려고 하였다.

 

이 때 요나단은 다윗을 찾아 위로하고 장래 다윗은 왕이 되고, 자기는 그 다음이 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갔다(삼상 23:1-18). 이 시기에 다윗은 몇 번씩이나 사울에게 목숨을 빼앗길 뻔한 아슬아슬한 일도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으므로 모면했다. 그는 어떤 때는 사울의 생명을 구해 주기도 했다.

 

한번은 다윗과 그 일행이 동굴에 들어가 있는데, 사울이 잠을 자기 위해 그 굴에 들어왔으므로 그를 죽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지만, 기름부은 자에게 손을 댄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일행의 결행을 만류하고, 후일에 증거로 삼기 위해 겉옷 자락만을 가만히 벴다. 다윗은 그 후 사울에게 그 옷깃을 보이면서, 자기의 살의가 없음을 사울에게 애소하였다. 사울은 일시적, 또는 감정적이나마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삼상 24장).

 

다윗과 그 일행은이스라엘 사람의 재산을 도적의 손에서보호해 주고(삼상 23:1,25:16,21,27:8) 그 사례로써 식물을 받았으나, 조세와 같이 요구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발의 무례한 거절에 대해서는 하마터면 큰 피를 볼 뻔했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의 현명한 조처로 화를 면하고 후에 그녀는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삼상 25:24-34). 또 한번은 자기를 추격하는 사울과 그의 군대장관 아브넬이 거느리는 정병 3,000의 진에 잠입하였다가 취침하는 사울을 죽이라는 부하를 타이르고 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서 아브넬의 불충을 책망하였다(삼상 26:5-16).

 

그 후에도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어 유대를 떠나 블레셋(가드)으로 다시 건너가 아기스 왕에게로 갔다. 그는 시글락이라는 한 성읍을 얻어 거기서 살았다. 그는 생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하여(구원<舊怨>도 있지만) 아멜렉을 쳐서 우양을 노략질하고도 아기스에게는 유다를 쳤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또 실수를 했다. 거기서 그는 1년 4개월지냈다(삼상 27장).블레셋사람과사울이 길보아에서 싸울 때에, 다윗은 다행히 참전을 면했다(삼상 28:1,2,29장).

 

이 전쟁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그 부자(父子)를 위해 애가(哀歌)를 지었다(삼하 1장).

 

 (4)유다왕으로써의 다윗:

 

사울의 죽음으로 다윗은 유대 사람에게 왕으로 추대되어 헤브론에서 살면서 유다를 다스렸다(삼하 2:1-10). 때에 그의 나이는 30세였다(삼하 5:4). 그리고 이스라엘의 다른 11지파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고 2년 간양 자의 사이에 싸움이 계속되었으나, 이 전쟁은 이스보셋이 암살됨으로써 끝났다(삼하 2:12-4:12).

 

다윗의 헤브론 시대는 7년 반 계속 되었으며, 점점 강하여져 여섯 아내로 부터 여섯 아들을 얻었다. 이것은 가정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아 다윗에게 대립시킨 것은 아브넬의 소위(所爲)인데, 그는 자만하여 사울의 첩과 상통하였는데 이스보셋이 이를 책망하자 아브넬은 다윗에게 충성키로 하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베냐민인을 규합하여 다윗에게 귀순하였다. 그의 태도는 야비하나, 다윗을 이스라엘 전국 왕으로 추대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삼하 3:1-21). 요압이 아브넬을 살해했을 때, 다윗은 이를 슬퍼하여 장사하고 애가를 지어 부르니 전 국민의 신뢰감은 더욱 두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