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인생 역정 (5)이스라엘 왕으로써의 다윗:
이스보셋의 사망으로 다윗은 이스라엘 12지파 전체로부터 왕으로 추대를 받음과 동시에, 왕국 확립 사업에 착수하였다(삼하 5:1-5). 당시 이스라엘의 성읍 몇 개는 블레셋과 가나안 사람에게 빼앗겼었다. 다윗은 우선 여부스사람이 점령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이것을 수도로 하였다. 이 도성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경계에 있으므로 양자의 반목을 완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 도성이 가나안 사람의 손에서 해방된 것은 남북의 교통을 편리하게 하고, 왕국의 결합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 후 블레셋 사람이 두번씩이나 침입했으나, 다윗에게 완패하여 왕국은 평정되었다(삼하 21:15-22). 나라가 안정되자 다윗은 엘리 제사장 때에 블레셋에게 빼앗겨 기럇여아림에 있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왔다(삼하 6장).이때다윗은소를잡고 전 국민과 더불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노래 부르며 춤추었다. 다음에는 예배 의식을 성대히 정하고(대상 15,16장)웅장한성전건축을 계획하였다(삼하 7장,대상17장).나라의안전을공고히 하기 위하여 또 우상 종교로부터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계속적으로 주변 제국과 싸워 이를 정복하여(삼하8장, 10장, 12:26- 31) 그 국경은 옛날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까지 확장되었다(창 15:18).
또한 다윗은 사울의 유족을 찾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왕자처럼 후대하여 옛 친구의 은혜를 갚는 것도 잊지 않았다(삼하 9:9-13). 다윗 왕권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융성하였으나, 한 큰 범죄로 그의 영혼은 급전직하 흑암의 무저갱으로 떨어지게되었고, 가정은 고통 당하게 되었다.
즉, 그가 헷 사람 우리아에 대해 큰 죄를 범했는데, 이것은 대(對) 암몬 전쟁때의 일이다. 다윗이 왕궁에서 낮잠을 자다 깨어나 충장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목욕하는 것을 보고 음욕이 일어 불러다가 간음하여 잉태케했다. 그는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일선에서 우리아를 소환시켜 그 아내와 동침시키려고 했으나, 충성스러운 우리아는 일선 장병을 생각하고 왕의 귀가 권유를 사양했다. 다윗은 음모가 실패하자 요압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리아를 사지에 몰아넣도록 하여 죽게 했다. 그리고 밧세바를 아내로 취하였다(삼하 11장).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비유를 들어 죄를 핑계치 못하게 한 다음, 단도직입적으로 책망케했다(삼하 12장).이에다윗은즉시진심으로 회개하였다(시 51편).하나님의 징계는 일부는 직접, 일부는 이후의 사건 중에 당연한 결과로써 나타났다. 불의의 씨인 아들이 죽고(삼하 12:19) 불법적인 욕정과 복수는 그의 가족을 파괴했다. 불효한 왕자의 야심은 내란으로까지 발전하고(삼하 13-19장)이때의여파는그 후 다시 한번 세바의 반역으로 나타났다(삼하 20장).즉,이복남매암논이 다말을 욕보이고, 다말의 오빠 압살롬은 암몬을 죽이고 도망쳤다.
그 후 부왕의 용서를 받고 귀국한 압살롬은 인심을 얻어 왕인 아비에 반역했므로, 다윗은 예루살렘을 탈출하여 피난생활을 하게 되었고,압살롬은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그러나 다윗 군과 압살롬의 군이 싸울 때에 압살롬은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려 살해되었다.
내란이 일단 끝나자, 다윗은 민심을 잘 수습하지 못한 채 환궁하였다. 국권이 회복되자,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병원수(兵員數) 증강을 위해 인구 조사를 하므로써 인본주의, 교만죄에 걸려 하나님의 징계를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갓을 통하여 ⓧ 3년 흉년, ⓨ 3개월 대적에게 쫓김, ⓩ 전국에3일간의 온역, 이 세 가지 중에서 택일하라고 할 때 그는 하나님께 징계 받기를 원해ⓩ을 택했다. 그 결과 죽은 자가 7만 명에 달했다.
다윗의 치세는 솔로몬의 즉위 확정, 요압과 시므이에 대한 처벌 및 바실래의 후손에 대한 후대를 유언함으로써 끝났다(왕상 1장,2:1-11).
그는 40년 치리했는데, 7년 반은 헤브론에서, 33년은 예루살렘에서 하고, 71세에 사망했다(삼하 5:4,5,왕상 2:11).
결론적으로 다윗은 일찍부터 이스라엘의 가인(歌人)으로서 명성을 떨쳤다(삼하 23:1). 히브리 전설에서는 시편의 태반은 상술한 바와 같이 다윗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가 음악을 애호한 것, 수금을 잘 탔다는 것, 성전에서 부를 찬송가를 지었다는 것 등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삼상 16:18-23,삼하 6:5,대상 6:31,16:7,41,42,25:1, 암 6:5,스 3:10,느 12:24,36,45,46). 시편 중 73편은 히브리어의 표제로 다윗의 작품이라고 한다.
59편과 7편은 아직 다윗이 사울의 궁전에 있을 때,34˙52˙54˙56˙57˙63˙117의 각 편은 피난의 곤란한 시기에, 그리고 3˙18˙30˙51˙110편 등은 그가 왕이 되어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있을 때의 작품이다. 그는 큰죄를 범하여 흑암의 시기도 있었으나, 총체적으로 그의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삼상 13:14)이라고 부르기에 합당하였다.
그는 우리아의 일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왕상 15:5). 다윗은 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었다(행 13:36). 그가 인류에게 준 감화는 너무나 크다.
그의 시편은 몇 세기에 걸쳐 그리스도 교회에서 애창되어 그의 영적 영향이 후대에 까지 미치고 있다. 다윗이야말로 다음에 오신 `다윗의 자손'임과 동시에 `다윗의 주'이신 분을 위해 그 조상들의 계보 사슬 중에서 특히 중대한 고리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마 1:1,22:4145).
<참고>
약속된 크신 임금, 즉 메시야도 역시 '다윗'이라고 불리운다(렘 30:9,겔 34:23,호 3:5). 오래전부터 메시야의 나라도 '다윗의 나라'라고 불리워 오고 있다(막 11:10).
즉, 거기서 주님은 '다윗의 위'에 앉아 다스리며(렘 22:2,4),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계 3:7). 이 모든 표현은 다윗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영원하고 한량없으신 자비를 말하며(사 55:3,삼하 7:12), 곤고한 날에 이스라엘의 의지와(시 89:3,4,20,35,49,렘 23:5),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성(행 2:29)을 말하며, 특히`다윗의 자손'이라는 이름(마 1:1,막 10:47,눅 20:41)으로도 발견된다.
바벨론의 포로 이후 메시야의 내림의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야를 다윗의자손으로서 다윗의 왕국을 재현할 이상의 왕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또 구약에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삼하 7:12,13,사 9:7,16:5,렘 23:5,30:9,겔 34:23,24,37:24).
이와 같은 배경에서 메시야는 다윗의 가계(家系)와 연결되는 관계상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윗의 자손'이란 메시야의 칭호이다. 마태의 계보(마 1:1)는 물론 바울도 로마서 1:3에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혈통(씨)에서 나셨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자칭한 일은 없지만, 최후의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소경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부르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으셨다(막 10:47). 메시야인 예수를 묘사하고 있는 마태복음에는 계보 이외에도 이 호칭이 눈에 띄게 많다(9:27, 12:23, 15:22, 20:30, 31, 21:9, 15).
또, 주의 통치에 대하여 예루살렘 거민 중에서 가장 약한 자가 그날에는 다윗과 같게 된다는 예언도 있다(슥 12:8).
참조 : 성경 인명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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