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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부활은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Joyfule 2018. 7. 11. 13:23


 
    당신의 부활은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부활(復活)이라는 말은 한자어로, 다시 소생한다.라는 뜻이다. 육체를 가진 사람은 예외 없이 모두 죽게 되어있다. 그게 1차죽음이다. 그러나 1차죽음이 있다고 해도 다시 살아난다. 1차죽음에서 살아난 이후에, 심판을 받아서 영생을 얻어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이들과 영벌인 지옥에 던져지는 이들로 나누어진다. 불과 유황이 타는 불 못에 던져져서 끝없는 고통에서 시달리는 것이 2차죽음이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을 굳게 믿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의 구원론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소설에 불과하다고 코웃음을 치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구원론이 진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그게 바로 부활의 사건이다.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형벌을 받기 이전에,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자신이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고, 자신의 공언대로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사건이 바로 부활사건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사건이 진짜라면, 하나님과 천사 그리고 사탄과 귀신인 영적 존재들이 진짜이고, 이 땅을 떠나 심판대에 서면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지게 된다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왜냐면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이며, 자신의 믿음을 인정받아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으리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사건이 진실이고, 부활사건이 진실이라면 당신의 영혼이 과연 영원한 부활의 삶을 누릴지 아니면, 그 반대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을지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부활의 사건은 역사적인 실제인가?

 

부활사건이 진짜인지 아닌지 증명하는 것은, 크리스천으로서는 목숨을 거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의 신앙은 부활사건과 함께 살든지 아니면 죽든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 바울사도의 견해를 생각해보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 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3-17)

 

부활의 사건이 역사적으로 증명되려면, 부활사건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를 지켜보았나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알아보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고전15:3-6)

 

위 말씀에 의하면, 베드로와 열두제자 드리고 오백여명의 제자들에게 보이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말하자면 부활한 예수님을 본 사람들은 바울서신을 쓴 시대에도 여전히 태반이나 살아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역사적으로 충분히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막달라 마리아와 엠마오로 가는 제자와 그리고 제자들의 모임에도 나타나셨다. 마리아와 베드로는 처음에 믿지 않았고, 제자들은 무척이나 놀랐으며, 예수님이 나타나셨던 장소에 있지 않았던 도마는, 당시에 그 사실을 믿지 않았지만 나중에 이를 인정하고 경배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신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를 박해하며 적의를 품었던 바울에게도 나타나서, 사도바울이 회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부활의 가장 큰 증거를 부활사건을 목격하고 변화 받은 초기기독교인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사건을 목숨을 걸고 전파하려고 애썼다. 그 대가로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혹독한 핍박과 박해뿐이었으며 심지어는 목숨까지 내어주어야만 했다. 부활사건이 진실이 아니라면 이들이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할 까닭이 없었다. 예수님의 가족들조차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들은 예수님이 일으키는 기적의 현장에 호기심으로 따라가 보기는 했지만, 평범했던 어린 시절을 같이 지냈던 형제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나중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사도의 반열에 들어가서 초기 예수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 이유는 고린도전서 157절에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현장에서 제자들은 겁을 집어먹고 두려움에 떨며 죄다 도망쳤다. 베드로는 재판받는 장소에 따라가기는 했지만, 하찮은 여종에게조차 3번이나 거짓말을 하며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숨겼다. 그러나 베드로는 나중에 변화하여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앞에서도 당당하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선포하였으며, 어떠한 고난과 핍박이라도 기꺼이 받아드리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와 다름없는 순교자의 길로 걸어갔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기 때문이다.(고전 15:5-6) 그러나 가장 드라마틱한 이는 바로 사도바울일 것이다. 그는 유대교의 입장에서 기독교인을 박해하고 핍박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가 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의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들도 부활사건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예수님이 역사속의 숨겨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진실이라면, 성경에서 말씀하신 모든 이야기가 진실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행복하게 살게 되는가? 그게 여러분이나 저나 지대한 관심사일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지 않느냐고? 물론 여러분이 영원한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예수를 믿고 주일성수를 하며 교회에서 요구하는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식에 참석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한다고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지키며 살아야 될 것이 아닌가?

 

누가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되는가?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1)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4:1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모든 크리스천들이 바라는 영생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그러나 천국은 하나님께서 우주의 한쪽에 건설하신 신도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은 어디서나 천국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다스리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시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사람 안에 천국에 이루어진 증거는 무엇인가? 바로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나서 기적과 이적으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야하며, 마음 안에 평안과 기쁨이 넘쳐나고,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영혼과 삶에서 드러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들은 1분짜리 영접기도를 하고 주일성수를 하면 영생을 얻었다고 믿고 있지만, 정작 성령이 함께 하시는 성령의 능력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고, 도리어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아무리 아니라도 말해도, 우리네 교인들은 귀를 닫고 눈이 가려지고 마음이 굳어져서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자신들이 깨닫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해도 성령이 계시며, 성령을 깨우기만 하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만 고장 난 레코드처럼 반복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되는가?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10:25~28)

 

여기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영생을 얻는 조건을 질문하고 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을 뒤집으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영생이 없으며 지옥에 던져진다는 것이다.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어떻게 1분짜리 영접기도를 하는 것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부활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14:21)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5:10)

 

당신이 하나님을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를 인정하시어서 넘치는 사랑으로 보답하고 계시며 삶과 영혼에서 누리고 있어야 할 것이다. 아니라면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을 지라도, 이는 당신의 짝사랑에 불과하다. 하나님을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를 사모하며 예수님이 보고 싶어서, 쉬지 않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자들이다. 성령께서는 하루에 1시간도 기도하지 않는 자들이 어떻게 나를 만나겠냐고 하셨다. 또한 이틀이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이 떠나신다고도 말씀하셨다. 서로 사랑하는 애인이 있다면, 하루에 한 번도 연락하지 않겠으며 이틀 동안 아무 연락 없이 지내겠는가? 당신이 하나님을 부르며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의 기도를 하지 않고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다. 설령 기도하도 있다고 하더라도 의무적으로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기도자리에 앉는다면 이는 하나님을 가증스럽게 여기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세속적인 욕심을 이루어달라거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도만을 주구장창 반복하고 있다면, 이 역시 하나님을 알라딘의 램프에 나오는 요정으로 여길 뿐이다. 그래서 평생 새벽기도를 다니고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기도를 훈장으로 여기는 자들도 성령과 동행하는 삶과 무관하게 살고 있는 이유이다. 어쨌든 당신이 하나님을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면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의 습관으로 이를 증명하여야 할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하나님을 사랑하는 또 다른 증거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할 것이다. 계명은 명령이라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뜻과 동일한 의미이다. 사랑하는 애인이 있어도, 애인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를 잘 살펴서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뜻은 성경에 조목조목 나와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샅샅이 살펴서, 날마다 그 뜻대로 살려고 애쓰고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그 뜻대로 삶을 적용하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물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내용은 무능하고 무기력한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하나님이 모르시겠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라고 하신 적이 결코 없으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동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서, 날마다 쉬지 않고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절대적인 조건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깨닫게 해주시고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죄에 넘어졌더라도 전심으로 회개한다면 깨끗하게 용서해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이 내려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은 부르신 것은 지옥에 던지시려는 게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함께 보내고 싶어서이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서, 우리도 부활을 경험하며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누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매년 찾아오는 부활절에 크리스천들은 설교단상에서 선포되는 부활절 메시지를 들으며 영생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감격하지만, 정작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대로 살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이 이 땅을 떠나면 생명의 부활이 아니라 영원한 죽임이 기다리는 부활임을 깨달을 때 경악해하며 통곡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이 땅에서 아직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자신이 생명의 부활이 주어지는 자격이 있는지 날카롭게 살펴보고, 아니라면 죽기 살기로 그 자격을 얻도록 애쓰고 힘써야 할 것이다. 성령께서 필자에게 해주신, 기도의 강으로 가는 길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갈 수 없고, 영생으로 가는 문이니 어찌 좁은 문이 아니더냐?라는 말을 올려드리며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