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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 신달자

Joyfule 2008. 7. 8. 01:18
 
    등잔 - 신달자 인사동 상가에서 싼값에 들였던 백자 등잔 하나 근 십 년 넘게 내 집 귀퉁이에 허옇게 잊혀져 있었다 어느 날 눈 마주쳐 고요히 들여다보니 아직은 살이 뽀얗게 도톰한 몸이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워 다시 보고 다시 보다가 기름 한 줌 흘리고 불을 켜 보니 처음엔 당혹한 듯 눈을 가리다가 이내 발끝까지 저린 황홀한 불빛 아 불을 당기면 불이 켜지는 아직은 여자인 그 몸 * * * * * * * * * * * * * * * * * * * * * 젊은 여자가 아름다운 것은 편견에 물들지 않은 까닭입니다. 많은 말들로 채워지지 않은 까닭입니다. 나이 많은 여자가 아름다운 것은 편견을 비운 경험이 들어 있는 까닭입니다. 말 속에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열정이 없는 젊음 뒤에는 체험이 없는 늙음이 따라간다지요. 어느 사진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름이 많게 나온 여인에게 사진을 수정해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사진의 주인은 자신의 주름을 빼거나 넣을 수 없는 세월 그 자체라고 말하며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이는 자신에게 걸맞은 얼굴을 주지요.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할 때가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 아시지요? 오래전에 사둔 백자 등잔 하나.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습니다. 불을 켜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황홀한 빛을 밝히는 게 아닙니까? 아직 여자인 몸에 불이 켜지는 게 아닙니까? 박주택·시인 [시가 있는 아침(중앙일보 2008.06.2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