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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선물 - 홍미숙

Joyfule 2012. 9. 19. 10:26

 

   따뜻한 선물 - 홍미숙
                                                        

 

  “아무도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 주지 않아 내가 나에게 선물을 했습니다.”
  딸아이가 선물꾸러미를 들고 밝게 웃으면서 말을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는 잘했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따뜻한 선물을 하면서 살아가라고 했다.
  

이 세상에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길 사람은 바로 나다. 그런 나에게 선물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도 나를 사랑할 리 없다. 내가 나에게 따뜻한 선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함은 물론이다. 그 선물은 그 어떤 선물보다 값져야한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선물은 내가 남에게 주어야 하고, 남이 나에게 주어야 선물인 줄 알았다. 그 동안 나를 위해 내가 산 물건은 선물이라고 생각 안 했다. 필요해서 산 물품쯤으로만 알았다. 딸아이로 인해 선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남에게 선물을 제대로 못하고 사는 형편을 안타까워하고, 남으로부터 선물을 별로 받지 못하고 사는 형편도 안타까워하면서 살아왔던 나였다.  

  
  내가 아직 젊고 친척 어른들이 많아 선물을 받기보다는 선물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어머니, 아버지를 비롯하여 당숙, 고모, 외삼촌, 이모 내외분들이 대부분 살아계신다. 집안이 커서 다 모이면 누가누군지 잘 모를 정도다. 내 위로 어른들이 백 분 가까이 계시고, 내 아래로는 이백 명은 훨씬 넘을 것이다. 동생들, 조카들이 수두룩하다. 그렇기 때문에 집안 행사가 끊이질 않는다. 친척들은 내게 소중한 선물이다. 친척들을 만나면 선물을 받은 것처럼 언제나 기쁘다.
 

 친척이 많은 덕분에 행운이 늘 따라다닌다. 나를 걱정해 주는 어른들이 많이 계시고, 나를 누나나 언니라 부르며 따르는 동생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그 밑에 나를 고모, 이모라 부를 수 있는 조카들이 소복한데 행운이 따를 수밖에 없다.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많은 것 자체가 행운이다. 선물을 별로 받아본 적 없다고 투정부릴 일이 아니다. 도리어 내가 받은 사랑의 선물을 내 놓아야할 판이다. 따뜻한 선물을 너무 많이 받은 사람이 바로 나다.
  

딸아이처럼 생각을 안 해서 그렇지 생각해보면 나도 나에게 선물을 많이 하면서 살아왔다. 그랬으면서 기뻐할 줄 몰랐다. 당연한 것쯤으로만 여겼다. 부모님께는 셀 수 없을 만큼의 선물을 받으며 살아왔다. 포장을 근사하게 안 해서 그렇지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선물을 주셨다. 이제야 누구보다 선물을 많이 받고 사는 사람이 나임을 깨닫는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얼마 뒤 설날이 다가왔다. 딸아이는 이번에도 커다란 선물꾸러미를 안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지난 번 보다는 작은 소리로 말을 한다. 제 선물만 사온 게 조금은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엄마, 이번에도 아무도 나에게 선물을 주지 않아 내가 나에게 선물을 했을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니까요.”
  그리고는 빙그레 웃으면서 선물꾸러미를 안은 채 제 방으로 들어간다. 그런 딸아이를 바라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고, 이번에도 잘했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딸아이의 행동을 보면서 나도 나에게 선물을 할 때마다 기뻐하리라 마음먹었다. 기뻐하면서 살아가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다. 
  

앞으로 나를 더욱 사랑하고, 더욱 챙기면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래야 남도 사랑하게 되고,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내가 나에게 고마워하고, 수고했다는 말도 아낌없이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이것이 진정 따뜻한 선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