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유대교
3.8. 카발라와 유대 신비주의
3.8.1. 유대교에 있는 신비주의
사람들은 랍비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하늘 나라와 지옥을, 천사나 악마를 믿습니까? 죽음 이후 영혼은 어떤 일을 당합니까? 하나님과 이 우주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랍비 유대교는 이런 우주론적인 질문에 대해 매우 포괄적인 태도로 대답을 한다. 개인적인 견해를 존중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주로 카발리즘과 유대 신비주의가 다루고 있다. 유대인들은 40세가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카발리즘이나 유대신비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40세가 되기 전에는 토라나 탈무드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비주의와 신비한 경험들은 고대로 부터 유대교의 한 부분이었다. 토라는 천사의 초청에서 부터 예언자들의 꿈과 이상에 이르기 까지 신비한 경험들로 충만한 책이다. 탈무드는 영혼이 육체에 붙을 때 비로소 실체로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토라가 주어 지는 시내산 바로 그 장소에 모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유대인들의 영혼들이 있었으며 그 영혼들은 모두 토라에 동의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신비적인 것을 성숙한 사람들에게 가르치지만 그것을 글로 남기지는 않는다. 탈무드도 매우 애매한 말로 신비주의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고대 신비주의 자료들로 부터 ‘마아세흐 베레이쉬트’(창조의 사역)와 ‘마아세흐 메르카바흐’(에스겔의 이상의 마차의 사역)에 이르기 까지 신비주의 자료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중세에는 ‘쪼하르’같은 신비주의적인 책들이 저술되었다. 이것들은 고대의 신비주의적인 기록들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랍비 유대교 신앙의 많은 주제들과 마찬가지로 신비주의도 개인적인 해석을 수용한다. 하시딤에게 있어 신비주의는 아주 중요하다. 예컨데 하시딤의 기도집에는 신비주의자들의 주장이 일정하게 수록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신비주의를 참고할 뿐이라고 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신비주의를 가치 없는 것이라고 매도한다. 신비주의는 ‘카발라’로 알려져 있다. 카발라는 ‘받아들이다’란 의미이다. 히브리어의 이 단어는 결코 어둡거나 악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영어에서 ‘카발’은 음모 또는 비밀 결사로 해석된다.
3.8.2. 카발라: 잘 못 이해된 교리
카발라는 가장 잘못 알려진 유대교의 얼마 안되는 교리들 가운데 하나다. 많은 사람들은 카발라를 유대교의 어두운 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중세 문예 부흥기에 살았던 기독교의 식자층 사람들에게 카발라는 인기가 있었고 이들은 카발라를 기독교 교리에 맞도록 재해석 하기도 했다. 예컨데 오늘날 뉴에이지 책방에서 발견할 수 있는 ‘카발라 데누다타’는 열개의 세피로트를 말하고 있는데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것을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위해 채택 하기도 했다. 이것이 가끔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지기 때문이다. 세피로트는 세 개의 그룹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그룹으로 나뉘어 지기도 한다.
카발라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은 ‘실천적 카발라’로 알려져 있으며 이것은 ‘마법’이라고 불리워졌을 정도로 세상에 영향력을 나타냈다. 탈무드는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했던 랍비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어떤 랍비들은 하늘에 올라 하나님과 천사들과 함께 토론을 했다고도 한다. 어떤 학자는 하나님의 많은 이름들을 대다가 사람을 창조하기도 했다고 한다. 후세의 한 이야기에 따르면 어떤 랍비는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입에다 놓음으로써 생명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카발라의 본질은 아니다. 카발라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런 신비하고 기괴한 일들이 바로 하나님의 힘으로 일어났다고 말하려 했다는 점이다.
3.8.3. 하나의 ‘소프’와 열의 ‘세피로트’
카발라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하나의 ‘소프’라 하고, 10 개의 ‘세피로트,’ 그리고 생명의 카발라 나무를 등장시킨다. 창세기 1장 27절을 형상화 했다고 보면 된다.
카발라에 따르면 하나님의 본질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인 것이다. 이것이 ‘소프’다. 이것은 ‘끝없음’이란 의미로 시간이나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능력의 한계가 없다. 소프는 우주를 다스리면서 10 개의 세피로트와 관계를 맺는다. 세피로트는 하나님의 본질을 부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피로트는 케테르(왕관), 호크마흐(지혜), 비나흐(이해), 헤세드(자비) 또는 게둘라흐(위대함), 게부라흐(힘), 티페레트(영광), 네트짜흐(승리), 호드(위엄), 예소드(기반), 말쿠트(주권)를 말한다. 이 가운데 다섯 가지는 역대상 29장 11절에 언급되어 있다. 열의 세피로트는 남성과 여성의 가치를 포괄한다. 카발라는 하나님의 여성적인 면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세피로트는 옆의 그림과 같이 표현된다. 이것을 생명의 세피로트 나무, 또는 생명의 카발라 나무라고 한다. 이 나무의 특징은 각 속성이 서로 기여하며 서로 관련한다는 것이다. 세피로트는 그 나름대로 또는 통합하여 우주에서 활동한다. 세피로트는 인간을 포함 삼라만상과 교통한다. 세피로트에 대한 구체적인 공부는 유대학의 신비주의 부분 즉 카발리즘에서 따로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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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회당과 랍비
3.9.1. 회당 (시나고그), 슐, 템플
회당은 유대교 공동체의 센터이다. 이곳에서 기도하고 공부하고 교육시키며 아울러 구제 및 사회 활동을 한다. 회당을 히브리어로 '베이트 크네세트'라고 한다. 그 말은 '모이는 집'이란 뜻이다. 이것이 헬라어로 ‘시나고그’로 번역되었는데 오늘날에는 베이트 크네세트 보다 시나고그란 말이 보편적이 되었다. 정통파 하시딤은 회당을 '슐'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독일어 '슐레'를 차용한 이디쉬다. 즉, 회당을 교육기관으로 표현한 것이다. 보수파 유대인들은 '시나고그'란 말을 사용한다. 개혁파 유대인들은 '템플'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상기하는 말이다. 하지만 전통을 존중하는 유대인들은 템플이란 말을 싫어하고 슐이란 말은 현대 유대인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시나고그란 말이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3.9.2. 회당의 기능
회당은 최소한 베이트 트필라 즉 기도의 집이다. 유대인들은 회당에 와서 기도의 예전을 행한다. 유대인들은 매일 규칙적으로 기도를 해야 만족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민얀 즉 10명의 성인 남자로 구성된 ‘꾸오룸’에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대 전통은 혼자 기도하는 것 보다 그룹으로 기도하는 것이 더욱 효과가 있다고 가르친다. 회당이 신성하다고 생각해서 그곳에 모여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랍비 전통에서는 회당을 '작은 성전'이라고 부른다.
회당은 베이트 미드라쉬 즉 연구의 집이다. 유대인의 교육은 ‘바 미쯔바’의 나이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서 연구는 일생의 과제이다. 이처럼 회당은 유대인 공동체의 성문서 연구를 위한 도서관 역할을 한다. 회당은 어린 아이들이 기초적인 종교 공부를 하는 장소이다. 대부분의 회당은 종교적인 또는 비 종교적인 활동을 위해서 큰 홀을 갖고 있다. 이 홀이 공회당 역할도 해서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공동체의 공동 과제를 숙의하기도 한다. 또한 회당은 사회 복지를 위한 기관이기도 하다. 공동체 안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헌금을 모아 분배하기도 한다.
3.9.3. 조직
회당은 대개 평신도들로 이루어진 위원회가 운영한다. 위원회는 각종 활동이나 공동체를 위한 랍비를 고용하는 문제 등을 의논하고 결정한다. 회당의 예전은 전부 혹은 일부가 평신도들에 의하여 집례 된다. 랍비가 없는 회당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랍비는 엄밀히 말해서 성직자가 아니고 공동체의 선생이므로 회당은 랍비가 없어도 존재할 수 있다. 랍비는 공동체를 위해 값어치 있는 존재다. 그는 공동체를 이끌고 지도하고 또한 교육한다.
회당에서는 예배 시간에 헌금 바구니를 돌리는 일이 없다. 절기나 안식일에 유대인들은 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회당은 그 멤버들에게 연 회비나 기부금을 받는다. 그리고 회당이 가장 붐빌 때인 로쉬 하샤나, 욤 키푸르 때 좌석 예약 등으로 기부금을 받기도 한다. 회당에서 예배 드리기 위해서 그 회당의 멤버가 될 필요는 없다. 만약 한 회당에 정기적으로 출석하여 예배 드리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헌금할 마음이 있으면 회당의 전례에 따라 하면 된다. 로쉬 하샤나, 욤 키푸르 때는 멤버쉽을 확인해야 좌석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회당은 거의 대부분 독립적인 공동체의 기관이다. 물론 유대교의 각 교파마다 중앙 조직이 있다. 그리고 각 회당은 중앙 조직과 관련을 맺는다. 그러나 중앙 조직이 개 회당에 대하여 어떤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3.9.4. 회당 안의 예전 도구들
회당에서 기도의 예전을 행하는 곳을 ‘성소’라고 부른다. 회당의 앞 부분은 반드시 예루살렘을 향하는데 이것은 기도의 방향을 알리기 위함이다. 아마도 회당의 성소에서 가장 중요한 가구는 토라 캐비넷 즉 ‘아크’일 것이다. 아크란 히브리어 '아론 코데쉬'에서 왔다. 그 의미는 거룩한 캐비넷이란 뜻이다. 노아 방주와는 상관이 없다. 방주는 '테이바트'다. 아크는 벽 속에 들어가 있고 토라 두루마리들을 넣어 둔다. 아크는 보통 방의 앞 부분에 있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놓여 진다. 아크에는 문이 달려 있고 그 안에는 ‘파록헤트’ 커튼이 붙어 있다. 이 커튼은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있던 커튼을 모방한 것이다. 아크의 문과 커튼이 열리거나 닫힐 때 예배자들은 경의를 표한다.
아크 위에 ‘네르 타미드’라고 하는 등대가 있다. 이것은 출애굽기 27장 20-21절의 명령대로 성막을 밝힌 불을 상징한다. 네르 타미드와 함께 우리는 메노라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성전에 있던 메노라를 모방한 것이다. 이 메노라는 여섯 개 혹은 여덟 개의 가지를 갖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의 메노라의 가지는 일곱 개 였다. 모방은 진짜와 같을 수 없으므로 일곱 가지가 아닌 메노라를 두는 것이다.
회당의 중앙 또는 앞에 ‘비마흐’라고 하는 대를 볼 수 있다. 토라 두루마리는 그것이 읽혀 질 때 비마흐 위에 놓여진다. 비마흐는 가끔 예전을 인도하는 대벽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낮은 성경대는 ‘아무드’라 부른다.
정통파 회당에서는 여자들의 자리를 따로 마련해 두었다. 2층으로 발코니를 만들어 두거나 뒤편에 만들어 두었다. 또는 메키짜흐라고 부르는 담이나 커튼으로 남자 석과 여자 석을 분리해 두기도 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있는 곳에 들어갈 수 없다.
3.9.5. 비 유대인의 회당 방문
회당은 비 유대인이라 해도 적절한 방문자일 경우에는 환영을 해야 한다. 변증가나 기독교의 전도자는 적절한 방문자가 아니라고 한다. 유대교의 전통을 함께 즐긴다면 언제나 환영을 받는다. 회당에 갈 때는 정장을 해야 한다. 남자는 야르물크라고 하는 모자를 써야 한다. 모자를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 회당 정문에서 안내하는 사람에게 야르물크를 달라고 해서 써야 한다. 야르물크를 ‘키파’라고도 한다. 어떤 회당에서는 결혼한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도록 요구한다. '채플 해트'라고 하는 것을 회당에서 제공하기도 한다. 비 유대인들은 탈릿(기도 숄)이나 트필린을 입지 않아도 된다. 탈릿이나 트필린은 유대 율법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기 때문에 순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입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정통파 회당에서는 자리를 잘 살펴야 한다. 남자와 여자가 분리해서 앉기 때문이다.
예배 중에 비 유대인은 가령 히브리어와 영어로 표시된 기도문이 있다면 영어로 따라 읽어도 좋다. 기도문의 내용을 미리 숙지하고 있으면 더욱 효과적으로 유대인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비 유대인도 토라 캐비넷이 열릴 때와 거기서 토라 두루마리가 나올 때는 일어 서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토라에 대한 경의이다. 이 경우 이외에는 방문객이 함께 일어 날 필요가 없다.
3.9.6. 템플
주후 70년에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 시절부터 유대인들의 신앙 중심이었다. 이곳에서 제물을 드리고 특정한 종교 예전을 행했다. 예배의 유일한 장소였던 것이다.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 포로 시절에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이후에 세워진 것을 제2 성전이라고 한다. 통곡의 벽으로 유명한 서쪽 벽이 제2 성전의 것이다. 지금 이 성전 자리에 무슬림 사원이 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성전이 다시 지어 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현대 유대인들 가운데는 성전이 재건되고 희생이 드려진다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의 집들을 성전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성전들이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전통적인 유대인들을 분노케 한다. 따라서 템플이란 말을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한다.
3.9.7. 유대 지도자들
랍비:
랍비는 성직자가 아니다. 본디 성직자는 특별한 권위를 가지고 성스런 예전을 집례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랍비는 유대인 사회에서 그런 성스런 예전을 집례하지는 않는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성직자는 '코헨'이라고 불리워 지는 '제사장'으로 아론의 후예다. 이들이 성전에서 여러가지 예전을 담당했고 또 제물을 바치는 종교적 의식을 담당했다. 그리고 코헨은 랍비가 될 수 있지만, 랍비가 꼭 코헨일 필요는 없었다. 간단히 말해서 랍비는 유대 율법인 할라카를 공부한 '교사'다.
그리고 유대인 사회에서 할라카와 관계 있는 전통이나 규칙을 설명하고 해석한다. 랍비가 되기 위해서는 유대 율법을 충분히 공부하여 '세미카'라 불리워 지는 자격증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유대 문학에서 '랍비'라고 하면, 오랜 세월 유대인 사회에서 그의 말이 권위를 인정 받은 사람들을 일컫는다. 즉, 미쉬나, 탈무드에 기록된 사람들을 랍비라고 부른다.
성전이 멸망한 이후 코헨의 임무는 없어지고 말았다. 랍비들이 유대인 사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래서 랍비는 개신교회의 목사들 처럼 공동체를 인도하고 공동체의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나고그라고 하는 회당에서 여러 가지 행정적인 일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업무가 꼭 랍비에게만 맡겨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유대인 사회에서는 랍비가 없어도 행정적인 일들이 처리되고 예배가 드려진다.
하짠:
공중 기도 중에 회중을 인도하는 사람이다. 직업적인 하짠은 보통 잘 훈련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기도와 유대 음악에 통달해야 한다. 큰 회당에서는 직업적인 하짠을 고용한다. 작은 회당에서는 랍비가 종종 하짠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라도 하짠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갑바이:
예전 때 토라를 읽는 일과 관련한 여러 가지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갑바이는 평신도로서 자원봉사자이다. 갑바이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한다. 알리야(토라 읽기에서 복을 선포하는 일)를 누가 맡을 지를 결정하고, 토라를 읽고, 토라를 읽는 사람 뒤에서 음조나 발음의 실수를 교정한다.
코헨:
제사장으로 번역하는 이 직분은 금송아지 사건 때 선택된 아론의 후예들이 맡는다. 이들은 성전에서 제물을 다루고 제사를 지내는 일을 담당한다. 그러나 성전 멸망으로 코헨의 직무는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코헨의 혈통을 DNA 추적 등으로 발견해 냈다. 현재 아론의 후손에게만 나타나는 Y 염색체를 보유한 사람들이 3개국에서 발견 되었다. 코헨에게는 샤밭 때 알리야 즉 토라를 읽을 때 가장 먼저 복을 선언하는 영예가 주어진다. 그리고 종종 축복의 기회가 주어 진다. 유대인들의 이름에는 코헨이라는 성이 있지만 모든 코헨이 아론의 후예는 아니다. 그리고 코헨에 해당하는 '카쯔'란 성이 있는데 이것은 코헨 짜디크의 두음문자이다. 모든 카쯔가 제사장의 후예도 아니다.
레위인:
레위 족속에 속한 모든 사람은 성전에서 어떤 업무를 맡도록 되어 있었지만, 성전 파괴 후에 이들도 코헨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도 유대인들은 혈통 조사를 통해 레위 족속을 규명하고 있다. 레위인은 샤밭 때 두번째 알리야를 맡는다.
레브:
하시딤 공동의 영적 인도자를 말한다. 레브는 짜딕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레브는 세습되며 그의 말은 하시딤 공동체에서 결론이다. 레브를 이디쉬 '렙'과 혼돈하지 말라. 이디쉬 렙은 남자에 대한 일반적인 경칭이다.
짜딕:
의인이란 의미다. 영적이며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이다. 짜딕은 레브나 랍비일 필요는 없다. 하시딤 공동체에서 레브는 짜딕이라고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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