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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 (2)

Joyfule 2010. 5. 28. 10:29
    로마인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 (2)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1장 로마의 탄생 
유민의 전설 
기원전 8세기의 이탈리아 이탈리아 반도는 북국과 남국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북국의 이점과 남국의 이 점을 둘 다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 이점은 상호작용으로 증대하는 것이 보통이므로, 
이탈리아 반도에서도 한복판에 자리잡은 로마의 지리적 이점은 유일무이한 것이 된다.
신기와도  같은 인간의 지혜가 이렇게 유리한 지세와 
온난한 기후의 혜택을 받은 이 땅에 로마인의 도시를 건설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한 지 800년 뒤인 제정로마 초기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도시계 획 전문가의 눈으로 위와 같이 말했다. 
듣고 보니, 과연 로마의 입지조건은 매우 훌륭하다. 
국가 발전의 가능성을 지닌 수도 건설지로서 이탈리아에서는 로마를 따라갈 곳이 없다. 
로물루스는 장군의 재능만이 아니라 도시 설계자의 재능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솟아난다. 
로마가 도시 건설지로서 이만큼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왜 로물루스 이전에는 이곳에 도시를 세운 사람이 없었을까.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로 기원전 11세기 무렵의 것으로 추정되는 
조잡한 무덤과 주거지가 발견되고 있으니까, 
누군가가 살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도시라고 부를 만한 흔적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이 땅에 주목한 최초의 사람은 역시 로물루스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로물루스가 전설상의  인물이고 실존했는지 여부가 불확실하다면, 
기원전 8세기 중엽에 살았던 아무개라고 해도 좋다. 
기원전 8세기 중엽의 이탈리아 반도에는 입지조건만 좋으면 
당당한 도시도 쉽게 건설 할 수 있을 만한 경제력을 갖춘 민족이 적어도 주개는 존재했다.
중부 이탈리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에트루리아인과 
남부 이탈리아 일대에 정착하기 시작한 그리스인이 그렇다. 
그런데 이 두 민족은 로마에 대해서는 전혀 욕심을 내지 않았다. 
당시 로마는 일곱 언덕을 제외한 저지대는 모두 습지대였지만, 
에트루리아인은 간척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상상하건대, 기원전 8세기 중엽뿐 아니라 그후에도 꽤 오랫동안 
로마는 에트 루리아인과 그리스인에게는 별로 매력이 없는 땅이었던 것 같다. 
그리스인은 통상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해양민족이었다. 
바다에 면한 항구를 도시의 필수요건으로 생각하고 있던 그들에게 
테베레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닿을 수 있는 로마는 
도시 건설지로는 부 적격지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리스인이 남부 이탈리아에 건설한 대표적인 식민도시는 
시라 쿠사이(오늘날의 시라쿠사)와 타렌툼(오늘날의 타란토) 및 
네아폴리스(오늘날의 나폴리)인 데, 이 도시들은 모두 바다를 향해 열려 있다.
에트루리아인도 산업과 통상을 주로 하는 민족이었지만, 
도시 건설에 관해서는 그리스인 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높직한 언덕에 도시를 건설한다. 
바다와 가까운 곳이 라도 배후에 언덕이 없는 땅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언덕 위에 성벽을 두른 경고한 도 시를 세워 거기에 틀어박히고 
평지에는 살려고 하지 않는 그들의 성향은 피렌체만 보아도  분명하다. 
피렌체는 에트루이아인에게 기원을 둔 도시지만, 
그들이 거주한 곳은 피에솔레 언 덕이다. 
아르노 강 연변에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피렌체 시가지는 
로마인의 건설할  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에트루리아인이 보기에, 로마의 일곱 언덕은 한결같이 너무 작고  너무 낮았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나쁜 점은 일곱 언덕이 서로 너무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에트루리아인은 꼭대기가 널찍한 언덕들이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산재해 있는 중 부 이탈리아 지방에 뿌리를 내린다. 
오늘날에도 중간 정도의 도시로 건재해 있는 시에나, 
볼테라, 페루자, 키우시, 오르비에토는 모두 고대국가 에트루리아에 기원을 둔 도시들이다. 
 그래서 열차역에 내려도 금방 시내로, 적어도 구시가지로 나갈 수는 없다. 
버스를 타고 능선 을 따라 언덕마루까지 올라가야만 
겨우 시가지에 닿을 수 있는 것이 이 도시들이다. 
이런  도시를 여행하면서, 나는 어째서 일부러 이런 곳에다 도시를 세웠을까 하고 
의아해하는 것 이 고작이었지만, 도시를 건설하는 조건도 
물이나 기후 같은 자연조건 외에 민족과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도시 건설에 나타난 사고장식의 차이가 
이 세 민족의 이후의  운명을 좌우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방어에는 완벽하지만, 발전을 저해받기 쉬운 언덕을 좋아한 에트루리아인. 
방어가 불완전 한 곳에 도시를 건설한 덕분에 결과적으로 밖을 향해 발전하게 된 로마인. 
통상에는 편리하 지만, 자칫하면 적의 존재를 잊게 만드는 
바닷가에 도시를 세운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인. 
 공과대학의 도시공학과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우선 철학이나 역사 같은 인문학 을 배우는 것이 좋다. 
도시를 어디에 세우느냐에 따라 주민의 장래가 결정될지도 모르기 때 문이다.
 에트루리아인 에트루리아인의 문자는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에트루리아인을 수수께끼의 민족이라고 불렀다. 
에트루리아라는 나라의 백성이라는 의미에서 이들을 에트루 스크라고 부르지만, 
이것도 고유한 하나의 민족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고대에 도 오늘날의 토스카나 움브리아 및 라치오 북부를 합한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을 
통틀어 에트루스크, 즉 에트루리아인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미국에 사는 사람을 모두 미국인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에트루리아인이 어디서 왔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소아시아에 서 바다를 건너왔다고 주장하는 역사가도 있고,
 내륙지방에서 남하해 왔다고 주장하는 연구 자도 있다. 
어쨌든 그들은 기원전 9세기에는 이미 철기 제조법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