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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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 = 비극의 마을 마사다는, 시계로 향해서 돌출한 천연의 테라스와 같은 바위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는 전설적인 마사다 성요새가 있던 곳으로.매년 이곳에서 행해진 젊은 이스라엘 병사들의 연습에서는 [마사다는 2번다시 함락되지 않는다]라고 노래 불려진다. 여기에서 A.D. 66년에 일어난 유대인의 반란은 신전파괴와 유대인의 난산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사다의 비극은, 여러나라로 난산한 유대인들에게 민족의 긍지인 심볼이 되었다. 73년의 예루살렘 함락후 살아남은 애국자들은 성요새에 모여서 농성하고,플라비오 실바가 이끄는 로마군에게 포위되어 최후까지 저항했다. 포위는 3년에 이르렀지만 로마군이 산악지대 서쪽에 거대한 계단을 설치해 성요새에 들어와 불을 지르려 했을 때, 모든 것이 끝났다. 성 밖에는 이 대공사가 이루어졌을때, 성내에서는 인류사상 가장 고통스러운 비극이 일어났
다. 로마군 보복을 두려워하여, 또 그들의 노에가 되는 것을 무엇보다도 겁낸 마사인들은 살아서 포로가 되는 것보다 자살할 것을 선택했다. 동시대의 역사가 플라비오 쥬셋페는 살아남은 한사람의 여인이 말한 마사다의 생생한 순간을 이렇ㄱ 전하고 있다. <이렇게 최후에 또한번 아내를 애무하고, 안아주고,눈물과 함께 아이들을 안아주고, 키스하면서 적의 손에 떨어졌을 때 고통을 상기해서 죽음으로 서로를 고무했지만,결국 유일하게 사랑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마음은 일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그들의 재산을 서둘러 소각하고, 그중에서 10사람정도,다른 전원을 죽이는 역할을 뽑았다. 그리고 모두 처자를 안으면서 바닥으로 쓰러졌고, 주조할 것 없이 목을 내놓았다. 이 비극적인 역할을 담당한 10명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살해한 후 서로 제비를 뽑아서 선택한 1사람에게 남은 9명이 목을 내밀었다. 이 역할을 다한 최후의 한 사람은 쓰러진 시체중에 누군가가 아직 그의 손을 필요로 하는 자가 있는가를 확인한후, 왕궁에 불을 놓아 남은 힘을 발휘해 처자쪽에서 칼을 손잡이까지 몸에 찔려 자살하고 끝낸 것이다>
(플라비오 쥬셉페 유대 전기7권)이렇게 하여 유대 반란 최후의 바위를 함락했다. 그러나 로마군이 길을 닦아서 아직 타오르는 성내로 들어갔을 땐,그들을 기다리고 있떤 것은 960명의 유해 뿐이었다.
1963년-65년의 고고학 조사에서는 성요새의 2/3가 발굴되어, 우아한 모양을 한 건조물과 장식이 다시 발견되었다. 사실 마사다는 본래 헤롯 대왕이 B.C. 42년에 이민족의 침입으로부터 피해와서 성요새화한 관이었다. 왕은 이때에 야심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선도되어 노예목민들에게 만든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 모자이크로 아름답게 장식된 궁전과 농성으로 마련된 바위는 파서 만든 거대한 저수조를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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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130.헤롯 대왕관의 테라스와 사해 근처의 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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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134.로마군이 조성한 계단. 이 방법으로 비로서 마사다의 저항을 붕괴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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