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어떤 망향가 - 임병식

Joyfule 2013. 2. 15. 10:19

 

 어떤 망향가 - 임병식

 

 

 

사람은 본래 태어난 고향을  못잊어하는 존재일까. 내가 만남을 주선하면서 느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일전에, 서울에 거주하는  이기진 시인께서  자신이 시문을 지어 세운  '재여 함북향우회 망향의 시비'가 여수에 있는데, 내일 내려가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그래서 그 비문을 보러 온다면   향우회에 먼저 연락을 해야할 것 같아서 그곳을 찾아보게 되었다.


수소문을 해보니 함북 향우회는 사내 중앙 상가건물 안에  있었다.  그러나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해서 옆 가게에 물어서 이 모임의 회장이라는   조응수(趙應洙)씨를   찾아 나섰다. 그분이라면 이곳 저곳을 잘 안내해 줄것 같아서였다.

 

하나  주소지도 명확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내기는 만만치 않았다.  동명이인이 많은데다 전화연결도 안되는 사람이 있어서였다. 그런관계로 수십번  헛전화와 발품을 판 끝에   어찌 어찌 겨우  찾아낼 수가 있었다. 한데, 찾고 보니 그는 나와는 일 면식도 없는 분이었다.

 

올해 연세가 84세로 그동안 크고작은  조경사업을 해왔다는데 전혀 모르는  분이었다. 하나, 알고보니 조 옹은 그동안 좋은 일을 많이 하여 천명이 넘은  북쪽 피난민을 돌보았을 뿐 아니라   지역 봉사활동도  꾸준히 해온 경력의 소유자였다. 특히  주도적으로  '  망향의 동산을  조성하여 아름답게 꾸며놓은 분이었다. 


오늘이었다. 서울에서 시인 일행이 도착했기에 , 나도 한데  끼어서 동행을 하게 되었다. 일행 중에는 널리 알려진 인소리 시인를 비롯하여  몇몇 소설가도  있었다.  먼저 향한 곳은 망향의 동산. 그곳은  여수시 오천동 고갯길에 있었다. 멀리서 볼대는 작은  규모로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의외로 널직했다.  한데 조성된 무덤들은  한결같이 북향을 하고 있었다. 그게 여간  이채롭지 않았다.

 

죽어서도 고향이 그토록 그리웠을까. 지켜보자니   참배하는  눈에서는  어떤  감격과 함께 회한이 스치는지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거워지니 이를 이를 돌리려는지 누가  '참 자리를 잘 잡았다'고 했다 . 모두 그 말에 수궁을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다음 코스로  횟집으로 향했다. 그들은 또 한번의 격식을 차렸다. 현 회자의  인삿말이 시작되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써온 글을 써내어 낭독했다. "우리는 맨몸으로 피난 내려와 힘들게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면서도 단 한시도 무언가를 해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잊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 세월이 60년이 되었습니다." 그런  인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서울에서 함께온  인소리 시인이역시 써온 자작시를 꺼내어 읊었다.  


 " 장승이어라, 나는/
북녘 땅이 내려다 보이는/
임진강 뚝에 서서/
눈물겨운 기다림의 장승이어라/
꽃이 피고 지는 그 많은 날들/
눈으로만 /
고향하늘을 어루만지며/
통일을 열망하는 장승이어라".


이 시가 낭송되지 분위기가 일순간에 고조 되었다. 한데, 이를 지긋이 눈감고 감상하고 있던 조 옹이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는 듯 일어나더니 '나도 한 수 읊겠노라'며  서투른 사설조 가락으로 즉응시를 읊조렸다.


"그리운 고향,  아 눈감으면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 /
고향하늘 그리다가 내 청춘은 다 가고  백발만 남았구려/
언제나 가볼거나, 그리운 내 고향 (이하생략)"


이런 모습을 지켜보자니 향수병은 이다지고 깊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남쪽에서 나고 자랐으니 그런 기분을 알턱이나 있을까. 짐작은 해보지만 절절한 사무침을 알기나 할까.  나는 우연한 기회에 망향의 그리움에 젖어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우의와 소통법은 특별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날, 동향인을 만나 회포를 푸는 자리는 끝날 줄을 모르고 이어졌다. (2003)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막동이 아제 - 임병식  (0) 2013.02.19
고양이가 점령한 산 - 임병식  (0) 2013.02.18
아호(雅號) - 임병식  (0) 2013.02.12
설날에- 조숙   (0) 2013.02.09
개미들의 행진을 보며 - 임병식  (0) 2013.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