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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종과 맹신에 대한 칼빈의 견해

Joyfule 2019. 12. 23. 02:23

 

     맹종과 맹신에 대한 칼빈의 견해

 

 

6. 회의들도 진리에 맞설 수 없다


따라서 총회의들에 관한 다른 반대에도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다. 예언자들의 시대에 진정한 교회가 유대인 사이에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만일 그때 제사장들의 총회의가 개최되었다고 하면 거기 나타난 교회들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사람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목자들 전체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제사장들은 놀랄 것이며 선지자들은 깜짝 놀라리라"(렐 4 : 9).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없어질 것이요 장로에게는 모략이 없어질 것이며"(겔 7 : 26).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흑암을 만나리니 점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미 3 : 6). 생각해 보라. 가령 그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면 어떤 영이 그 집회를 주관했겠는가? 이 일에 대한 좋은 예가 바로 아합이 소집한 회의였다(왕상 22 : 6,22). 예언자 400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그들은 악한 왕에게 아첨하려는 목적으로만 모였기 때문에, 주께서 사탄을 보내셔서 거짓말하는 영이 모든 자의 입에 있게 하셨다. 모든 자들의 투표로 진리는 정죄되었다. 즉 미가야는 이단자로 몰려 얻어맞고 옥에 갇혔다(왕상 22 : 26-27). 예레미야도 같은 일을 당했고(렘 20 : 2, 32 : 2, 37 : 15이하) 다른 예언자들도 그같이 당했다(마 21 : 35, 23 : 29이하 참조).


7. 요한복음 11 : 47에 있는 예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을 만한 다음의 예를 보면 다른 예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모인 회의는(요 11 : 47)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결함 도 없었다. 그 때에 예루살렘에 교회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제사나 그 밖의 의식에 참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엄숙하게 회의가 열리고, 대제사장이 주관하고, 제사장들이 모두 출석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그의 교훈을 배척했다(마 26 : 57이하). 이 행동은 그 회의에 교회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논적들은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날 위험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누가 그런 보장을 했는가? 이런 중요 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는 것은 태만죄라고 하겠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바울의 입을 통해서 목자들이 먼저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그런 배교가 있으리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왜 우리 자신의 파멸을 보지 않으려고 고집하는가? 그러므로 교회가 목자들의 회의로 성립된다는 생각을 우리는 결코 인정해서는 안 된다. 주께서는 어느 곳에서도 목자들이 영원히 선하리라고 말씀하신 일이 없고 오히려 그들이 악하게 되는 때가 있으리라고 언명하셨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에게 위험을 경고하시는 것은 우리가 더욱 주의하며 경계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성경을 떠났기 때문에 회의들은 타락했고 니케아와 칼케돈 회의도 결함이 있었다. 8-11)


8. 회의들의 결정은 얼마나 타당한가


그러면 어떻게 될 것인가? 회의들에는 아무 결정권도 없다는 말이냐고 물을 것이다. 물론 결정권은 있다. 나는 여기서 모든 회의를 배척해야 된다든지 또는 모든 회의의 결정을 취소하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모든 것을 깎아 내리고, 누구에게나 회의들의 결정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권리가 있게 만든다고 내게 말할 것이다.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어느 회의의 결정이 있을 때마다 회의는 언제, 무슨 문제로, 무슨 목적으로 열리고 또 어떤 사람들이 출석했는가를 사람들이 먼저 깊이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 다음에 회의에서 취급할 문제를 성경을 표준으로 하여 검토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회의의 결정이 자체의 중요성을 지니고 또 이전의 판단에 비추어 고려되어져야 하지만 내가 언급한 검토를 방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어거스틴이 막시미누스 반박론에서 요구한 신중한 태도를 모든 사람들이 가지기를 바란다. 회의들의 결정 사항들에 대해서 이 이단자가 논란하는 것을 간단한 말로 침묵시키기 위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니케아 회의를 내세우거나 당신이 나에게 아리 미눔 회의를 내세워서 문제를 애매모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나는 후자 의 회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당신은 전자의 회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와 문제, 주장과 주장, 이유와 이유가 어느 한쪽의 특수한 권위가 아닌 쌍방의 공통된 권위 즉 성경의 권위에 의해서 서로 싸우게 하라.


이렇게 하면 회의들은 그 마땅히 가져야 할 위엄을 가지게 될 것이며, 동시에 성경은 모든 것을 복종시키는 표준으로서 더 높은 수준에 분명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런 태도로 우리는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과 제 1 차 에베소 회의와 칼케돈과 그 밖의 이와 같은 초기의 회의들을 거룩한 회의들로서 기꺼이 공경하며 받아들인다. 이 회의들은 신앙문제에 관해서 여러 가지 오류를 반박하는 데 심사숙고 했다. 거기에는 성경에 대한 순수하고 진솔한 해석이 있었을 뿐이며 거룩한 교부들은 당시에 있던 신앙의 원수들을 쳐부수기 위해서 영적인 지혜로 이 해석을 적용했다. 그 후에 있은 일부 회의에서도 우리는 경건에 대한 진정한 열성이 빛나는 것을 보며 통찰력과 교리와 지혜의 분명한 증거를 본다. 그러나 사태가 대체로 악화됨에 따라, 우리에게 더 가까운 최근의 회의들에서 우리는 교회가 그 황금시대의 순수성에 비해서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볼 수 있다.


나는 부패가 더 심한 때에도 회의에는 훌륭한 감독들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도 옛날 로마 원로원 의원들이 원로원의 결의 방법이 나쁘다고 한탄한 것과 동일한 일을 경험했다. 의견의 무게는 보지 않고 수효만 보기 때문에 더 좋은 부분은 더 큰 부분에 압도되고 말았다. 그런 회의들은 불경건한 교령을 많이 발표했으나 여기서 그 실례를 열거할 필요는 없다. 그런 예는 너무 많고 또 다른 사람들이 이 일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덧붙일 만한 것이 별로 없다.


9. 회의들이 서로 충돌했다


그러면 회의들이 서로 충돌한 이야기를 내가 할 필요가 있는가? 일치하지 않는 두 회의 중의 하나는 불법적인 것이라고 해서 내게 항의하는 사람은 그렇게 항의할 근거가 없다. 무엇을 표준으로 그런 판단을 하는가? 만일 내가 속은 것이 아니라면 표준은 하나이다. 즉 성경에 의해서 어느 쪽 교령이 정통적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가부를 구별하는 확실한 원칙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 전, 레오 황제 때 열린 콘스탄티노플 회의는 교회 안에 세운 형상들을 전부 끌어내어 부셔 버리기로 결정했다. 곧이어 이 회의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레네 여왕이 소집한 니케아 회의에서는 형상들을 다시 복구하도록 판결했다. 이 두 회의 중 어느 쪽을 우리는 합법적이라고 인정할 것인가? 교회 내에 형상들을 두기를 허락한 두 번째 회의가 그 후에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지배적인 세력을 얻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이 습관에는 항상 우상 숭배의 위험성이 동반한다고 말한다. 그의 선배였던 에피파니우스는 기독교회 안에 형상이 있다는 것은 불법이며 가증한 일이라고 더욱 강경하게 말했다. 이렇게 말한 사람들이 지금 살아 있다면 이 회의를 인정하겠는가? 그러나 역사가들이 진실을 전하고 우리가 회의 기록 자체를 믿을 때, 그 회의에서는 형상뿐 아니라 형상을 숭배하는 것도 인정했던 것이다. 이런 교령은 사탄에게서 나온 것임이 분명하다. 그들이 성경 전체를 곡해하며 찢어버리면서 성경을 하나의 웃음거리로 여겼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한 바 있다.


하여튼,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는 많은 회의들에 대해서 모든 사람과 천사들의 저울인 주의 말씀에 따라 그 경중을 판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는가? 성경을 표준으로 우리는 칼케돈 회의를 받아들이며 제 2 차 에베소 회의를 배척한다. 에베소 회의에서는 유티케스의 이단설이 승인되었고 칼케돈 회의에서는 정죄되었기 때문이다. 거룩한 분들은 이 문제를 오직 성경에 표준하여 판단했으며, 우리는 그들 앞에서 빛나던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우리 앞에서도 빛나도록 그들을 본받아 판단한다. 자, 이제 카톨릭 교도들은 가서 성령이 그들의 회의에 굳게 결박되어 있다고 그들의 상습적인 자랑을 하도록 하라.


10. 회의들과 인간적 결함


그러나 저 고대의 비교적 순수한 회의에도 결함이 있었다. 박식하고 현명한 분들이 참석했었으나 눈앞에 닥친 문제에 몰두해서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예견하지 못했으며, 혹은 더 중대한 문제에 정신이 팔려서 덜 중요한 일에는 주의하지 못했고, 혹은 사람인 관계로 지혜가 부족해서 기만당하기도 했으며, 혹은 감정에 휩쓸린 때도 있었다. 가장 어려운 것으로 보이는 이 나중 문제는 모든 사람이 그 우수성을 인정하며 또 당연히 그런 인정을 받은 니케아 회의에서 현저한 실례를 볼 수 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신조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에 원수인 아리우스는 언제든지 싸울 용의가 있었고 그들은 그와 직접 맞붙어 싸울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아리우스의 오류와 싸울 생각으로 모인 사람들의 의견이 서로 일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큰 위험성을 잊어버리고 심지어 엄숙과 겸손과 예의 등도 잊어버리고는, 오히려 아리우스를 도우러 온 것같이 하여 이길 싸움을 놓쳐 버렸다. 내부 불화가 일어나 그들은 서로 욕설을 하며 아리우스를 공격할 붓을 들어 동지를 공격했다. 입으로 추악하게 비난하며 서로 고발하는 선전문을 돌렸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서로 찌르고 상처를 입었을 정도로 분쟁이 격화되었다. 황제는 그들의 생활을 조사하는 것은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비난하기보다 칭찬함으로써 그 무절제를 징계했다. 그 후에 있었던 다른 회의들도 여러 가지 점에서 실패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더 이상의 긴 증명은 필요 없다. 누구든지 회의록들을 읽어보면, 중대한 과오들은 그만 두고라도 많은 결점들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