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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 / 신경숙

Joyfule 2015. 10. 3. 12:39

 

  모르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 / 신경숙  

 

 

오늘 아침에 나는 이런 시를 읽었습니다.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브레히트라는 시인의「나의 어머니」라는 시입니다.

무심코 펼쳐든 옛날에 읽던 시집에서 발견한 이 시 때문에 나는 온종일 허둥거렸습니다.

바로 코앞에 떨어진 일들을 해결하느라 늘 분주한 생활 속에서 툭 던져지듯 읽게 된 시.

내 주변엔 시에 대한 얘기를 할 만한 대상이 없어 얼굴도 모르는 당신께 이렇게 매일을 쓰고 있습니다.

(······) 때로 그렇잖아요.

자신의 내밀한 어떤 얘기를 잘 아는 사람에겐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지요.

지금 내가 그런 모양입니다.

 

나는 이 시를 오늘 한 번 읽고 다 외워버렸습니다.

물론 언젠가 읽었을 시이기 때문이겠지요.

가만히 보면 4행밖에 되지 않는 이 짧은 시에는 한 여인의 생애가 고스란히 들어 있어서 사실 잠깐만 집중하면 흐름으로 인해 쉽게 외워집니다.

그러나 외우는 것엔 소질이 없는 나로서는 한 번 읽자마자 시를 쭉 외우게 된 것은 특이한 일이긴 하죠.

당신에게 메일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고 브레히트의 시를 외우고 있습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고. 그리고 절실히 깨닫습니다.

예전에 이 시를 무심코 지나왔던 이유를.

그렇군요. 그랬어요. 그때는 나의 어머니가 아주 젊은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브레히트라는 시인은 대체 이 시를 언제 썼는가 찾아봤습니다.

1920년대더군요

시집 뒤의 그의 연보를 다시 뒤져보니 1920년에 어머니 장례식 치름···· 이라고 되어 있네요.

아마도 시인은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온 밤에 이 시를 쓴 모양이지요.

그래요. 어머니란 존재는 시인도, 시인이 아닌 나도 이 세상에 있게 한 시작이지요.

시인은 그의 어머니를 묻고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고 쓰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라고 쓰는 그 순간의 시인은 어땠을까요.

읽는 자의 마음이 이리 흔들리는데 쓰는 자는 어땠을지.

 

시를 읽는 사이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사춘기 시절에 어머니 곁을 떠나 도시로 나왔지요.

어머니 곁을 떠나온 후 나는 틈만나면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을 더 갖고 싶어서 다시 도시로 돌아 올 때는 늘 밤기차를 탔지요.

지금도 정확히 기억합니다.

11시 57분 상행선 열차였지요.

어머니는 항상 역까지 나와 나를 배웅해주셨습니다.

나는 그걸 당연히 여겼어요

나는 다시 기차에 오르고 어머니는 차창 밖에 서 있었죠.

내 무릎 위엔 기차에서 먹으라고 어머니가 삶아준 계란이나 귤 같은 것이 놓여 있곤 했죠.

그때의 풍경이 내 기억의 어디쯤에 그대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나를 태운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출발하면 어둠 속의 풀랫폼에 홀로 남아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요.

나는 고개를 뒤로 하고 플랫폼에 남아 있는 어머니를 향해 손을 흔들곤 했죠.

어머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요.

 

오늘 아침 브레히트의 이 시를 읽기 전까지 나의 기억은 여기까지였어요.

내 기억은 항상 거기까지였지요.

그런데 시를 읽는 동안 그때 기차가 떠난 자리에 남아 있던 어머니는 어떻게 집에 돌아 가셨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나더군요.

거의 삼십 년 만에요.

내가 태어난 마을은 기차역에서 십 리는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땐 버스가 하루에 서너 번 다니다가 어두워지면 그마저 끊기던 곳이었지요.

나를 태운 기차가 떠난 후 자정이 다 지난 그 시간에 어머니는 혼자서 역을 빠져나가 그 산길과 논길을 걸어서 집에 가셨던 것일까?

삼십 년이 다 지난 나에게 찾아온 그 질문은 벼락같은 것이었지요.

어머니는 정녕 그 어둠 속을 홀로 걸어 가신 것일까?

그때의 젊은 어머니는 그 밤길을 무슨 생각을 하며 걸어 가셨을까요.

 

집에 도착했을 때쯤 아마도 어머니의 신발은 밤이슬로 축축이 젖어 있었을 테지요.

그 신발을 벗으며 또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어머니 곁을 떠나온 후 십여 년 동안 계속되던 기차역에서의 어머니와의 작별.

그때마다 어머니가 홀로 걸어가야 했을 그 발길을 어떻게 이제야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 내가 미워졌습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나도 이 도시에 나의 삶을 갖기 시작했죠.

나의 삶이 새로 생긴 나의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어머니가 계시는 그곳과는 몸도 마음도 멀어졌지요.

처음 어머니 곁을 떠나던 그때처럼 시간만 나면 어머니가 계시던 곳으로 향하던 마음도 옛일이 되었지요.

그러다가 오늘 아침, 브레히트의 시를 읽는 순간에 그때 어머니가 어떻게 집에 돌아 갔는지를 생각하게 됐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동안 단 한 번도 어머니가 그 밤길을 어떻게 돌아 갔을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까요.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새삼스런 깨달음과 어머니를 향한 뒤늦은 후회가 남아 이렇게 모르는 당신께 메일을 쓰고 있습니다.

정말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요.

 

- 신경숙씨의 짧은 소설집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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