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눈물 - 크레이그 라슨
시카고의 레이크 쇼어 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미국의 권위 있는 목회 전문지 『리더십』의 객원 편집자이다. 1978년부터 시카고 주변의 중소 교회에서 다년간 목회의 경험을 쌓았다. 『리더십』의 편집인으로 잠시 목회 현장을 떠나 있는 동안 자신의 목회 사역을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목회의 참된 정체성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정립하였다. 저서로는 『선한 목적을 향한 끈기』『마음을 이어주는 설교』 등이 있으며, 현재 가족과 함께 일리노이 주에 살고 있다.
시간이 가도 제자리걸음인 교인 수, 어디서나 무겁게 짓누르는 경제문제, 수시로 구겨지는 자존심과 자기 연민, 끝없는 격무와 탈진. 이 같은 이유들 때문에 대부분의 목회자는 한 번쯤 목회를 걷어치우고 싶은 위기에 직면한다. 이 책은 목회자가 목회를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영적이고 실제적인 환난을 열두 가지로 정리하여 솔직하게 되짚어 보고, 목회자가 이를 이겨나갈 수 있도록 현실적인 통찰과 위로를 제시한다.
1. 크기가 정말 문제인가
1978년 대학 및 청년부 사역자로 3년을 일한 나는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시카고 교외 에반스톤으로 이사했다. 거기서 교회를 개척할 생각이었다. 당시 나는 스물 다섯의 패기 넘치는 젊은이였다. 내가 주관하던 대학부 모임은 한동안 유행하던 예수 부흥운동의 열기를 업고 회원이 근 80여 명 수준에 육박해 있었다. 그 와중에 일리노이 지역 교회들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내심 존경하던 그 곳의 목회자들을 교회 개척을 위한 나의 전범으로 삼았다. 에반스톤에서 나도 그들처럼 개척하여 순식간에 수백 명이 출석하는 교회를 이루리라 꿈꾸었다.
우리는 고작 세 명 - 나와 아내와 두 살배기 아들 - 으로 시작했으나 불같은 믿음과 확실한 계획으로 밀어부쳤다. 하루에 수 킬로미터씩 가가호호 방문하여 전도지를 나누어 주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와 낮에 방문한 가정에 전화했다.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의 명단이 20여 명으로 늘어나서 나는 공공건물을 빌려 첫 모임을 시도했다. 그러나 정작 모임에 나타난 사람들은 너댓에 불과했고 그나마 두 번째 모임에는 얼굴조차 비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계획대로 밀고 나갔지만 주일모임은 고사하고 정기적인 성경공부반 하나 제대로 운영할 수 없었다. 나는 첫 개척지에서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에반스톤에서 최초로 떠올린 질문들, 향후 몇 년간 수도 없이 되풀이될 그 질문들을 붙들고 나는 끙끙 앓았다. 왜 하나님은 어떤 목회자, 어떤 교회는 축복하시면서 나는 제외하시는가? 왜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하려 하시지 않는가? 사람들은 나의 어떤 점이 못마땅해서 저러는 걸까? 나한테 무슨 잘못이 있는 걸까?
에반스톤에서 내가 충격적으로 깨달은 사실이 있다. 요컨대 하나님은 내 자존심을 세워주는 일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거기서 나는 교회 크기로 내 정체성을 평가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았다. 나를 앞세우고 용기백배하여 달려가면 성공한다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았다. 이러한 자각이 나를 몹시도 아프게 했다.
하나님은 내 삶을 영원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시며 일하신다. 처음과 끝을 알고 계시는 그분은 서두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숭고한 목적들 대부분이 시간이라는 과정을 통해 성취됨을 익히 알고 계신다. 우리를 한없이 절망하게 하는 그 시간을 통해서 말이다.
에반스톤에 온 지 일 년 만에 나는 목회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다. 다른 곳으로 나를 인도하실 거라는 생각이 든다.” 행정부 책임자에게 도심지 서민층을 상대로 사역해 보고 싶다는 의향을 비치자 그는 시카고의 코미스키 파크 지역의 한 교회를 추천했다. 성도는 25명쯤이었는데 교회도 교인들도 하나같이 가난했지만 나는 거기서 전임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부임 첫 해부터 몇몇 교인들이 슬그머니 빠져나갔고 그들의 자리는 다시 채워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교인들 숫자가 줄면 식구들을 데리고 거리로 나앉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스도가 필요한 영혼에 대한 사랑은 그 다음 문제였다.
그러나 그 불모지에서 하나님과 나는 특별한 관계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거기서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지 내게 가르치셨다. 그분은 사람에 따라 일하는 방식을 달리하신다. 이 광야의 시절은 내 삶에서 아주 결정적인 시기였다. 일 년간에 걸쳐 교인들의 감소추세는 서서히 정지하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전환점에 다다랐다. 약 7 년 간에 걸쳐 매년 다섯에서 열 명씩, 완만한 편이긴 했지만 아무리 느려도 교인들의 수가 는다는 것 자체는 대단한 기쁨이었다. 우리 교회의 공동체적 결속력과 지도력, 성숙도는 점차 깊어졌다. 요컨대 내 은사는 말씀을 가르치는 데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도 들어 쓰셨다.
그 후 나는 거기서 북서쪽으로 약 5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알링턴 하이츠 교회로 이주했다. 비교적 중산층에 속하는 이 교회에서 나는 3년간 목회했다. 인내에 대한 확신으로 무장하고 있었음에도 다시 힘이 들었는데 그 이유를 따져보면 그것은 내가 이전보다 숫자에 더욱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정서는 하나님 안에 굳건히 선 내 정체성을 망각한 채 교회 상황과 교인들 동향에 맥없이 끌려 다녔다. 그리고 내 복잡한 동기들로 인한 결과가 또 하나 있었는데 내가 교인들을 점점 방법적으로 다루고, 화를 내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사실이었다.
알링턴 하이츠에서 목회한 지 2년 후에 결국 거품은 터졌다. 몇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내 목회방침에 반대했고 회중 앞에서 공공연히 불만을 터뜨렸다. 몇 달이 못 가 출석 교인 수는 거의 반으로 줄었다.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떠난 사람들 대부분은 교회의 일꾼들이었다.
일 년간을 어렵사리 견디고 있던 참에 「리더십」지에서 부편집인 자리를 제안했다. 이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나는 내가 떠나온 목회자들의 세계를 이제는 바깥의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입장에 있었다. 기사거리를 얻으려고 만나서 얘기해 본 목회자들 대부분은 내가 이전에 겪었던 경험들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즉 교회를 크기로만 평가하고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가치를 어디에 두시는지 망각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쓰는데 그 내용을 보면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교회의 양이 아니라 질이었다.
목회현장을 떠나 있던 이 시기에 내가 배운 것 또 하나는 모든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목회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각 개인을 만능으로 만드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독특하게 만드신 나라는 한 인간의 면모와 자질에 최선을 다하고 그분께서 나를 통해 당신의 뜻을 행하시도록 나를 맡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상 깊은 깨달음을 하나 더 말하자면 그것은 다니엘 브라운 목사의 말이었는데 우리는 교회를 대체로 ‘저수지’라는 개념으로 본다는 것이다. 잠시 머무르다 쉽게 뜨고 마는 오늘날의 경박한 문화풍토에서 저수지 개념의 목회는 실망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강’의 개념을 대입하는 게 실제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셨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이 얼마나 크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의 지류를 함께 타고 가는 동안 사람들이 얼마나 성장하고 깊어졌느냐가 목회의 초점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시각으로 무장한 나는 마침내 목회일선으로 되돌아왔다. 1995년의 일이다. 나는 사역의 초점을 질에다 두기로 했다. 이 태도로 인한 첫 번째 효과는 목회의 즐거움이었다. 교회 부임 첫 주일에 나는 하나님께 거듭거듭 말하고 싶었다. 내게 목회자의 직분을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그리고 두 번째 효과는 이 교회로 부임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 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거의 실망하지 않고 산다. 물론 내 확신이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여전히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몇 주 전 주일 아침에 한 남자가 전화해서 우리 교회에 나오고 싶다고 했다. 통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는 우리 교회가 얼마나 크냐고 물었다. 사실대로 말하자 그는 큰 교회를 찾고 있으니 근처에 큰 교회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에게 시내에서 가장 큰 교회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무의식적으로 그랬는데 가만 보니 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전혀 언짢아하지 않았다는 것, 분개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는 것. 교회가 작아서 못 나오겠다는 사람에게 이제는 내가 화를 내지 않게 된 것이다. 스스로가 대견해진 나는 성경을 들고 일어섰다. 하나님께서 그 날 내 앞에 데려오신 사람들을 향해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목회하러 가고 있었다. 자유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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