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균 수필 연재 - 前場浦
한국도로지도책을 펴보면 전장포는 해제반도 끝에 있는 점암나루에서 카페리를 타고 임자도로 건너 가야한다. 임자도는 흡사 올챙이 모양을 한 섬인데 전장포는 올챙이 꼬리 끝에 해당하는 지점에 자리잡고 외떨어져 있었다.
나지막한 푸른 구릉을 넘고 돌 때마다 문득문득 갯벌과 바다가 바라 보였다. 구릉은 붉은 황토밭이고, 황토밭에는 끝없이 마늘이 심어져 있었다. 푸른 단색조의 권태로움을 보완이라도 하려는 듯 마늘밭 사이사이 유채밭이 섞여 있는데 노랗게 유채꽃이 피어서 녹황색의 조화가 막 붓을 놓은 수채화처럼 산뜻했다.
24번 국도 현경 사거리에서 점안 나루에 이르는 막 포장이 끝난 100리 길, 해제반도의 봄 풍경이었다.
구릉 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농가 모습이 우리 농촌의 그만 그만한 삶의 규모와 비슷해 보였다. 마늘과 유채가 이 지방의 특작물인 모양이다. 특작물의 경제성이야 여하튼 구차스럽지 않은 지방색이 이곳 사람들의 자존심을 지레 짐작케 했다. 성의껏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간성이 엿보일 뿐,
보리새우 춤추는 해제반도 걷다 보면
끝없는 황톳길 채찍처럼 이어지고
함께 살기 원하는 우리들의 고통
왜 이리 깊고 카랑 한가.
이 지방 시인 곽재구의 우수는 느껴지지 안았다. 삶의 주관과 객관의 차이 때문일까?
임자도로 건너가는 점암나루는 시끌벅적했다. 카페리를 기다리는 화물차와 승용차가 줄을 서 있고 섬으로 들어갈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속에 우리도 섞여 있었다.
전장포, 어구 해석으로는 포구 앞 바다가 바로 앞마당이라는 뜻인데, 그러면 달밤에 갯벌을 향해서 열린 삽짝 안으로 달빛이나 바닷물에 말갛게 씻긴 낙지가 갓난아기처럼 아장아장 걸어 들어오기라도 한단 말인지, 짭짤한 인정으로 고샅을 열고 물새처럼 앞 바다에 들락거리며 새우를 물어다 젓갈을 담는 사람들의 폐쇄적인 삶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닻을 내리고 바다에 떠서 꼼짝 못하는 배를 멍텅구리 배라고 한다. 그 배를 타고 새우잡이 그물만 바다에 내렸다 건졌다 하는 사람들, 그들의 고독한 작업으로 새우젓은 생산된다. 새우젓 맛은 그 사람들의 인생을 절여 삭힌 맛인지 모른다. 그들의 삶을 얼마나 절여서 담그면 그 유명한 전장포 새우젓 맛 되는 것일까.
한때 새우잡이 멍텅구리배에 팔려 간 사람들의 비참한 실상이 사회문제로 대두 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전장포는 내게 해무(海霧)에 싸인 음험한 사건을 연상케 하는 이름이기도하다.
나루터에 서성거리는 섬사람 같은 중년에게 전장포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손가락질을 해준다. 썰물 진 뻘밭이 아득히 뻗어 가서 황사바람 속으로 사라져 간 건너편 섬 끝을 가리켰다.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뻘밭에 김인지, 굴인지 양식장 말목들이 마치 산불이 지나간 산비탈에 서 있는 죽은 나무의 등걸처럼 서 있다. 어느 산에 태어나서 한창나이에 벌목이 되어 저 뻘밭에 주검으로 서서 양식 발을 꼭 붙들고 있는지 나무의 업보를 보는 것 같았다.
어느 해 가을에도 나는 혼자 이 나루터까지 와서 임자도를 건너갈까 말까 망설인 적이 있었다. 마침 만조 때라 탁한 물살이 육지와 섬 사이를 가득 채우고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섬 모퉁이를 돌아서 나루터로 다가오는 배가 마치 물결에 떠내려오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배가 나루에 뱃머리를 대고 '바우도어'를 열자 어디서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뒤따라 차들이 굴러 나왔다. 어린애를 업은 검게 그을은 섬 아낙네, 넥타이 고를 주먹만하게 맨 섬 양복쟁이, 젊은 군인, 늙은 어부,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며 기다리고 있는 광주행 버스 쪽으로 몰려갔다. 저 사람들 중에 전장포 새우잡이 멍텅구리배를 타다가 풀려 나오는 사람이 섞여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짧은 가을 해가 기울어져 섬 그늘이 을씨년스러웠다. 이제 저 섬에 들어가면 새우잡이 멍텅구리배에 잡혀가지 싶은 생각이 들어서 배를 타지 않았다.
섬에서 배가 돌아왔다. 배가 그 해 가을 저녁나절 모양 차와 사람을 쏟아 놓는다. 내 차례가 되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차를 배에 실었다. 이번에는 옆에 아내가 있다. 동반자에 대한 신뢰, 늙은 여자 한 사람이 큰 힘이었다.
배는 수섬이란 곳에 한 번 기착해서 나루에 뱃머리를 대고 중년의 섬사람을 내려 주었다. 타는 사람은 없었다. 섬 중턱에 납작한 집들이 몇 채 띄엄띄엄 외롭게 붙어 있다. 가파른 비탈에 파랗게 농작물이 자란다. 저것도 마늘일까. 섬 비탈에 매달려 실각(失脚)하지 않고 꾸려 가는 굴딱지 같은 삶이 공연히 눈물겹고 고마운 것이었다. 저 사람은 섬밖에 무슨 볼일을 보러 갔다 오는 것일까?
섬 모퉁이를 돌아서 배는 바로 임자도 면소재지인 진리 나루에 닿았다.
섬에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포장된 길을 따라서 조금 가니까 길가에 전장포라고 화살표를 한 안내판 서 있었다. 화살표를 따라서 비포장 길로 들어섰다. 보수도 한 번 하지 않은 길이다. 자동차 바닥이 대일 정도로 노면이 험하다. 모래를 날리면서 천천히 전장포를 향해서 갔다. 아지랑이가 가물가물하는 파란 보리밭과 염전 너머로 동네가 바라 보였다.
모래바람이 불었다. 임자도 처녀는 모래를 서 말은 먹어야 시집을 간다고 한다. 모래섬이다. 전장포가 새우잡이 포구인 것도 바다 밑바닥이 모래라서 새우가 많이 서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차가 크게 덜컹거리자 아내가 시방 먹으면 등천(登天) 하는 새우젓을 사러 가는 거냐고 불평을 했다. 억하심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사실은 충청도 산골짜기에 이른봄이면 새우젓 통자를 지고 오던 동저고리 바람의 새우젓 장수가 '새우젓 사려-. 조개 젓-.' 하고 지르던 애절한 소리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의미 없는 여행에 대한 나의 독선이 미안했다. 그것은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인지도 모른다.
워낙 길이 나빠서 빤히 보이는 곳까지 가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전장포, 아지랑이 속의 고요가 나를 일말의 불안에 잠기게 했다. 돌담 너머 납작한 집의 툇마루에 늙은이들만 더러 봄 햇살에 속절없이 늙고 있었다. 어떤 집은 빈집인 채로 봄 햇살에 집이 혼자 늙고 있었다.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처럼 침묵하는 동네의 적적한 고샅을 돌아가자 작고 쓸쓸한 포구가 나타났다. 자포자기하고 주저앉은 사람처럼 실망스러운 포구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부두에는 한때 흥청거린 경기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담뱃가게에 들어가서 캔 음료와 담배를 한 갑 샀다. 한참 주인을 찾고 나서야 낮술에 취한 듯한 남자가 나왔다. 그에게 전장포에 대한 질문을 해 보았다.
"새우잡이 경기가 좋습니까?"
"좋긴 머시가 좋소. 다 끝났지라우."
"전장포하면 새우젓 생산지로 유명한 곳 아닙니까?"
"옛날에야 그랬지-. 한때는 200여 호나 살았는디, 지금은 60여 호밖에 안 되여라."
그리고 귀찮다는 듯이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캔 밑바닥에 찍힌 제조일자가 이 포구의 과거지사만치나 오래 되어서 마실 수가 없었다.
낡았을 망정 어판장 시설이 두 동이나 서 있었다. 어판장 안에는 리어카, 경운기, 어구, 녹슨 드럼통들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 근래에 이 어판장 안에서 새우나, 새우젓을 팔고 사고한 일이 없어 보였다. 부두에는 어선이 두 척 접안 하고 있었다. 한 척은 새우를 부리고 한 척은 출어 준비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어부들의 묵묵한 동작이 삶이 얼마나 질기고 연민스러운 것인지를 느끼게 했다.
포구 저 쪽, 방파제를 따라 바닥을 드러낸 개펄에는 크고 작은 어선들이 여러 척 배를 깔고 엎드려서 새우젓처럼 곰삭고 있었다. 선창가에는 창문에 빛 바랜 페인트칠과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한 빈 주점(酒店)들이 한때 파시(波市)의 호황을 굳이 설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봄 햇살에 피폐한 모습을 추켜들고 있다.
사양화 된 어촌의 쓸쓸함에 비해서 봄볕이 가당찮게 화창했다. 바다에도 봄 햇살이 비쳐서 은파가 비늘처럼 눈부시다. 크고 작은 섬들이 앞 바다에 할 일 없이 주저 물러앉아서 졸고 있다.
꼬막껍질 속 누운 초록 하늘
못나고 뒤엉긴 보리밭길 보았네
보았네 보았네 멸치담장 산마이 그물너머
바람만 불어도 징징 울음 나고
손가락만 스쳐도 울음이 배어나올
서러운 우리나라 앉은뱅이 섬들 보았네
아리랑 전장포 앞바다
웬 설음 이리 많은지
가출 소년이 팔려 와서 멍텅구리배에 태워진 사건이 있었을 때가 이 포구는 번창기였으리라. 반면 그 때부터 이 포구가 사양화되었는지도 모른다. 외처 사람들이 들어와서 인심을 버려 놓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포구 모퉁이 뉘 집 돌담 안에 흐느낌처럼 산수유 노란 꽃이 피었다.
곽재구의 슬픈 노래 속에는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연민이 담겨 있었으나, 봄빛에 조용조용 허물어지고 있는 전장포에서 나는 괴기(怪奇)한 적막밖에는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전장포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저 산수유꽃처럼 애잔한 전장포의 이면을 나는 못 보는 것일까. 새우가 살찌는 여름에 오면 이 포구에 따뜻한 눈빛으로 육젓을 담는 이들의 활기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모른다.
낯선 사람에게 하등의 눈길도 주지 않는 무관심, 누가 섬뜩한 눈빛으로 다가와서 '새우잡이 멍텅구리배 좀 타보겠오' 할 것 같은 음험한 분위기에 눌려서 우리는 서둘러 포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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