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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균 수필 연재 - 簡易驛

Joyfule 2012. 1. 4. 02:21

 

    

 

목성균 수필 연재 - 簡易驛


경부선 조치원과 부강역 사이에 내판(內板: 안너덜이)라는 간이역이 있다.
아침저녁, 대전과 천안을 오고가는 비둘기호가 한 번씩 설뿐인데 그나마 이용하는 승객은 거의 없다. 다만 옛날부터 기차만 타 본 촌로(村老)들이 길들여진 생의 습관 때문에 이용하고, 혹 시간이 맞는 샐러리맨과 통학생들이 가끔씩 이용할 뿐이다.

지금은 역 앞으로 대전 조치원간, 청주 부강간 시내버스가 연락부절로 지나다닌다. 그런데 누가 하루 딱 한 번, 그 것도 특급열차에 밀려 연발착이 일쑤인 구간 완행열차를 믿고 기다리겠는가. 그런 어리석은 인내심을 가진 사람은 시골 내판에도 지금은 없다.
항상 역사의 문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다. 녹슨 자물쇠는 주먹만한 쇳덩어리로 한 시대 전 골동품이다. 이 자물쇠는 하루 한 번 서는 비둘기호가 들어올 때쯤 늙수그레한 시골 아저씨가 유유히 나타나서 푼다. 그리고 구내 채소밭으로 가서 배추나 상추 아욱 같은 채소를 가꾼다. 혹 손님이 찾으면 역사로 가서 표를 팔고 어슬렁어슬렁 채소밭으로 되돌아간다.


 

이윽고 기차가 와서 정차를 해도 그 아저씨는 출구로 가지 않고 괭이 자루에 턱을 괴이고 서서 기차에서 내리는 승객을 바라본다. 혹시 낯선 사람이 있나 해서지만 늘 보는 그 얼굴일 뿐 낯선 손님이 있을 리가 없다. 젊은 사람이나 아낙네들은 '아저씨' 하고 늙은이들은 '여보게' 하고 그를 부르긴 하지만 그더러 와서 표를 받으라는 게 아니라 다녀왔다는 인사치레 겸, 늘 하던 대로 차표는 역사 뜰에 놓고 갈 테니 그리 알라는 뜻이다.
승객도 없는 역사에 역무원을 배치하는 것이 비경제적이라고 판단한 철도청 시책에 따라 철도와 연관이 있는 지방사람에게 역무를 위탁한 것 같다.


내판역은 1920년경 충남 연기군 동면 주민들의 진정에 의해서 세워진 간이역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역을 세운 내력이 흡사 주민을 위한 식민정책의 일환인 것 같지만 일본사람들의 위선적인 기록일 뿐 사실은 수탈의 목적으로 세워진 역인 것이 분명하다. 내판역은 소위 미호평야라고 일컫는 넓은 안너덜이 들판 한 녘에 서 있다. 어수룩한 안너덜이 사람들이 기차를 태워 달라고 관청 앞에 가서 데모를 했을 리도 없고, 또 데모를 했다고 해서 일본사람들이 이익 없이 역을 세웠을 리도 만무하다.


역구내의 넓은 공터는 시커멓게 콜타르를 칠한 목조 양곡창고가 서 있던 자리일 것이다. 기름진 들판의 곡식을 수탈해서 쌓아 두었던 창고-. 국방색 국민복을 입고 각반(脚絆)을 찬 일본사람들이 서슬이 시퍼렇게 곡식 가마니를 창고 안에 들여쌓는 일과 화차에 내다 싣는 일을 독려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달빛 아래 하얗게 꽃을 피우고 서 있는 플랫폼의 개망초 대궁을 보면 꼭 유민(流民)의 길에 오르던 그때의 농민들 모습만 같다. 쌀이 남아도는 현실을 생각하면 배가 고파서 정든 고향을 버리고 북지로 떠나던 당시의 유민들이 눈에 선해서 일본 강점기의 간악한 수탈을 짐작케 되는 것이다. 뺏긴 자와 뺏은 자의 애환(哀歡)이 같이 서 있던 1920년대의 플랫폼, 지금은 다 짜 먹은 술항아리의 공허한 용적(容積)같이 여운만 남아 있다.

 

개망초꽃 하얗게 핀 잃어버린 플랫폼에
황혼을 등지고서 차가운 손 흔들면서
역원(驛員)은 소실점(消失點) 너머 북행열차를 띄운다.

기름진 내판 들녘 이삭 같은 소망을 두고
다 뺏긴 백성끼리 때묻은 맨상투로
시린 손 꼭 쥐어 주며 헤어지던 수탈의 역.

 

나는 격앙(激昻)된 나를 달래러 내판역에 온다. 계절에 따라 다른 고적한 간이역의 모습이 나를 침착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무르익은 봄의 간이역은 눈물겹도록 외롭다. 어느 역구내와 다를 바 없이 개나리 진달래가 화사하게 핀다. 보아주는 여객이 없는 유감한 꽃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선로 위로 특급열차가 꽃들의 고운 자태에 심술궂은 굉음을 던지고 질주해 가고 나면 적막한 한숨 같이 남는 봄.
역사 앞에 해묵은 라일락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역구내에 가득하게 풍기는 진한 라일락 향기로 해서 오히려 적막은 애틋하다.


옛날에 이 라일락꽃이 필 때, 많은 남녀 통학생들도 첫사랑을 꽃피웠으리라. 지금도 이 간이역을 통해서 통학을 한 노인들이 사그라지는 불꽃같은 추억을 되살려 보려고 이 라일락꽃이 핀 나무 아래 향기를 따라 와서 서 있어 볼지 모른다. 그 나무 곁에 서서 여학생은 씩씩한 남학생의 무심한 마음 때문에 슬퍼했고, 남학생은 진달래 꽃 빛 같이 피는 여학생의 용태에 몸달아 했을 것이다. 이 라일락나무 곁에서 눈이 맞아 사랑을 이룬 어떤 통학생은 그 때의 라일락 향기를 소중하게 가슴에 지니고 노랗게 탈색 된 투명한 가을 내판 들녘처럼 후회 없이 늙어 갈 것이다.


가을날 내판역 플랫폼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황금들녘에 지는 저녁 노을은 가슴이 터질 듯 장쾌하다. 내판은 들도 넓지만 하늘은 더 넓다. 그 하늘을 온통 시뻘겋게 물들면서 하루가 저문다. 들녘에 잔광이 가득 내려앉고 하루 일을 끝마친 농부들이 그 빛 속에 서 있는 저쪽, 저녁연기 자욱한 산자락에 안긴 동네를 바라보면 밀레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가득 차 오른다.


그 때 급행열차가 플랫폼을 통과한다. 열차가 서지 않는 저문 플랫폼에 사람이 서 있는 것이 수상해서인지 '빵' 하고 경적을 울린다. 나는 기관사가 불안하지 않게 선로에서 멀리 떨어진다. 그러면 거침없이 굉음을 끌고 노을진 소실점 속으로 사라지는 열차-. 열차가 사라진 역구내 저쪽에 어둠에 묻히는 외로운 시그널. 빨간불이 잠시 후 파란불로 바뀐다. 뒤따라서 열차는 또 다가오는 중이고 폐색기(閉塞器)는 열려 있으니 통과하라는 신호다.

송년 음악이 거리에 넘치는 세모에 나는 혼자 이 곳에 와서 시그널을 볼 때가 있다. 사라지면 또 나타나고 간단없이 통과하는 급행열차들을 속력과 거리를 측정해서 추돌 사고 없이 통과시키는 시그널의 모습이 마치 왕조(王朝) 말 변천하는 시대적 오류(誤謬)의 연속선상에서 현재를 직시하던 사관(史官)의 눈빛처럼 결연하다 못해 고독해 보였다. 눈발이 분분한 역구내 저 쪽 끝에 서 있는 시그널의 파란불이 내게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일깨워 주었다. 통과하라, 주저하지 말고, 다음 역을 향해서, 뒤따라서 다른 사실(史實)처럼 기차가 다가오고 있다. 시그널 불빛은 단호했다.


한 시대의 흔적 같은 눈 내리는 간이역에 구애(拘碍)없이 온전히 나 혼자인 채로 서 있으면 후회스러웠던 날들 중에서도 더러는 낭비가 아니었던 내 생의 사실(史實)을 발견하게 되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