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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균 수필 연재 - 강진의 밤

Joyfule 2012. 1. 3. 02:27

    

 

목성균 수필 연재 -  강진의 밤


1. 강진의 밤
봄날, 저녁 빛이 가득한 2번 국도를 따라서 장흥을 지나 강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도로변에 파란 논보리가 질펀했다. 온화한 남쪽 바닷가의 해양성기후 때문에 휴면기(休眠期)도 없이 생산을 계속 하는 고달픈 토지(土地)-. 중부 이북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이모작지대의 이국적 봄 풍경에 취해서 잠시 길옆에 차를 세웠다. 자동차들이 먼지를 날리며 씽씽 달린다. 부산과 목포를 잇는 2번 국도, 영호남의 지역감정과 관계없이 동서간의 물류이동(物流移動)이 홍수처럼 넘친다. 반갑다. 물류가 이동하면 인정도 이동할 것이다. 영호남의 갈등은 정치적 입지(立地)를 위한 정치인들의 술책에서 비롯된 것이지 백성들의 본심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보리가 잘 자랐다. 배동이 서고 더러는 패기 시작했다. 저녁 빛을 받고 파도처럼 물결친다. 노고지리가 이 좋은 보리논에 둥지를 틀지 않았을 리가 없다. 소란한 자동차의 소음에 깃들이지 않은 것인가. 언젠가, 발사대에서 불을 뿜고 치솟는 우주선을 배경으로 물수리 한 쌍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는, 후로리다 늪지의 존엄한 생태계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2번 국도 변의 소음공해에도 불구하고 노고지리 역시 후로리다의 물수리처럼 의연하게 생태계를 확보했으리라. 저물어서 보리골에 나려 죽지를 쉬고 있을 뿐이다. 


봄날 해가 저문다. 아! 노을 빛이여-. 뉘 날 부르는 소리 있어 귀를 기울인다.
"거기 오는 게 우리 강아지 아녀-.?"
할머니가 저문 동구밖에 서서 날 부르던 소리-.
참 아득하다. 언제 세월이 그렇게 지나갔을까!
"저무는데 뭐해요 안가고-."
아내의 재촉에 출발했다. 조금 가자 오늘의 기착지 강진이었다.
늘 그립던 먼 동경의 남쪽나라.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였고 김영랑의 시향(詩鄕)인 강진. 그 일반상식 말고 내가 그리는 강진은 퍽 고답적인 것이었다. 뒤틀린 목문(木門)을 여닫으려면 한참 끙끙거려야 하는 점방에 상품진열 상태가 아주 소박해서 값이 미더운, 고색창연한 기와집 점포들이 죽 늘어선 상가거리. 전통을 고집하는 좀 낙후된 남쪽나라의 소읍이 내가 그리는 강진이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강진은 지금의 전국적 경향을 띤 소읍일 뿐이었다. 3,4층 짜리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거리 모습을 조잡스럽게 변모시키고 있다. 패션점포, 슈퍼마켓, 가든, 노래방, 단란주점, 다방, 장급 여관등 미처 사용처를 찾지 못한 자본들이 가난했었고, 인정스러웠던 삶의 애착과 정서와 문화의 흔적을 아주 수월하게 허물어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금산장이란 여관에 차를 대고 하루의 여행을 끝마쳤다.


남도천리를 차를 몰고 온 몸이다.
아내는 저녁밥을 먹자 낯선 곳의 밤 풍경도 마다하고 이내 골아 떨어졌다. 차멀미를 하던 아내다. 초보운전자의 옆자리에 긴장을 하고 앉아서 하루종일 운전을 간섭하느라고 차멀미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운전을 한 나보다도 신경이 더 피곤한 것이다. 아내는 쉽게 코까지 골면서 잠이 들어 버렸다.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여관 창문에 달빛이 가득하다. 음력 춘삼월 열 나흘 달이다.
개가 자지러지게 짖는다. 왜 개가 저리 짖을까. 여관집 개가 사람보고 짖을 리는 없고, 째지게 밝은 달을 보고 짖는 것인가. 달을 보고 짖을 정도의 개라면 도시의 여관집 개치고는 낭만 적인 개다. 전에 우리 시골집 개가 밤이 깊었는데도 뜨락에 엎드려 잠들지 못하고 중천에 뜬 달을 보며 끙끙 앓던 생각이 난다. 영랑시인의 서정 어린 고장 개라 제 딴에는 시를 읊는 게 아닌지-. 나는 아내를 자게 두고 여관을 나섰다. 개도 보고 짖는 달을 이 먼 곳까지 와서 외면한다면 나는 '개만도 못한 놈-.'이다.
강진만으로 나갔다.


달빛에 드러난 도로변의 보리밭 언덕은 싱싱하고 그득했다. 마치 곤하게 잠든 어린것이 딸린 어미의 몸뚱이처럼 풍만하다. 보리밭 언덕 너머로 강진만의 밤바다가 열렸다 닫혔다 하며 바라보였다. 만의 대안에 아득하게 포구의 불빛이 가물가물했다. 다산이 귀양살이를 한 초당은 저 만(灣) 건너 어두운 산자락 어디쯤 있을까? 그 어른도 춘삼월 열 나흘 강진만의 달빛을 보았겠지-! 그분의 적소(適所)의 감회를 상상하며 자유의 소중함을 음미한다. 당쟁으로 날이 지고 새는 암담한 조정에서 또 무슨 어명을 받들고 금부도사가 당도할지, 귀양살이를 하던 어른의 심기가 이런 달밤이면 오죽이나 심란했을까.


강진만-.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달빛을 가득히 받고 미동도 없이 고요하게 펼쳐져 있다. 차를 세우고 길가에 나려 서서 강진만의 바다를 바라본다. 바람 한 점 없는 수면에 어린 교교한 달빛이 꿈결같이 아득하다. 달빛의 이랑은 명주자치를 끝없이 풀어놓은 듯, 만의 어귀까지 빤짝이며 이어져 있다. 나는 국민학교 대운동회 날 백 미터 트랙을 달리듯 저 달빛 이랑을 용을 쓰며 달려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태백이 달빛 어린 강에 몸을 던진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배가 '통통'거리며 포구를 떠나서 달빛 속으로 사라져 간다. 시정(詩情)에 잠 못 이룬 어부가 취흥이 도도해서 달빛 어린 밤바다에 그물을 드리우러 나가는 것일까? 문득, 저 배에 영랑 시인이 타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배는 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통통거리는 뱃소리도 들리지 않고 가물가물하던 한 점마저 달빛이 삼켜버렸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꿈을 꾼 것만 같다. 아-! 저 배는 분명히 시옹(詩翁) 영랑이 탄 배다. 달이 기울면 배가 어두운 만 안으로 소리 없이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시옹은 배에서 나려 부윰하게 먼동이 트는 보리밭 사잇길로 해서 유택으로 돌아가리라. 지난밤 '강진만의 달빛'을 한 수의 시로 읊으면서---.
여관에 돌아와서 아내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곁에 누었다. 창이 밝아서 커튼을 쳤다. 그래도 좀체 잠이 오지 않는다. 여관 집 개가 간헐적으로 짖어대고 밤은 속절없이 깊어간다.


2. 다음 날
다음날 아침 일찍 잠이 깼다.
객지에서 아침 식사 해결은 수수께끼처럼 어렵다. 어딘 가에는 맛깔스러운 된장찌개 백반이나 해장국을 하는 집이 있겠지만 객지 사람은 그 걸 알 수가 없다. 그 것을 알려면 새벽 식도락을 즐기는 이 지방의 부지런한 사람에게 물어 보아야만 알 수 있는데, 그 사람이 누군 지도 알 수 없다.
우린 시외버스 주차장 앞으로 갔다. 거기에는 뜨내기손님을 상대하는 대개 좀 부실한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새벽에 문을 열기 때문이다.


주차장 앞에 <선지국 전문>이라고 써 붙인 <8.8식당>이란 식당이 눈에 띄었다. 우린 그 식당으로 들어가서 맛이 그러려니 하는 각오를 하고 선짓국을 시켜 먹었다. 의외로 선짓국은 담백하고 구수한 맛이 내 구미에 썩 잘 맞았다. 아내도 맛있어 했다. 낯선 곳에서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횡재한 것처럼 기쁘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주인 얼굴을 쳐다보았다. 천상 몽골리안의 얼굴이었다. 광대뼈가 불거진 얼굴은 새벽잠이 모자랐는지 볼이 붓고 입이 당나발처럼 나와서 골난 사람 같았다. 수면이 부족한 내 얼굴도 저럴까 싶었다. 음식 맛이 좋다고 사례의 한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그의 표정이 내 인사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만 두려고 했다. 그러나 객지 사람에게 성의 있게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이런 토착민의 자존심이 곧 관광자원이라는, 관광공사 사장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나는 굳이 인색한 인사성을 발휘했다.
"음식이 참 맛있습니다. 잘먹었습니다."
주인이 당나발 같은 입을 겨우 비집고 내게 웃음을 비쳐주었다. 기분 좋았다.


오늘 여행은 재수가 있으려나 보다. 아침부터 선량한 사람을 만나서 아침다운 요기를 하고 마음을 트는 인사까지 했으니 말이다. 영랑 생가에 들렀다. 늘 그 점이 유감이다. 왜? 복원에는 복원했다는 사실이 역력한 것일까. 옛날을 옛날인 채로 고스란히 복원해 놓을 수는 없는 것일까. 영랑 생가도 마찬가지다. 그 앞 주차장은 편의시설이니까 그렇다고 양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바깥마당부터가 문제다. 복토를 새로 하고 깨끗이 비질을 해서 우선 터가 금방 잡은 것처럼 생경하다. 차라리 초가는 해마다 새로 해 일 것이 아니다. 용마름이 썩어서 물골이 패인 채로 두는 것이 좋다. 물론 퇴락하도록 방치해야 좋다는 말이 아니다. 퇴락은 방지하고 고색창연함을 강조하라는 말이다.
주인공의 원 이제 바다 길이 열린다는 영등살놀이 구경을 하러 진도의 '모도' 앞바다로 가기 위해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고맙게도 당나귀 투레질 하듯 힘찬 소릴 지르고 차는 시동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