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균 수필 연재 - 된서리 내리는 밤이면
좋은 詩 한 편 읽으면서 마음의 安靜을 圖謀해보지만, 마른 짚신바닥에 물을 축이며 타박타박 걸어온 먼길 생각하며 잠 못 이룬다.
된서리가 내리는지 코끝이 매운, 이런 밤이면 생각 수록 불가사이 하다. 소금에는 가차없이 절여지면서 어떻게 된서리에는 難攻不落의 安市城인지, 그 질긴 온갖 잡초들이 된서리에 다 허물어지거늘 하얗게 된서리를 뒤집어쓰고도 과년한 처녀처럼 더욱 속을 채우는 텃밭의 푸른 배추, 다만 김장이 되기 위한 정조가 서리 발 보다 매운 내 유년의 품에 가득 차던 그 풍만한 몸. 된서리가 내리는지 코끝이 매운, 이런 밤이면 생각난다.
들녘의 풀숲에서는 짧은 생을 마치는 풀벌레들 생각난다. 메뚜기, 귀뚜라미, 잠자리 등등 풀벌레의 늙은 성충들이 임종도 없이 죽어간다. 그러나 죽음은 하루 밤에 끝나는 게 아니다. 고통도 생명인 듯 죽음을 아낀다. 밤에 꼿꼿하게 굳은 메뚜기의 주검이 다음 날 가을 햇살에 꼼지락거리며 사는걸 보았다. 벌레들은 그렇게 여러 날 밤에 걸쳐 조금씩 저를 죽인다.
아-! 질긴 생명의 집착.
된서리가 내리는지 코끝이 매운, 이런 밤이면 생각난다. 코는 개 코가 좋다는 생각. 내 코는 된서리 오는 밤에 비염이 된다. 그 비염은 메뚜기의 주검처럼 겨울까지 시름시름 이어진다. 된서리 내리는 밤 봉당 바닥에 턱을 대고 엎드려 잠들어도 비염 안 걸리는 개 코, 개 코는 조물주가 비염에 안 걸리게 만들어 준 것일까. 개 코가 비염 걸리면 삶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냄새를 못 맞으니까.
내 코는 냄새를 못 맞아도 삶에 지장이 없다고? 조물주는 모른다. 냄새를 못 맞으면 식욕이 떨어지는 것을---. 세상의 그 많은 불행 중 식욕이 떨어지는 것이 으뜸가는 불행이다. 먹고 싶지 않으면 반은 죽은 것이기 때문에-. 된서리가 내리는지 코끝이 매운, 이런 밤이면 쇠재고개 아래 있는 단풍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불붙은 것 만치 빨간 단풍, 나무의 불같이 뜨거운 체념이 보인다. 아니, 순응이 그리 눈부신 것인가 모르지-.
낙엽하기 위해서 떨켜(離層)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여름 날 광합성을 위한 치열한 向日性에 한 점 후회도 없는 이파리의 자만일까. 그 단풍나무 아래로 남루한 여름 군복을 입고, 자기 키 만한 ‘아시보 장총’을 메고, 날 무를 어적어적 씹으며 산으로 올라가던 인민군 소년 병 뒷모습 된서리 내리는지 코끝이 매움 밤이면 눈에 어린다.
1950년 늦가을. 아롱아롱 땟국이 흐르던 얼굴, 그 중에는 눈물자국도 있었으리라.
된서리가 내리는지 코끝이 매운, 이런 밤이면 그 소년 병이 어머니 품으로 돌아갔을지 궁금해서 잠 못 이룬다. 된서리가 내리는지 코끝이 매운 이런 밤이면 강물도 자는지 흐르는지 보러가고 싶다.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성균 수필 연재 - 봄비와 햇살 속으로1. (0) | 2012.03.09 |
---|---|
목성균 수필 연재 - 첫눈에 관한 기억들 (序) (0) | 2012.03.08 |
목성균 수필 연재 - 洞口 (0) | 2012.03.05 |
목성균 수필 연재 - 少年兵 (0) | 2012.03.04 |
목성균 수필 연재 - 커피에 관한 추억 (0) | 2012.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