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균 수필 연재 - 봄비와 햇살 속으로1.
나에게 기영이라는 이종4촌 여동생이 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나보다 열 서너 살 적을 터이니까 어느덧 동생의 나이 쉰 너덧 살쯤 되었다. 양양으로 82세에 과수가 되신 이모를 뵈러 가면서 나는 그 동생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 동생을 생각하면 신을 원망하게 된다. 동생은 정신병을 앓고 있다. 이모님 내외분이 서울 아들들 곁을 떠나서 큰딸이 병원을 하는 양양으로 옮겨오신 것도 병든 딸 때문이다. 양양으로 옮겨 오신지 2년쯤 되셨다. 여기서 영감님은 돌아가시고 이제 이모님은 병든 딸과 기약 없는 여생을 앞두고 계시다. 물론 이모가 돌아가시면 큰딸이 제 동생을 거두어 주리라 믿고 이곳으로 오신 것일 터이다.
비나리는 영동고속도로, 안개가 자욱하다.
계곡을 건너 교량을 설치하고 높은 산등성이에는 굴을 뚫어서 완만하게 태백준령을 가로지르는 새 영동고속도로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큰 차 작은 차들이 거침없이 달린다. 둔내 터널 못미처 깊고 넓은 골짜기를 가로 걸쳐놓은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오르막길을 내 차를 앞질러 올라간 차들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이 마치 전투기들이 비상하여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다.
나는 문득 기원전에 십만 대군을 이끌고 눈 덮인 알프스를 넘어 로마제국을 침공한 한니발 장군의 의지를 생각했다. 왕복 4차선에 등반차선이 따로 설치된 산정 대로를 꽉 메우고 넘어가는 차량행렬 속에 끼어서 백두대간을 넘는 내가 마치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 장군휘하의 로마제국 침공군인 것처럼 가슴이 뿌듯하다. 태산준령을 정복한 우리의 건설기술이 불가능을 결행한 한니발 대군의 알프스 정복만치나 경외감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모부께서 우리 애 진국이 결혼 무렵 돌아가셨다. 慶事를 앞두고 哀事에는 가는 게 아니라고 해서 이모부 장사에 못 갔다. 애 장가 드려놓고 바로 가서 이모님을 뵙는다고 한 것이 설이다, 적설이다, 감기다. 등등 이유가 겹쳐서 늦었다.
“어이그 지겨워-.”
아내가 느닷없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아내의 그 전치사구는 35년 전 굽이굽이 이 산맥에 놓인 비포장 6번 국도로 털털거리는 만원 버스로 넘던 고단한 여행과 지금의 쾌적한 여행을 비교하는 감탄이다. 대관령 아래 진부라는 곳에 3년 가까이 사는 동안, 거기서 충청도 저쪽 본가까지 아내는 수시로 왕래를 해야했다. 아내는 층층시하의 맏며느리로 시조모와 시부모 생신에, 명절에, 일가친척의 애경사에 많이 다녔다. 물론 나하고 같이도 다녔지만 혼자서 더 많이 다녔다. 애 하나는 손을 잡고 하나는 업고 하루 종일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가기 일쑤였다.
진부에서 강릉발 서울행 새벽버스를 타고 횡성 나가면 한나절, 횡성에서 원주, 원주에서 충주, 충주에서 연풍, 연풍에서 윗버들미 집에 당도하면 땅거미가 졌다. 물어볼 것도 없이 그 고단한 맏며느리의 길(女道)이 지겹다는 말일 게다.
“그 때는 다 지겹게 살았어-.”
그리 말하고 보니 태산준령을 넘는 영동고속도로가 우리의 지겹던 시대를 청산한 신화적 창조물 같다. 그때 아내는 진짜 나무꾼의 선녀였다. 불쌍한 선녀, 내가 날개옷을 꼭 감춰서 날아가지도 못하고 소형승용차 조수석에서 지금 푸석푸석 졸며, 늙으며 남편을 따라 시이모 뵈러 가는 것이다.
대관령을 넘으면서 산들이 눈에 익다. 공연히 목이 메여 온다. 산천을 두리번거리는 운전수에게 조수가 힐책을 한다.
“사고 내겠어요. 눈뜬 심봉사처럼 뭘 그리 두리번거려요. 그러지 말고 들렀다 가든지-.”
자기도 내 맘 같은 모양이다. 계획에도 없이 횡계IC에서 내렸다. 우리가 처음으로 객지로 신접살림을 난 횡계-. 우리가 살던 데가 어딘지 당연히 알 수 없을 줄 알면서 들러보았다. 지금의 횡계는 겨울 위락도시화 되어있다. 35년 전 우리가 살던 사택이 어디쯤 있었는지도 알 리 만무하다. 눈 쌓인 겨울밤 아기 곰 두 마리와 아빠 곰과 엄마 곰이 창 너머로 어두운 대관령과 그 산등성이의 별을 바라보며 겨울잠을 못 이루던 그 따뜻하고 아늑해서 눈물겹던 굴이 어디쯤인지-. ‘그립다. 말을 할까하니 그리워---’
그래서 들러 본 것뿐이다. 그러나 눈만 그 때처럼 내리기 시작할 뿐 낯설다.
“안 되겠어요. 가요. 여기는 눈만 왔다하면 금방 쌓이잖아요. 어물거릴 새 없어요.”
아내가 재촉을 했다.
대관령 너머는 눈은 오지 않고 대신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로 자욱했다. 비상 점멸등을 켜고 내려왔다. 굴속은 불을 켜 놓아서 밝고 굴 밖은 안개가 끼어서 어둡다. 미로 찾기를 하는 것 같다. 대관령을 거의 내려온 곳에 대관령 휴게소가 있었다. 휴게소에 들려서 점심으로 우거지국밥을 먹고 양양에 도착한 시간은 2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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