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목성균 수필 연재 - 목도리

Joyfule 2011. 12. 19. 10:19

 

 

 

 

   

 

 

목성균 수필 연재 - 목도리


대관령 못미처 횡계라는 동네가 있다. 지금은 풍부한 강설량 덕분에 스키장이 발달해서 겨울 위락단지가 되었지만 60년대 말에는 여름에 고랭지 채소와 감자농사를 짖고 겨울에는 적설에 파묻히는 고적하기 이를 데 없는 산촌이었다. 나는 강릉 영림서의 횡계분소 주임으로 그 산촌에서 한 해 겨울을 난 적이 있다.
그 곳의 눈은 선전포고처럼 대설주의보를 앞세우고 왔다. 일기예보는 전국적으로 비가 나릴 거라면서 다만 강원도 산간 지방에는 많은 눈이 나릴 것이라고 했는데 그 건 횡계를 두고 한 말 같았다. 일반적인 일기가 예보될 때 별도의 일기를 예보해야 하는 고장에 가족을 이끌고 온 나는 내 삶에 대한 우려를 금치 못했다.

 

질고의 젊은 여류시인의 등단 작품인 '初雪'을 보면 설국의 첫눈 규모가 어떤지 알 수 있다. 그 시인은 한계령에 내리는 첫눈을 읊었지만 한계령의 첫눈이나 대관령의 첫눈이나 서사적(徐事的)인 강설 규모이긴 마찬가지다. 그 여류시인은 몰리어 가는 눈발을 '순백의 고요한 화해, 그 눈부심'이라고 표현했다. 한 번의 첫눈으로 그 곳은 천지간이 순백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첫눈이 내린 후 대관령에는 겨우내 간헐적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흰 깃발의 행렬' 같이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릴 뿐 아니라 바람이 눈을 몰아다 바람받이에 쌓아서 설구(雪口)를 만들어 놓았다. 설구의 곡선은 마치 여인의 둔부 같이 아름답기 그지없는데 햇살이 비추면 설백의 탄력 있는 부피가 젊은 성욕을 충동질했다.

 

어느 날은 바람이 눈을 몰아다 우리가 거주하는 분소 관사의 방문과 부엌문에 쌓아서 누가 눈을 치워 주기 전에는 꼼짝없이 방에 갇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에스키모인의 눈 집이 얼마나 아늑한지 나는 그 때 알았다. 잊어버리고 아무도 오지 않으면 눈 집 속에서 곰처럼 겨울잠이나 자려고 했으나 사람들은 우리를 잊어버리지 않고 달려와서 눈을 치워 주었다.
백설이 애애한 긴 겨울의 권태를 꾹 참게 하던 내 아이들이 만든 동화(童畵) 한 폭. 눈이 쌓이지 않은 처마 밑으로 여섯 살짜리 계집애가 네 살짜리 사내애 손을 꼭 잡고 게처럼 모퉁이 걸음으로 가겟방에 과자를 사러 가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저 것들을 잘 길러 낼 수 있을까? 적설량이 젊은 가장의 기를 죽였으나 부성애가 바람꽃처럼 적설량을 떠들시고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작은 산골 동네의 적설량만큼이나 무겁고 적막한 침묵은 사람의 의지 마저 묻어 버리는 듯했는데 다행이 <지. 엠. 씨>가 끝임 없이 대관령 너머에서 명태를 실어다 설원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얼어붙은 횡계천에 부렸다. 황태 (黃太) 덕장이 설치 된 것이다. 그 곳에 황태덕장이 설치되지 않았으면 그 겨울을 어떻게 났을지 아득하기만 하다.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겨우내 횡계천에 나가서 명태를 씻었다. 동네서 건너다보면 하얀 설원 한가운데서 온종일 작은 삶의 동요가 일어 설원 가득히 파문 졌다.

여자들은 명태를 두 마리씩 코를 짖고 남자들은 명태 두름을 냇물에 씻어서 덕장에 매다는 지극히 단조로운 작업이 하루종일 계속 되었다. 개인 날 햇살을 되쏘는 눈부신 설원 복판의 움직임이 피안(彼岸)처럼 아득하게 건너다 보였다. 나는 그 광경을 망막이 아파서 잠깐 씩 외면을 하면서 하루 종일 건너다보았다. 저녁 때 하얀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지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온 설원을 빨갛게 물들이며 커다란 해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졌다. 나는 장엄한 광경에 가슴 뻐근한 심근경색증세를 느끼곤 했다. 황태덕장 일꾼들도 그 때서야 하루 일을 끝내고 동네로 돌아 왔다. 일렬로 늘어서서 동네로 드는 일꾼들의 빨갛게 물든 침묵. 얼마나 춥고 긴 하루였을까. 그러나 나의 연민은 기우일 뿐, 그들의 노을에 젖은 빨간 얼굴에는 새실 새실 삶의 기쁨이 피어나고 있었다.

 

황태덕장에서 돌아온 아낙네가 빨갛게 언 커다란 손으로 아내의 눈처럼 창백한 손을 잡고"아이고, 손이 이게 뭐래요. 어디 아픈 거래요?" 하며 명태 한 코를 건네주고 갔다. 아내는 하얀 빈손이 부끄러워 쩔쩔매며 명태를 받았다. 아내의 손은 권태에 하얗게 지쳐 있었다.

나는 어느 날 강릉 내려가서 <오.공.오> 털실을 사 왔다. 아내는 하얀 손으로 열심히 그 털실로 목도리를 떴다. 아내는 아주머니들이 황태덕장 일을 나갈 때 시작해서 아주머니들이 손이 빨갛게 어는 온종일 목도리를 떴다. 그리고 긴긴 겨울밤 내내 목도리를 떴다. 밤이 깊어서 그만 자자고 보채도 아내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자지 않았다.

창 밖을 내다보면 하얀 산맥 위로 캄캄한 하늘에 별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우리 애들은 방안에서 동면하는 다람쥐처럼 곱게 잠들어 있었다. 애들 얼굴을 들여다보면 참 행복했다. 아내는 겨우내 목도리를 떴다. 그리고 명태 한 코를 들고 들리는 동네아낙네 목에 그 목도리를 감아 주었다.남녀 간에 황태덕장 일꾼들 전부에게 목도리를 떠 주었다.
"새댁, 고마워. 목도리를 목에 감으면 온 몸이 다 따스버-. 세상없이 추운 날도 추운 줄을 몰라-."

 

황태덕장 일은 눈 오는 날도 계속 되었다. 가뭇하게 눈발 속에 묻히는 황태덕장, 드디어 시야가 뽀얗게 닫히고 그 너머서 황태덕장 일은 계속 되었다. 하루종일 저무는 날처럼 어둑했다. 황태덕장 일꾼들이 강설에 묻혀 버리는 게 아닌가 하루종일 걱정이 되었으나 저녁때면 날은 개이고 역시 설원을 빨갛게 물들이며 해가 졌다. 빨갛게 물든 황태덕장 일꾼들의 행렬. 아내와 나는 애들을 안고 창가에 서서 그 엄숙한 귀로를 맞이했다.

 

<오.공.오> 값싼 화학털실이다. 아내는 훗날 살기가 좀 나졌을 때 휭계 황태덕장 아주머니들에게 순모털실로 목도리를 떠 주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그러나 반드시 재료가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공정(工程)이 품질을 결정할 수도 있다. 온몸을 다 데울 수 있는 목도리는 없다. 그러나 아내가 뜬 황태덕장 일꾼들의 목도리는 두르면 온몸이 따습다고 했다. 긴 겨울밤을 지새운 아내의 정성스러운 수작업에 깃들인 마음을 목에 둘러서 그들의 마음도 따뜻했던 것인지 모른다.


저녁때 눈발이 서는 동네로 들어서는 아주머니들이 똑같은 색깔에 똑같은 크기의 목도리를 목에 감고 있는 것을 보면 행복했다. 밤을 지새워 목도리를 뜨는 아내 곁에서 산맥의 겨울바람소리를 듣던 생각을 하면 추위가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새삼 그립다. 인생의 과정들, 어느 하나인들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아내는 그렇게 바쁜 겨울을 그 다음에는 지내보지 못했다. 적설에 묻힌 한겨울 동안 털목도리를 뜰 수 있게 해준 계기, 횡계 황태덕장 일꾼들이 보여준 인간적 안색을 고마워 했다. 그분들이 준 명태맛이 그립다. 아내는 눈만 오면 횡계를 생각하고 금방 내린 적설처럼 순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