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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균 수필 연재 - 우정의 무대

Joyfule 2011. 12. 17. 10:30

 

   

 

목성균 수필 연재 - 우정의 무대


일요일 낮, ‘우정의 무대’를 보고 있었다.
함박눈이 쏟아지는 연병장의 언 땅에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오와 열을 맞춰 정연하게 앉아 있다. 눈은 예사롭지 않은 기세로 내려서 군인들의 군모와 넓적한 어깨에 소복하게 쌓여 가는데 연병장의 정숙(整肅)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군모의 차양 아래 젊은 시선들이 삼동(三冬)의 언 땅에 앉아서 눈발 속에 묻히는 자신들의 처지를 잊고 무대를 주목하고 있다. 그 빛나는 새까만 눈동자들, 마치 다이아몬드 같다. 자식을 군에 보낸 아비의 심정 때문일까, 군의 기강이 확립된 연병장 모습이 나를 감동시킨다.

 

하염없이 내리는 고향설(故鄕雪), 마침 사회를 보는 코미디언이 센티멘털한 수식어와 어조로 어머니를 소개한다.
“어머니, 어디서 오셨어요?”
무대 뒤에 있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경상도 봉화에서 왔심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금방 떠온 숭늉처럼 구수하다.
“어머니, 아들 군대 보내 놓고 많이 보고 싶으셨지요?”
“하믄요.”
“언제 제일 보고 싶던가요?”
“무시로 보고 싶지요. 밥상 앞에 앉아도 보고 싶고, 자려고 누워도 보고 싶고, 저물어도 보고 싶고 그렇지예.”
“어머니, 곧 아들을 보게 해 드릴게요. 우시면 안돼요.”
참 어리석은 주문이다.
“어데예, 안 울김니더.”
참 어리석은 대답이다. 어머니는 벌써 울먹이며 어리석은 거짓말을 한다.
“자, 어머니 올라오세요.”
비로소 연병장의 정숙을 흐트러뜨리며 무대 위로 병사가 뛰어올라 왔다. 병사는 어머니를 힘껏 껴안았다. 어머니가 까치발로 아들에게 매달려서 아들의 두 볼을 싸안고 운다. 병사도 운다. 연병장 가득한 병사들도 마음속으로 운다. 아마 사단장도 울 것이다. 세상에 어느 드라마의 클라이맥스가 이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을까.

 

저 장면이 바로 국방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사랑,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깊이도 한도 없는 이념을 초월하는 저 인륜성(人倫性)을 지키기 위해서 젊음까지도 홀연히 버릴 수 있다는 걸, 순수한 열정의 시절 칠흑의 차가운 별빛 아래 초병(哨兵)으로 서 있어 본 사람은 안다.
확립된 통솔력의 지휘선상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인간의 본성이 서 있다.
“자, 어머니를 업으세요.”
젊은 군인이라지만 업기에는 힘겨워 보이는 어머니의 육체였다. 소박한 삶의 이력 만치 크다. 그러나 군인은 가볍게 어머니를 업었다. 그 힘은 자기보다 더 큰 부상당한 전우를 업고 사선을 넘어가는 전우애와 상통하리라.
사회자가 명령했다.
“고향 앞으로-.”
병사는 어머니를 업고 가볍게 무대를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