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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균 수필 연재 - 선배의 모습

Joyfule 2011. 12. 9. 10:19

 

 

   

 

목성균 수필 연재 - 선배의 모습


민 주사는 풀풀 눈이 내리는 저문 강변을 따라서 아무 말 없이 휘적휘적 걸어갔다. 힘들이지 않고 걷는 그의 걸음걸이가 어찌나 빠른지 내 걸음걸이로는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등줄기에 땀이 났다.
“힘들지요? 막동리는 여기서 삼십 리쯤 가야 합니다. 길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지요.”
진부 장터를 벗어나서 얼마 후 훤한 들판도 끝나고 바야흐로 물길만 트인 산골짜기로 접어들면서 그가 한 말이었다. 담담한 어조였다. 바쁜 걸음걸이의 불가피성을 말하는 게 아니고 노정을 설명하는 듯했다. 그러니 민 주사의 걸음걸이는 전혀 서두르는 것이 아니고 유유자적한 것이 분명한데도 많이 걸어서 그런지 내 추적을 불허하고 있었다.
어두워지는 산등성이에 서 있는 나목들의 실루엣이 꼭 줄을 서서 우리와 나란히 걸어가는 것 같아 보였다. 민 주사와 나처럼 선후가 분명한 나무의 거리들.


어느덧 30년 전, 산림공무원으로 초임 발령을 받고 임지인 산읍 진부에 갔을 때 일이다.
청명이 지났는데 거기는 아직도 싸늘한 바람에 눈발이 분분한 겨울이었다. 춘추양복 차림의 내 행색으로 해서 그곳 사람들 보기가 민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온통 보이는 것은 산뿐이었다. 가까운 산은 텃세하듯 당돌하게 내게 다가섰고, 먼 산은 너 따위쯤 개의치 않는다는 듯 아득하게 물러서 있었다. 산 산 산-, 다시는 이 산 속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예감대로 그 후 나는 30년 가까이 산림공무원 노릇을 했다.
그때 물어서 찾아간 ‘강릉 영림서 진부관리소’의 소장은 나를 보더니 반색을 했다.
“본서에서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소. 내가 소장이고 이쪽은 막동 산림보호 담당 민 주사요.”
그분은 부임하는 나를 가차없이 전황이 불리한 주저항선(主抵抗線)에 보충병 투입하듯 민 주사 편에 딸려서 산읍의 물아랫동네 막동리도 보냈다. 그곳에 가서 민 주사를 도와 대단지 조림지도를 하라는 것이었다.


산림 녹화, 감히 소홀히 할 수 없는 박정희 대통령의 혁명 비전의 하나였다. 얼굴이 노란 배고픈 소년이 돌아서던 산모퉁이, 헐벗은 산을 보면 현기증을 느꼈다. 배고픈 게 산 때문일 리는 없었겠지만 굶주리고 헐벗은 우리의 삶처럼 슬프던 산, 박정희 대통령의 혁명 비전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정서에 맞았다.


“양복차림으로 산속에서 조림을 지도할 수는 없지.”
관리소장은 춘추 양복을 입은 내 꼴을 보고 동의를 구하듯 민 주사를 쳐다보았다. 민 주사는 나를 데리고 시장 안에 있는 단골 잡화점에 들러서 점퍼, 운동화, 배낭 등 산 생활에 필요한 걸 외상으로 준비해 주었다. 관리소 숙직실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막동리를 향해서 길을 떠났다.


저문 날 길 떠나는 건 서글프다. 귀소 본능 때문일 것이다. 객지에서 어두워지는 숲으로 깃들이는 산새의 총총한 날갯짓을 보면 집이 생각나게 마련인데, 초면인 사람 뒤를 따라서 신들메를 고쳐 매고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저문 길을 떠나는 일이 서글프지 않을 턱이 없었지만 의외로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관리소장의 결연한 모습 때문이 아니라 저문 길 떠나는 침착한 민 주사의 흔들림 없는 뒷모습 때문이었다고 기억한다.

마른 억새 대궁이 비스듬하게 늘어서 있는 언덕을 넘어서, 시퍼런 강 벼루를 돌아서, 동네 앞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나는 민 주사를 따라갔다.
마침내 깜깜한 물아랫동네 막동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장 댁 사랑방에 누워서 똑같은 음자리로 자근자근 노래하는 여울물 소리를 베고 선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청정한 산울림 소리에 잠이 깼다. 나는 반사적으로 방을 뛰쳐나왔다.
“국유림에 나무 심으로 나오시오!”
민 주사가 두 손을 나팔처럼 모아서 입에 대고 소릴 지르고 있었다. 발뒤꿈치를 추켜들며 얼굴이 벌개 가지고 소릴 토했다. 맑게 개인 아침이었다.

산속의 차고 맑은 아침 공기가 너무 신선해서 코가 매웠다. 이장네 집은 강 언덕에 있었다. 강 건너에는 턱을 추켜들어야 등성이가 까마득하게 바라보이는 산줄기가 남쪽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그 산줄기의 중턱 여기저기 화전민의 외딴집이 흩어져 있었다.

 

민 주사는 거기다 대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산울림이 건너편 산기슭의 집집마다 들렀다가 잠시 후 민 주사 앞으로 되돌아왔다. 장중한 산맥이 울렸다.

뱃속에서 나오는 우렁찬 목소리였다. 득음(得音)의 경지란 생각이 들었다. 목에 수건을 걸고 있는 걸로 보아 민 주사는 강에 내려가서 세수를 하고 올라온 모양이었다. 얼굴이 막 비가 개인 봄 산처럼 싱싱했다. 민 주사가 내 곁에 다가서더니 현지에 대한 설명을 했다.


“앞산 줄기는 해발 1400미터의 박지산 줄기고, 뒷산은 1560미터의 가리왕산 줄깁니다. 둘 다 태백산맥의 본맥이지요. 이 골짜기의 물길은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으로 남한강 본류입니다.”
“가리왕산 북편 능선에 산죽밭이 있어요. 버려진 고원이지요. 이곳 사람들이 육백마지기라고 부르듯 꽤 넓습니다. 거기다 경제림을 조성하기 위해서 잣나무 30만 그루를 심을 것입니다. 이곳 사람들이 농사일을 시작하기 전에 끝내야 할 일입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나는 그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깊은 눈자위와 광대뼈가 막 산맥 위로 퍼지는 햇살에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옆 얼굴의 솔직한 모습이 겨울 참나무의 목질부 처럼 단단해 보였다. 단순히 늙어 감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일관된 삶의 모습, 적어도 자기 삶에 의구심 없이 산 사람이나 가질 수 있는 얼굴이구나 싶었다.


민 주사는 다시 앞산 중턱에 있는 화전민의 외딴집들을 향해서 소리를 질렀다. 나도 소리를 질러 보고 싶은 충동이 아침 산 기운같이 일었다.
“나도 한번 소리쳐 볼까요?”
민 주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국유림에 나무 심으로 나오시오-.”
나는 민 주사처럼 손을 나팔같이 입에 대고 힘껏 소릴 질렀다.

내가 지른 소리의 산울림은 민 주사의 산우림에 미치지 못했다. 건너편 산기슭의 화전민 가옥까지 도달하기는 했는지, 울림이 없었다.
민 주사가 씩 웃었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사람다운 웃음이었다. 나도 멋쩍게 따라 웃었다.
“잘 안 되지요? 산감 노릇을 하다 보면 산에 대고 소리지를 일이 많지요. 목청만 커지면서 나이를 먹게 됩니다.”
떳떳함, 내게 전의(戰意)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새들은 깃들이어 둥지를 틀고, 맑은 시내가 발원하는 숲을 만드는 일은 보람이다. 반면에 용재를 얻기 위해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서 그 숲을 훼손하는 일은 환멸이다. 산림공무원은 이율배반적인 일을 하는 직업인이었다. 모순의 합리화, 확신 없이는 절대로 서 있을 수 없는 산등성이에서 좌절할 때마다 나는 겨울 참나무처럼 분명한 민 주사의 모습을 생각하며 일어서곤 했다.
선배의 좋은 첫 인상을 간직하고 직업을 시작한 것은 참 다행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