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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균 수필 연재 - 약속

Joyfule 2011. 12. 12. 12:00

 

   

 

목성균 수필 연재 - 약속


“내년 봄에 꼭 올게.”
30년 전에 예닐곱 살 먹은 산정(山頂) 소년의 면전에서 그렇게 약속을 하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당면(當面)을 모면하려고 한 거짓말은 아니었으나 결과는 그리 되고 말았다.
소년은 내 약속을 믿고 미처 눈도 다 녹기 전부터 복수초꽃 처럼 피어서 뽀얀 바람 뉘에 가뭇하게 묻히는 산맥을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서 있었을 것인가.

지금의 영악한 도시 아이들 같으면 거짓말은 알 나이지만 그때 그 소년은 중중히 이어간 산맥의 그림자와 별빛과 바람소리와 나무의 침묵과 야생화의 수줍은 미소밖에 아는 게 없는 어린 산짐승이었다.


그 해 가을도 꽤 깊어서, 영림서 직원인 나는 박지산 국유림 내의 방화선(防火線) 보수작업을 끝마치고 일꾼들을 데이고 속칭 육백마지기라고 부르는 고원을 내려오고 있었다. 표고 천 미터가 넘는 고원의 관목은 이파리를 다 떨구고 더욱 낮게 몸을 웅크린 채 겨울맞이 준비를 끝냈고, 고원 조금 아래 조림을 한 낙엽송 어린 숲이 가는 가을을 노랗게 울어예고 있었다.

그 황량한 늦가을의 고원 산길에서 나는 오도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일꾼들은 낙엽송 조림지를 향해서 산길을 부지런히 내려가고 있었다. 선두는 이미 낙엽송 숲 들머리에 이르러 “목주사님, 빨리 오세요, 해 지겠어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소년은 내 앞을 가로막고 비켜 주질 않았다. 청노루 새끼 같은 맑고 커다란 눈에 간절함이 가득 고여서 금방이라도 방울방울 눈물을 지울 것만 같았다. 나는 소년을 비켜갈 수가 없었다.

눈보라치는 겨울 산정에서 동무도 없이 겨울을 나야 할 소년의 참담한 고적이 태산같이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어서였다.
“내년 봄에 꼭 올게.”
“안 돼. 아저씨 못 가.”
진부 읍내까지 산 아래 막동리에서 50리 길을 가야 하는데 해가 지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급한 나머지 소년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건 아니다. 봄이면 나는 산불을 감시하러 순산차 육백마지기에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한 약속이었다.


고원에는 통나무집이 한 채 있었다. 옛날에 스위스 신부들이 양을 치느라고 지어 놓은 집은데, 늙은 심마니 내외가 소년을 데리고 그 집에 살았다.
방화선 보수작업을 하는 열흘 동안 우리는 통나무집 윗방에 묵었다. 소년은 처음 많은 사람을 보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우리와 같이 윗방에서 기거하며 어른들이 하는 말을 노루 새끼처럼 귀를 쫑긋거리며 들었다. 소년은 밤이 깊어도 아랫방으로 내려가지 않고 내 옆에서 잠이 들곤 했다.


여남은 명이 좁은 방에서 잠을 자려니까 몹시 불편했다. 어떤 때는 일꾼의 고단한 발길질에 걷어차이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소년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그때 소년은 노루 새끼 같은 야성으로 깜짝 잠이 깨서 나를 따라 나왔다.
낮에는 포효하듯 불던 바람이 밤에는 잤다. 나는 소년을 꼭 안고 추녀 및 바람벽에 기대앉아서 산맥의 밤을 바라보았다. 바람벽도 따뜻하고 소년도 따뜻했다. 품에 안긴 소년의 작은 심장 박동이 내 가슴에 전해왔다.


밤의 어렴풋한 산맥은 참 신비했다. 낮에 중중히 줄서 가던 산봉우리들이 모두 제자리에 앉아서 잠이 들었다. 꼭 방화선 보수작업 일꾼들 곤히 잠든 어깨처럼 순박하고 꿋꿋한 산등성이들의 선들. 아득한 골짜기에 서린 밤안개가 이불처럼 산맥의 발치를 덮고 있었다.

 

그 밤의 산정에서 생명이 생명을 안고 체온을 나누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나는 참 큰 체험을 했다.
바람에 항거하며 몸부림치던 산정의 관목들도 트집하던 어린애처럼 소릇이 잠들었는데 왜 그렇게 가여운지 나는 관목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관목들이 잠결에 ‘흑-’하고 흐느끼는 듯했다.
별은 손만 뻗으면 한 웅큼이라도 움킬 수 있을 듯 머리 바로 위에 뿌려져 있었다.
“아저씨, 저게 무슨 별인지 알아?”
어느 별을 가리키는 건지 알 필요가 없었다. 보나마나 나는 소년이 가리키는 별자리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고 소년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모른다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소년이 실망할까 봐 들은 풍월의 별자리 이름을 되나마나 주워 댔다.
“그건 작은 곰.”
“저건?”
“그건 큰곰.”
소년을 기쁘게 해주기 위한 거짓말도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그 거짓말이 탄로난 지 이미 오래 되었으리라. 소년은 자라서 어느덧 사십을 넘긴 나이다. 별자리에 대한 상식쯤은 생겼을 터이고, 혹시 천문학을 공부했다면 별자리에 대해서는 소상하게 알 터인데 나를 얼마나 형편없는 거짓말쟁이라고 경멸했을까.


내가 소년에게 봄에 꼭 온다고 약속하고 고원 육백마지기에 가지 못한 것은 그 해 겨울 급작스럽게 충북 도청으로 근무지가 이동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 근무지에서 말단 공무원의 고달픈 직무와 그 박봉으로 삼남매를 기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자연히 고원 육백마지기의 어린 소년에 대한 기억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지난 여름 휴가지 억수리의 숲에서 여섯 살짜리 손자 승주를 업고 숲 사이로 별을 보다가 우연히 그 소년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저씨, 그럼 눈 녹고 바람꽃(황사현상) 피면 꼭 와.”
“그래-.”


30여 년 전의 울먹이던 어린 목소리가 잦아드는 산바람 소리처럼 아련히 들려왔다. 그 산바람 소리처럼 허망하게 날아간 약속을 소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승주를 그 산정에 남겨 두고 온 듯한 착각에 가슴이 메어 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날 산정 소년에게 내 산림 경찰관의 작업모를 씌워 주고, 산불조심 완장을 채워 주고, 호각을 목에 걸어 주었다. 그리고 아저씨 대신 산림 경찰관 노릇을 잘하고 있으면 뽀얗게 바람꽃 이는 이른봄에 꼭 오마고 약속을 했다. 그제야 소년은 길을 비켜 주었다.
일꾼들이 기다리는 낙엽송 숲 들머리까지 가서 뒤돌아보니까 소년이 바위 위에 올라가서 조만간 숲속으로 사라질 우리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지는 늦가을 햇빛에 드러난 조그만 한 점, 외로움의 실체가 눈물겨워 차마 숲속으로 난 길로 들어설 수가 없었다. 낮에는 중중한 산봉우리와 밤에는 별들이 고작 소년의 동무일 뿐인 산정에서 소년은 긴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지.

 

막 숲속에서 들어서려는데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그 금속성 소리가 내 뒷덜미에 낚아채는 것 같았다. 소년은 내가 목에 걸어 준 그 호각을 떼쓰듯 불고 있었다.
“아저씨, 꼭 바람꽃 일면 와야 돼.”


호각 소리가 내 약속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듯했다.
소년을 생각하고 즉시 육백마지기 아래 있는 막동리에 갔다. 그 당시 방화선 보수작업을 했던 이장을 찾아보았다. 칠십을 훨씬 넘긴 노인이었다. 소년을 본 것처럼 반가웠다. 소년에 대해서 물어 보았더니, 심마니 노인 내외는 이태쯤인가 더 육백마지기에 살다가 소년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며 대화 장터로 내려갔다고 했다. 봄에 산나물을 뜯으러 육백마지기에 올라가면 소년이 멀리서 호각을 불면서 산토끼처럼 달려와서 “나는 산감 아저씬 줄 알았잖아” 하고 시무룩해서 내가 일러준 대로 산불조심을 당부하더라는 것이다.


소년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살까. 만나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경위를 꼭 설명해 주고 싶다. 인생이란 어차피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면서 요령껏 당면을 피해 가는 것이라는 비뚤어진 생각으로 어느 길을 가고 있지나 않을까?
젊은 날 소년을 안고 밤을 지새운 산정 육백마지기에 올라가 보고 싶었으나 산길이 풀숲에 묻혀 사라진 그 높은 산정까지 올라가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림서에서 닦아 놓은 임도를 따라서 맞은편 산중턱까지 올라가서 육백마지기를 쳐다보았다.

아득한 산맥의 높이와 넓이를 가득 채운 시커먼 숲의 그늘, 그 산맥에 비해서 사람의 세월과 기억 같은 것은 너무 작고 허망한 것이었다.
“얘야-, 정말 미안하다.”
산정에서 아직도 소년이 호각을 불면서 나를 기다리고 서 있는 것만 같아서 차마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산그늘은 지는데 목이 메어 왔다. 청산을 넘어가는 구름처럼 세월의 덧없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