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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이끄는 삶 - 29 사명을 받아들이기 2.

Joyfule 2007. 1. 5. 01:55


목적이 이끄는 삶 - 29 사명을 받아들이기 2.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부름 받았다. 
크리스천으로 성장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았다'라고 할 때 선교사나 목사, 수녀 아니면 '풀타임'교회 사역자를 생각해왔지만, 성경은 모든 크리스천이 섬김을 위해 부름 받은 자(엡 4:4~14, 참고- 롬 1:6~7, 8:28~30, 고정 1:2, 9, 26, 7:17, 빌 3:14, 벧전 2:9, 벧후1:3)라고 말하고 있다. 구원을 위한 부르심에는 섬김을 위한 부름심이 포함된다. 직업과 직종에 상관없이 우리는 풀타임 크리스천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그래서 '섬기지 않는 크리스천'이란 말은 의미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르신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다"(딤후 1:9, TEW). 베드로는 이에 덧붙여 말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목적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내 형제 자매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 죽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 열매를 맺기 위해 다른 분, 곧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롬 7:4, 쉬운성경).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우리의 시간 중 얼만큼을 사용하고 있는가? 중국의 몇몇 교회들은 새신자를 환영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지금 예수님은 볼 수 있는 새로운 두 눈, 들을 수 있는 새로운 두 귀, 도울 수 있는 새로운 두 손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하나의 심장을 가지셨다." 
우리가 교회라는 가족 공동체에 연결되어야 하는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실제적인 방법으로 다른 성도를 섬김으로써 우리가 부름 받은 목적을 이루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한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존 12:27). 교회에서 우리의 섬김을 요청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섬김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 각자에게는 해야 할 역할이 있고 그리고 각 역할을 모두 중요하다. 하찮은 섬김이라 없다. 모든 섬김이 다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역은 없다. 물론 어떤 사역들은 눈에 잘 드러나고 어떤 사역들은 보이지 않지만 모든 사역이 다 귀하다. 조그맣고, 보이지 않는 사역이 때때로 큰 역할을 감당한다. 우리 집에서 가장 중요한 전등은 거실에 있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아니라, 밤중에 자다가 일어났을 때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켜는 작은 정등이다. 크기와 가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사역이 중요하다. 
만약 우리 몸의 한 부분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몸이 아플 것이다. 몸의 다른 부분도 고통을 받는 것이다. 만약 우리 몸안의 간이 자신을 위해서만 봉사할 수 없어. 일 년 동안 먹기만 하고 푹 쉬고 싶어. 나에게 가장 좋은 일만 하겠어! 내가 할 일은 다른 기관에게 맡겨야지."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우리 몸은 죽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그들이 속한 교회에서 섬기지 않기 때문에 수천 교회가 죽어가고 있다. 경기장 밖에서 구경하는 사람같이 앉아만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라는 명령을 받았다. 
예수님은 이 문제에 대해 명백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서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크리스천에게 섬김이란 시간이 남으면 스케줄에 끼워 넣어서 하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섬김은 크리스천 삶의 핵심이다. 
예수님은 '섬기고' '주러' 오셨다. 그래서 이 두 동사가 우리가 지구상에서 살 동안 우리의 삶을 정의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섬기는 것과 주는 것은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네번째 목적이다.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는 이렇게 말했다. "거룩한 삶은 미소를 띠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안에 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성숙한다는 것이 성숙을 위한 성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성숙이랑 바로 사역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베풀기 위해 성장한다. 그러므로 계속 배우는 것으로만 끝나면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며, 믿는다고 주장하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표현되지 않는 느낌은 우리를 의기 소침하게 할 뿐이다. 섬김 없는 연구는 영적인 침체로 이끌 뿐이다. 예전부터 잘 알려진 갈릴리 호수와 사해의 비교는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갈릴리 호수는 물을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내보내기도 하기 때문에 생명력이 풍부한 장소로 남아 있지만, 사해는 밖으로 물을 내보내지 않고 받아들이기만 하기 때문에 아무 생물도 살지 못하는 죽은 호수가 되었다.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꼭 해야 하는 일 가운데 가장 마지막이 성경 공부에 참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그들이 실천에 옮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섬김의 경험을 통해 그들의 영적 근육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섬김은 인간적인 본능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는 섬기는 것보다 ‘섬김을 받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다른 사람을 섬기고 복을 베풀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어” 라고 말하지 않고 “나는 나의 필요를 채워주고 복을 받을 수 있는 교회를 찾고 있어” 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섬길 것을 기대하지 그 반대를 기대하기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성숙함에 따라 우리의 관심은 점차적으로 섬김의 삶을 사는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성숙한 사람은 “나의 필요를 누가 채워줄까” 라는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안고 “ 내가 누구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을까?” 라고 묻기 시작한다. 당신은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는가? 
영생을 준비하기 
자상에서의 삶이 끝나는 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잘 섬겼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을 평가하실 것이다. 성경을 말한다.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 14:12). 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보라. 언젠가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쓴 시간, 에너지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쓴 것을 비교하실 것이다. 그때 우리의 자기 중심적인 모든 변명은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저는 너무 바쁜 인생을 살았어요.” “일하느라, 즐기느라, 은퇴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이 모든 변명에 대해 하나님은 말씀하실 것이다. “그것은 틀린 답이다. 내가 너를 창조하였고, 구원하였고, 불렀으며, 섬김의 삶을 살라고 명령했는데 어떤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냐?” 성경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롬2:8). 또한 그것은 크리스천에게는 영원한 상급을 잃어버릴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도울 때만이 비로소 풍성한 삶을 누린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5, 참고 ? 마10:39, 16:25 눅 9:24, 17:33) 이 진리는 너무나 중요해서 복음서에서 다섯 번이나 언급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섬기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삶은 사역을 하도록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타적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배우기 원하신다. 
섬김과 의미 
우리는 우리의 삶을 무엇인가를 위해 내놓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될 것인가? 직장? 스포츠? 취미? 명성? 부? 그 어떤 것도 영원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섬김은 진정한 의미로 나아가는 통로다, 사역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은 말한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서로 섬길 때 우리의 삶은 영원한 중요성을 갖게 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몸은 한 지체 뿐이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고전 12:14, 19).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기 원하신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삶을 베풀며 사느냐이다. 얼마나 오래(how long)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how) 사느냐이다. 
지금 아무 사역이나 봉사를 하지 않고 있다면 어떤 핑계를 대면서 아무 봉사도 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노인이었고, 야곱은 불안한 상황에 있었으며, 레아는 예쁘지 않았고, 요셉은 매도되었으며, 모세는 말더듬이였고, 기드온은 가난하였으며, 삼손은 의존적이었고, 라합은 부도덕했으며, 다윗은 간음했을 뿐 아니라 온갖 가정 문제를 갖고 있었으며, 엘리야는 자살을 생각했었고, 요나는 마지못해 하는 사람이었으며, 나오미는 과부였고, 세례 요한은 괴팍한 행동의 소유자였으며, 베드로는 즉흥적이고 성격이 급한 불 같았으며, 마르다는 늘 걱정이 많았고, 사마리아 여인은 여러 차례 결혼 생활에 실패했으며, 삭개오는 사회에서 따돌림 당하였고, 도마는 의심이 많았으며, 바울은 건강의 문제가 있었고, 디모데는 마음이 연약했다. 그들 모두 다 여러 가지 실패와 약점은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하나님의 사역에 쓰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더 이상 핑계대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들어 쓰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