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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위해 일했던 이승만 대통령

Joyfule 2020. 5. 13. 18:08


유럽에 가면 거대한 성당건물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 이것은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인간의 손을 빌어 지은 걸작이다. 성베드로 성당, 톨레도 성당, 노테르담 성당, 쾰른 성당, 바르셀로나의 미완성인 聖가족성당(가우디 설계), 스트라스부르흐 성당 등은 최단 200년, 최장 800년이 걸려 지은 성당들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지은 성당에는 여러 건축양식이 다 들어 있다. 고딕, 로마네스크, 르네상스, 바로크 등등 여러 양식의 부분 부분들이 하나의 종합된 예술품으로 서 있으니 더 감동적인 것이다. 역사의 기복과 문화의 나이테를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오랜 성당들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골동품이나 구경거리로 거기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살아 있는 예배당으로 쓰인다. 유럽사람들은 역사속에서 그 역사를 호흡하면서 오늘을 살고 있다.

민주주의를 그러한 성당건물에 비교해본다.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그런 성당을 짓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더 많은 세월과 더 많은 시행착오와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 시대까지 거슬러오른다면 오늘의 서구식 민주주의 역사는 약2500년이나 된다. 1215년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까지 올라가도 약800년이다. 이 오랜 기간에 민주주의는 갈之를 그리면서 서서히 발전해왔다.

민주주의는 특권층의 것으로 출발했다. 귀족과 시민만이 누리던 민주주의가 평민과 여성, 그리고 흑인 등 소수민족에까지 확산된 것은 최근 100년 사이이다. 유럽에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이 확립된 것도 최근이다. 영국의 경우는 17세기말 명예혁명 이후이고 프랑스는 1871년 제3 공화국 이후이며, 독일은 1945년 이후이고, 前 동구공산권 나라들은 1989년 이후이다. 민주주의란 나무는 애국자와 독재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는데 무엇보다도 시간을 더 많이 먹고 자란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는 1948년8월15일 건국으로부터 출발한다. 민주주의는 국가라는 그릇이 없으면 담길 수 없는 보물이다. 국가 없는 민주주의란 종이위에 쓰여진 학설일 뿐이다. 李承晩 대통령은 미국과 유엔의 지원을 끌어내어 대한민국을 세우고 반역공산집단의 기습으로부터 이 신생아 같은 어린 나라를 구했다. 건국과 호국을 주도한 李承晩 대통령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의 첫장을 연 분이다. 우리가 그를 건국 대통령이라고 부를 때 그 의미는 국민국가를 세운 분, 즉 민주주의 건설 대통령이라는 뜻이다. 국민이 자유민주주의의 기치 아래서 정권을 선택하고 국회의원을 뽑는 국민국가를 출범시켰기 때문에 그 뒤 수많은 기복이 있었지만 우리는 민주주의 원칙이란 운전대를 놓지 않고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같은 시기 북한의 金日成은 소련이 써주는 시나리오대로 반역집단을 세워 남쪽의 정통국가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전통이 전무한 가장 척박한 토양에서, 그것도 생존의 위협속에서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키워내야 하는, 아니 살려내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 것이다.

李承晩, 이 분의 어느 시기 행태를 과장하여 그를 독재자로 모는 것만큼 가혹하고 배은망덕한 일은 없을 것이다. 李承晩 대통령을 독재자로 모는 이들의 논리적 근거는 그가 서구식의 완벽한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聖베드로 성당을 왜 10년만에 다 짓지 않고 수백년이 걸렸느냐고 욕하는 것과 같은 망발이다. 聖베드로 사원의 주춧돌을 놓는 역할을 맡은 건축가에게 왜 건물을 다 짓고 돔까지 올리지 않았느냐고 채찍질을 한다면 이는 이 건축가가 하나님이 못되었다고 욕하는 격이다. 李承晩 대통령이 하나님이 되지 못했다고 욕하는 자들은 이상하게도 하나님을 참칭한 金日成에 대해선 욕 한 마디 하지 않는다.

李承晩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朴正熙 대통령과 함께 민주주의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이분이 민주주의 건설에 악영향을 끼친 부분은 공에 비교하면 작다. 민주주의 건설은, 대성당을 짓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인데 李대통령은 그 기초공사를 한 분이다.


그는 우선 자유진영 편에 이 나라를 줄세웠다. 李박사와 미국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한국은 공산주의 세상이 되어 1990년대엔 북한처럼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을 것이다. 자유진영은 선진국이다. 후진국이었던 한국은 선진국으로부터 민주주의 하는 방법과 시장경제 하는 방법과 군대를 운영하는 방법과 과학기술을 배웠다. 반면, 북한의 김일성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악질적이고 무능한 나라의 정권들과 친구가 되어 거짓말하고 학살하며 독재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것이 남북한의 오늘날 차이를 불렀다.

후진국이 민주주의를 하려면 우선 농사짓지 않는 특권계급으로서의 地主를 없애는 농지개혁을 해야 한다. 이것이 되지 않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하면 地主는 수구기득권세력이 되고 농민들은 불만세력이 된다. 여기에 공산주의나 이슬람 원리주의가 파고들어가면 항구적인 체제갈등이 생긴다. 南美의 대부분, 필리핀, 그리고 파키스탄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李承晩 대통령은 지주출신 정치세력의 반발을 꺾고서 6.25 남침 직전에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만약 6.25 남침 때 남한의 대부분을 점령한 북한군이 지주로부터 농토를 빼앗아 소작농에게 나눠주었다면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할 때 이들은 농토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북한군 편에 서서 국군에 대항해 싸웠을 것이다. 농지개혁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놓았을 뿐 아니라 민주한국을 지켜냈다.

李承晩 대통령은 6.25 휴전과정에서 미국을 협박하다시피해가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었다. 이에 근거한 한미군사동맹은 지금까지도 한반도의 평화, 한국의 안전과 번영을 보장해준 울타리요 우산 역할을 하고 있다. 韓美동맹은 또 미국이 깔아놓은 세계의 무대에 한국인이 등장하여 수출도 하고 투자도 하며 이민도 갈 수 있는 활동공간을 제공했다. 한국인은 자유진영의 지도국인 미국의 血盟이란 보증하에서 세계로 진출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는 안보가 불안하면 절대로 필 수 없는 꽃이다. 한미동맹을 만든 李대통령은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그 울타리와 우산을 만든 것이다. 이런 분을 독재자라고 부르고 한미동맹을 와해시키려는 戰犯세력을 평화, 민족세력이라고 부르는 작금의 한국내 좌파세력이야말로 민주주의 파괴세력이다.

민주주의는 교육받고 먹고 살 재산이 있는 중산층이 적어도 국민의 반 이상이 될 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李대통령은 전쟁중에도 교육을 중단하지 않았고 대학생에게는 현역복무를 면제해주면서까지 人材육성에 주력했다. 더구나 그가 가르친 것은 독재에 순응하라는 가짜 주체사상이 아니라 독재에 항거하라는 민주주의 윤리였다. 이 교육을 李정권 때 받았던 학생들이 1960년 4.19 학생의거의 주력이 되었다. 이 세상에 자신을 타도하라고 가르치는 독재자도 있는가.


더구나 李대통령은 학생들이 시위진압에 희생되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물러났다. 4.19 때 학생들은 선거를 다시 하자고 했지 "이승만 물러나라"는 구호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퇴진요구도 없는데 스스로 평화적으로 물러난 사람은 독재자가 아니다.

李承晩 대통령이 발췌개헌, 3선개헌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은 사실이다. 그의 집권 시절 경찰과 특무대가 야당을 탄압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李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 선거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파괴, 봉쇄하려 하지는 않았다. 6.25 남침을 당해서 전쟁중인 나라에서도 국회는 활동했고 대통령을 몰아내려고 했으며 언론은 군대와 정권의 비리를 폭로했고 선거도 중단되지 않았다.

李대통령은 좌익들까지 지도자로 모시려고 했던 위대한 독립투사였다. 그는 초대내각에서 친일파를 한 명도 쓰지 않았다(반면 김일성은 자신의 편에 선 친일파를 비호했다. 그의 동생 金英柱는 日軍의 통역을 한 사람인데도 제2인자가 되었다). 李대통령이 일제 때의 경찰관과 공무원들을 중용한 것은 일본을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일제 때 국가운영에 참여하여 배운 기술을 가지고 조국을 위해 쓰도록 했던 것이다. 일제 경찰관 출신들이 李정권의 수사기관에 들어가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만드는 고문수사를 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일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한국 수사관들의 과잉충성과 법치무시 체질 때문이지 李박사에게 모든 책임을 씌울 수는 없을 것이다. 관리가 백성들을 뜯어먹고 사는 것이 전통처럼 되었던 조선조 관료의 체질과 일제의 탄압체질을 지도자 한 사람의 책임으로써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순진하고 낭만적으로 보는 분들이다.

이렇게 본다면 李대통령이 민주주의의 간판을 걸고 북한과 생존투쟁을 하면서도 그 원칙을 고수해가려고 苦鬪한 데 우선 감사를 드리고 그분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이 옳은 태도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일한 부분이 90%라면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한 부분은 10%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80%의 긍정이 남지 않은가. 그런 분을 독재자라고 불러 그분의 모든 업적을 말 한 마디로 무효화시키려 드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 전체에 대한 모독이자 역사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건국, 호국의 시대가 독재자의 시대였단 말인가. 그 시대의 국민들은 독재자에게 모두 굴종하였단 말인가. 아니면 독재자 한 사람의 잘못을 국민들이 다 잘해서 나라가 이렇게 발전했단 말인가. 李대통령 시대는 나라를 세우고 나라를 지켜냈을 뿐 아니라 그 뒤 朴대통령이 성공적으로 나라를 근대화시킬 수 있는 울타리와 바탕과 우산을 마련했던 고난의 시절이자 영광의 시대였다. 이 시대의 功過는 대통령과 국민들이 나눠가져야 한다. 功의 가장 큰 부분과 過의 가장 큰 부분은 물론 李박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