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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통령 대한 예우가 이래서야...?

Joyfule 2020. 5. 13. 18:10


건국대통령 대한 예우가 이래서야...?
 
김유혁
지난 7월19일,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제43주기 추모식이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동작동)에서 거행되었다.

비가 내리는 아침이었다. 그러나 200여 명의 각계 인사들이 그 식전(式典)에 참례했다. 10시 정각에 강영훈 사업회장의 개회사로 추모행사는 시작되었다. 기도, 성경봉독, 설교, 고인의 말씀, 추모사, 분향, 유족인사, 찬송, 축도의 순서에 따라 추모식은 1시간여에 끝났다.

밖에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가뭄을 적시어주는 단비(甘雨)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고인이 느끼는 섭섭함이 담긴 하늘의 눈물이라 할지…? 우산으로 하늘을 가리고 비 내리는 한강 연도를 거니는 나의 마음은 착잡했다. 

이승만 박사는 대한민국을 건립한 건국 대통령이며 동시에 초대대통령이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의 삶을, 자유민주주의 가치 지향적 문화풍토 위에서 영위할 수 있게끔 한 정신적 지도자며 확고한 반공기조의 이념지도자였다. 그리고 평화구현을 추구하기 위한 그의 외교능력은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보국호민(保國豪民)하는 길을 열었으니 그것이 6.25 동란 이후 오늘에 이어지는 확고한 한·미 혈맹관계의 유지이다. 

어떤 이들은 6.25 전쟁 중 한강교 폭파문제를 거론하면서 그를 깎아내리려 한다.

당시의 전황(戰況)은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는 불가항력의 열세이었다는 점과 대국적 전투전략 면에서 긴급히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작전상의 정황을 고려한다면 그에 대한 당부당(當不當) 문제는 더 깊이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나는 약 30년여 전에 우연히 이승만 박사의 시집 체역집(替役集)과 안중근(安重根)의사의 옥중자전(獄中自傳/漢文), 그리고 김규식(金奎植) 박사의 장문의 영시(英詩)인 양자유격(楊子幽景)을 입수하게 되었다. 

  특히 체역집은 상. 하편으로 된 한시집(漢詩集)이다. 많은 감동을 주는 글들이 실려 있었다. 그 밖에 독립지사의 인출문건(親述文件)으로는 김규식 박사의 양자유경(楊子幽景: The Lure of the Yangtze)과 안중근 의사의 옥중자전 등이 있는데 참으로 소중한 유문집(遺文集)이다. 수시로 들추어보지만 그것은 나의 궤변서(机邊書)의 일종으로 되어 있다.

  월여 전에도 이승만 박사의 체 역 집에 실린 팔조 시(八條詩)를 통해서 그의 경세철학(經世哲學)을 세상에 알린 일이 있거니와 오늘 여기에서 다시 한번 그의 종교관을 엿볼 수 있는 시귀(詩句)를 소개하고자 한다(체역집 有髮僧 詩 참조).

물외관심귀적멸 (物外觀心歸寂滅)  사물 밖에서 마음을 보니 적멸로 돌아가고
정중멱도각허무 (靜中覓道覺虛無) 고요한 가운데 도를 찾아 허무를 깨닫는다.

심선막향산문거 (尋禪莫向山門去)  선승 찾기 위해 산사를 향해서 가지 말라
진계환간태백호 (塵界還看太白胡)  속세에서도 도리어 큰 도인을 볼 수 있다.

  이 시는 사율(四律)로 되어 있는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편의상 제3 제4 句만을 인용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적멸(寂滅)은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부처의 생활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며, 허무(虛無)는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승만 박사는 말하기를, 불가 또는 도가의 스승을 찾아서 입산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 못지않은 큰 도사와 큰 선승(太白胡)을 속세(塵界)에서도 만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이승만 박사께서 신앙의 세계를 폭넓게, 그리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귀띔해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떠한 종교를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개인적 자유에 속한다.

그러나 특정종교를 생활화한다면 그런 생활인을 일컬어 종교인이라 말한다.
이승만 박사는 신앙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종교 자체를 생활 전부로 여기면서 살아간 것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그는 특정 종교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국정을 종교적 기조 위에서 이끌어갔던 것은 더욱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다.

왜냐하면, 기독교 천주교 불교 도교 등을 비롯한 그 밖의 모든 종교인을 포함한 국민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유학을 유교개념으로 이야기하는 이도 있지만 유학에서는 공자를 스승의 개념으로 존경할 뿐, 무소불능의 신과 같은 절대적 존재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고 유학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다른 나라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국부개념(國父槪念)의 초대 대통령이요, 건국대통령이라고 존경하고 있는 나로서는 지나 7월 19일, 제43주기 추모식장에서 다음 몇 가지 점에 대하여 느낀 바 있고 또한 이래서는 안 된다는 충격을 받았기에 소회(所懷)의 일단을 토해 놓는 바이다. 

  첫째, 서두에서 추모식 식순을 소개한 바와 있거니와 건국대통령 추모식을 어째서 기독교 종교의식 일색으로 거행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기독교 관계자 이외에 추모식 집전에 참여한 타 종교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주최 측의 깊은 속내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기도 식순에 따라 등단한 모 목사는 제일성이 “우남(雩南: 이승만 박사 아호)은 기독교 국가건설의 초대대통령” 운운하는 말로 이어가는 기도연설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느꼈다. 만약 그런 논리라면 다른 종교인들의 입장은 어떻게 정리해야 할는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셋째, 다섯 번째 식순에서는 고인의 말씀을 녹음 육성으로 드는 차례였다. 그 녹음육성은 1942년 6월 13일 자유의 소리 방송을 통해서, 일제 굴레 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국내외 동포에게 전하는 애절한 내용의 방송이었다. 몇 번을 되풀이해서 들어봐도 싫증 나지 않는 호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승만 박사께서 방송 연설 중, 단 한 마디도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주님의 은총” 등등의 용어를 쓴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생각해보았을 때, 건국 대통령에 의해서 이 땅에 기독교 국가가 건설되었다는 논리는 보편성을 지닐 수 없다. 따라서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넷째, 추모식장 입구와 단상에 진열된 추모 화환을 살펴보고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다른 행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주인공들의 화환이 눈에 보이질 안 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방식으로 추모의 뜻이 전달되었는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 이회창 총재, 보훈처장의 화환만이 눈에 띠었다.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 한나라당을 위시한 각 정당 대표들의 추모화환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내면의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들로부터 철저히 소원(疎遠) 당해야 할 건국대통령이란 말인가? 이렇게 예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땅 위에는 생존 중인 전직대통령이 여러분 있다.

후 순위 대통령이라는 입장에서 초대 건국 대통령 영전에 추모의 화환 봉정하는 것이 왜 어려운 일인지는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분들의 화환이 눈에 안 보이니까 고인보다는 생존자들의 영상이 더 초췌(憔悴)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지도자를 막론하고 국민화합을 외치지 않았던 이는 없었다.
그러나 건국대통령 추모 제전에서는 국민화합을 외쳤던 그러한 일체의 마음의 메아리조차 감지할 수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어떤 이유에서도 초대 건국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이래서는 안 될 것이다.

恒山· 김유혁 박사 / 전 금강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