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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은 이승만의 이상이 실현된 것

Joyfule 2020. 5. 13. 18:04
한미동맹은 이승만의 이상이 실현된 것
한미동맹을 통해서 우리는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필생의 이상과 숙원과 집념을 볼 수 있다.
 

정창인 자유통일포럼 대표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미동맹은 6.25사변을 직접적인 계기로 해서 성립되었지만 사실은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오랜 개인적 이상(理想)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승만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미동맹은 애당초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미동맹은 이승만의 필생의 숙원이었다.

한미동맹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승만이라는 한 개인의 일생을 통한 집념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아직 단언할 수는 없으나 한일합방을 전후한 시기부터 대한민국이 건국되는 그 시기까지 독립운동을 한 그 누구도 한미동맹을 구상한 지도자는 없었다. 오직 이승만만이 한일합방이 되기 전부터 미국을 우방으로 끌어들이는 것 외에는 우리의 독립과 자유를 지킬 방도가 없음을 깊이 깨닫고 그 때부터 미국을 친구로 끌어 들이기 위해 집념을 가지고 이를 추진했다.

이승만은 일찍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겪으면서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없는 국가는 오직 미국이란 것을 깨닫고 미국에 의지하여 우리의 독립과 자유를 보전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미동맹이야말로 이승만의 이상이었으며 그의 숙원이었으며 그의 집념이 되었다. 그는 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으며 수많은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이 이상을 지켜 결국 한미동맹을 성취시켰다. 따라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또 한미동맹이 존재하는 것은 순전히 이승만의 개인적 집념의 결과였다고 말하여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일본이 조선을 보호령으로 만들기 위해 고종을 협박하고 있던 때, 갓 출옥한 이승만은 민영환과 한규설을 만나 그들도 자신처럼 사태의 흐름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조선 안에서는 일본의 야욕에 제동을 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승만처럼 1882년의 조미수호조약(朝美修好條約)에 의거해서 미국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민영환과 한규설에게 조미수호조약의 상호방위 조항을 발동시킬 것을 호소하기 위해 자신이 미국을 방문하도록 설득하였다. 그래서 민영환 등은 이승만의 미국파견을 결정하고 이승만은 1904년 11월 4일 한양을 떠나 미국으로 간다.

1882년에 체결된 조미수호조약의 제1조는 수호조항으로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느 한 쪽 국가에 대해서 타 국가가 불의 또는 탄압적으로 대할 때 이에 사건발생의 통보를 받으면 수호적인 중재권을 행사함으로써 우호정신을 발휘한다.”

이승만이 당시 믿었던 것은 단지 이 조항 하나뿐이었다. 이 조약의 정신에 입각하여 미국이 우호적으로 당시 조선(한국)문제에 개입하여 일본의 부당한 국권침탈을 막아 주기를 기대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 조선이 믿을 수 있는 방패는 오직 이 한 조항뿐이었다. 말하자면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하지만 그 당시 힘없는 조선의 입장에서는 이 수호조약의 한 조항이 그야말로 조선이 기댈 유일한 지푸라기였다. 이승만의 미국의 우호적 중재에 대한 기대는 이후 평생 그의 이상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미국은 그 당시 이미 조선을 버렸다. 이승만은 『일본, 그 가면의 실체』(Japan Inside Out)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조약이 체결된지 불과 23년 후인 1905년에 미국은 이 조약에 의거하여 중재권을 행사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한국(조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성한 국제간의 공약을 공공연히 위반하면서까지 불의와 ‘강압적’으로 한국을 침탈하는 일본의 야욕을 채워주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세계의 큰 전쟁을 유발시키는 불씨가 되었다.”

이승만은 미국에 대한 배신감을 전혀 표현하지 않고 중립적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미국의 배신은 절망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승만이 미국에 대한 배신감을 표현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어찌되었건 미국의 우호적인 중재 없이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보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승만의 미국에 대한 기대는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절대적 명제였으며 그것이 그의 이상이요 숙원이요 집념이 되었다.

1905년 10월에 고종황제는 미국인 호머 헐버트를 미국에 친서를 전달하도록 특사로 파견하였으나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루트 국무장관은 그를 만나주지 않는다. 후일 그가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에 제출한 성명서의 끝 부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그러나 바로 그날, 미국정부는 전달하지 못한 친서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면서 조선에는 한마디 통보도 없이 조선정부와 국민 모두가 만족한다는 일본정부의 일방적인 성명서를 수락하고 공사관 철수와 조선정부와의 교신 단절을 훈령한 후 이튿날 본인과의 면담을 허락했다.” (올리버의 『신화에 가려진 인물 이승만』.)

물론 그에 앞서 이승만은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난다. 이승만은 1905년 7월 6일(?) 태프트 육군 장관의 소개장을 가지고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난다. 그러나 루즈벨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귀국을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건 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청원서가 공식 채널을 통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 내게 회담에 개입할 권한은 없지만 이 문서가 귀국 공사관을 통해 전달된다면 즉시 평화회담에 제출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공허한 약속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은 이미 한국을 버리기로 방침을 정했고 7월 29일에 태프트 육군 장관은 일본을 방문해 태프트.카츠라 비밀 협정에 서명한다. 더구나 워싱턴의 한국 공사관에서 이승만의 청원서를 공식적으로 제출하기를 거부하여 청원서조차 공식으로 제출하지 못했다. 한국 공사도 일본 공사관과 비밀히 내통하여 이승만을 배신하였던 것이다.

이후 이승만은 끊임없이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수많은 배신과 좌절과 핍박을 겪으면서도 그 이상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그 이상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 것은 그 길 외에 달리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보장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승만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미국에 대한 희망을 지킬 수 있었던 내면적 힘은 그의 기독교 신앙에서 나왔다. 우리들을 자유케 하려는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어쩌면 미국에 대한 희망도 일찍이 접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기독교 신앙과 미국에 대한 희망이 연결되어 있음은 그의 유언이 성경 갈라디아서 5장 1절이었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다시는 종의 멍에를 지지 않을 방편으로 생각한 것이 미국의 지원이었던 것이다.

지금 한미동맹은 오직 북한의 군사적 모험을 억제하기 위한 장치로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지 모르나 이승만이 생각한 한미동맹은 그 보다 훨씬 더 원대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6.25사변 당시의 긴급한 목적은 소련이 앞세운 북한 공산 정권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그 목적은 더 크다.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가진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에 대한 방패로서 미국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이승만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혹시 북한 정권만 제거된다면 미국의 도움은 필요 없을 것으로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런지도 모르나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주변 강대국의 영토적 야망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은 영원히 지켜야 한다.

이승만은 6.25사변이 터지기 전부터도 미국의 한국군 무장도 요구하였지만 더 간절히 원한 것은 안보협약이었다. 6.25사변이 발생하자 이승만은 주저 없이 군 작전권을 유엔군에 넘긴다. 사실은 유엔군 사령관이 된 맥아더 장군에게 넘긴 것이다. 이 행위는 어떻게 하든 미국을 끌어 들이려는 이승만의 오랜 이상과 집념에 비추어서 해석하여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상과 집념의 결과 1953년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게 된 것이다. 한미동맹은 단순히 6.25사변을 계기로 성립된 것이 아니라 청일, 러일 전쟁을 겪으면서 이승만이 가지게 필생의 숙원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승만의 독립과 자유를 보전할 이상적 구도가 성취된 것이다. 한미동맹을 통해서 우리는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필생의 이상과 숙원과 집념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