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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 정목일

Joyfule 2012. 8. 7. 12:21

 

 

바늘 - 정목일

바늘은 느낌표 같다.
간단하고 명료하다. 몸에는 귀 하나 뿐이다.
바늘의 귀를 통하려면 눈이 밝아야 한다
실 끝을 가다듬어 정신을 모으고 귀 속으로 들이밀어 뽑아내야 한다.
옛 어머니들은 바늘귀로 세상을 보며 한 평생을 보냈다. 바늘귀로 세상 보는 법을 터득했다.
우리 어머니는 밤이면 곧잘 바느질을 하셨다. 중학생이었던 어느 날이었다.
동무 집에 놀다가 자정이 가까울 무렵에 고양이처럼 살그머니 집으로 돌아와,
몰래 방문을 열고 이불 속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보름달빛 젖은 한지 방문 속에 바느질하시는 어머니의 그림자가 비쳐져 있었다.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달빛을 밟고 방으로 다가갔다.
"석이냐?" 어머니가 방문도 열지 않은 채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놀라면서 "예."하고 한참이나 마당에 서 있었다.
달빛 속에 내 그림자가 파르르 떨고 있었다.
어머니는 바늘귀로 달빛을 밟고 오는 내 발자국 소릴 듣고 있었던 것일까.
바늘은 날카롭고 뾰족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다.
옷을 지어낼 때에 바느질 솜씨에 따라 모양과 멋이 달라진다.
여인들은 바늘로 옷을 만들고 수틀에 자수를 놓으며 사랑과 행복을 꿈꾸었다.
바늘이란 벗이 있어서 외로운 밤을 보내고, 시름을 달랠 수 있었다.
바늘은 덕이 높다. 찢어지고 갈라진 옷을 기워서 편안하게 해준다.
바늘은 격을 지녔다. 바느질 솜씨에 따라 옷의 품격이 달라진다.
시간과 정성을 들인 옷은 온화하고 기품이 있다.
바늘은 예를 지녔다. 예민하고 풍부한 감수성을 가졌다
한 벌의 옷, 자수병풍을 보면 바늘의 무궁무진한 감성과 미의식을 느낀다.
옛 여인들은 수틀 앞에 앉아 바늘을 쥐면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되었다.
가슴에 맺힌 한과 그리움과 행복에 대한 소망을 자수라는 표현 양식으로 빚어냈다.
여인들이 수를 놓을 때야말로 가장 행복을 느끼던 순간이었다.
아름다운 색실로 화조,산수등을 수놓아 갈 때, 고단함도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어버렸다.
바늘의 예술, 여인들만의 예술인 자수로 수놓는 미의 세계는 마음을 향기롭게 물들여 놓았다.
바늘은 의술의 도구이기도 하다. 바늘이 없다면 의사들은 어떻게 수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치유하게 하는 자비를 지녔다.
아이가 갑자기 경기가 들어 입술이 푸르게 변하고 바르르 떨 때,
할머니는 놀라지 않고 바늘을 사용하여 손끝을 찔러 피를 내는 것으로,
간단히 위기를 모면해 낸다.
바늘의 위력과 용도에 고마움과 놀라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바늘은 군더더기가 없다. 단순하고 첨예하다. 인간의 감성과 이성을 자극하고 촉발시킨다.
치유와 희생의 상징이며,미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예순이 돼가는 아내는 바늘을 꿰지 못한다고 도움을 청하곤 한다.
정신을 모으고 실 끝을 바늘귀 속으로 밀어 넣는다.
실 끄트머리가 귓속을 관통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
요즘엔 바느질 할 일이 없어서 바늘과 가까이 하지 않는다.
바늘의 귀와 눈을 맞추려 애써도 잘 되지 않는다.
바늘귀를 보면서 없는 눈을 본다. 귀만 있는 게 아니고 마음을 보아야 한다.
바늘은 가장 단순하지만 쓸모가 많다. 세월이 흘러도 변질되거나 노쇠하지 않는다.
바늘 같은 인생이면 제 몫을 한 삶이 아닐까.

어떻게 최소의 몸으로 최대의 성과를 얻는 존재가 되었을까.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을까.
생명을 구하고 희생시키는 힘을 가졌을까.
귀 하나를 가지고 어떻게 밝게 의미 있게 볼 수 있을까.
귀 하나를 밝히기 위해 평생을 단련하는 마음의 연금술사를 생각한다.
바늘은 큰 느낌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