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해한 사나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도월화
이탈리아의 천재 화가, 미켈란젤로의 생일은 3월6일이다. 근래에 내가 그 날짜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미켈란젤로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컴퓨터에 숨어 있다가 매년 3월6일만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기록을 파괴하는 바이러스이다. 왜 하필이면 디데이가 미켈란젤로의 생일날일까. 어쩌면 평소에는 조용히 제작에만 매달리다가 수틀리면 '한 성격하는' 미켈란젤로를 3월6일만 성질내는 컴퓨터바이러스에 빗대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청소년 시절 마사초의 벽화 앞에서 동료와 논쟁 중 코뼈가 부러진 일화가 있는가 하면, 작품에 간섭하고 성가시게 하던 추기경은 그의 그림 속 지옥에 빠트려 영원히 벌 받게 만들어 버렸다니 못 말릴 고집이 아닌가. '영묘의 비극'* 이라 일컫는 사건으로 미켈란젤로가 교황을 찾았을 때 시간을 내주지 않자 로마를 떠나 고향 피렌체로 가 다른 작업에 매달렸고, 교황이 나중에 찾자 자기도 시간이 없다고 했다던가.
미켈란젤로는 다시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불려가 볼로냐에서 화해하고, 1508년 바티칸 궁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의뢰받았다. 일은 잘 진척되지 않았고 보수도 잘 지불되지 않는데, 형제들로부터는 금전을 강요당했다. 여러 악조건 하에서 1512년 마침내 <천지 창조>를 완성하였다. 절약하고 저축하여 아버지, 형제, 조카를 돕던 그가 오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 전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와 로마를 먹여살리는 게 아니던가. 중국의 관광 수입의 원천이라는 만리장성이 변방 이민족의 희생을 담보로 했다면, 로마의 문화재는 소수의 귀재에게서 기인된다는 말이 있듯이 그의 카리스마는 초인적이다.
<천지 창조>는 바티칸 궁 시스티나성당 천장의 세계 최대의 벽화이다. 몇 해 전 로마 여행가서 그곳에 갔을 때 쳐다보기가 벅차서 눈을 감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웅대함에 나는 너무 놀라 넋이 빠져나가는 줄 알았다. 베토벤의 웅장한 음악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듯한 감동도 한참 진정한 후에야 느껴졌다. 이러한 대작을 그려낸 원동력은 무엇일까. 명예도 돈도, 그런 거 보고는 도저히 이루어 내기가 불가능할 업적으로 보였다. 고집이나 성질로 밀어붙여서 이루어질 일도 더 더욱 아니다. 코뼈가 부러진 일로 인한 콤플렉스로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는 말이 있지만, 나의 느낌으로는 그가 남긴 위대한 작품들을 볼 때 결혼이나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을 것만 같다. 그는 결코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대로 편협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의 세계는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깊고 드넓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 불가해한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는 그 장대한 성당 천장화를 어떻게 혼자의 힘으로 그릴 수 있었을까. <천지 창조>를 그릴 때, 하루에 몇 시간씩이나 작업했을까. 휴일은 있었을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그렸을까, 다른 기구를 이용했을까. 무려 4년이 넘게 방대한 공간에 홀로 매달려 무섭지는 않았을까. 얼마나 적막하고 외로웠을까. 생각할수록 불가사의하다. 그 같은 예술혼은 대체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흔히 말하는 신앙심 하나에서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가해(不可解)하기만 하다.
자료를 찾아보며 그의 작업 모습을 상상해본다. 미켈란젤로는 비계*에 거의 누운 자세로 목과 어깨를 조금 들어 올리고 물감을 듬뿍 찍은 붓을 천장에 대었다. 얼굴에 물감이 뚝뚝 떨어진다. 얼마 그리지 않았는데 벌써 목과 팔이 아프다. 허리와 다리까지 뻐근해온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 시력을 위협한다. 오, 신이여 도우소서. 지켜주소서. 당신께 영광 돌리오리다. 사방을 둘러봐도 넓디넓은 방에 아무도 없다. 바닥까지 까마득한 천장에 홀로이다. 누가 있으면 몰두하지 못하고 상상력을 방해받아 그릴 수가 없다. 순간순간이 혼자만의 선택이다. 입구 쪽에서부터 노아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아담과 이브의 원죄와 낙원추방에 대해 그렸다. 신이 아담을 창조하는 장면은 어떻게 나타낼까. 집게손가락을 마주 대게 그린다. 하늘과 물의 분리, 달과 해의 창조, 빛과 어둠의 창조를 성서와는 반대 순서로 그려 나갔다. 4년여의 세월이 흘러 <천지 창조>가 완성되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과연 제가 해낸 것입니까.
그즈음 가족에게 보낸 서신에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화를 그리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결국 그는 30대의 나이에 목 통증을 지니고 살았다. 하늘이 알고 내가 아는 내면적 동기를 '미켈란젤로 동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높은 천장의 구석까지 누가 세밀하게 보겠느냐는 친구의 말에 미켈란젤로는 "내가 안다네." 라고 했단다.
플라톤주의자로 금욕적인 기독교도인* 미켈란젤로는 이제 육십 대에 이르렀다. <천지 창조> 아래 정면 벽에 교황 바오로 3세의 위촉으로 <최후의 심판>을 그리게 된다. 5~6년 간 그리는 동안 비계에서 추락해 다리에 심한 중상을 입고 거의 목숨을 잃을 뻔도 했다. 이 벽화는 한 팔을 든 심판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천상과 지옥의 세계가 전개되고 있다. 자그마치 2백 평방의 벽에 391인의 인물이 그려졌다. 단테의 <신곡>이 문자로 쓰인 것인데 비해, 회화로 최후의 심판도를 그린 것이다. 그는 <최후의 심판> 중간부분 우측 아래의 바르톨로메오 성인의 벗겨진 피부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전설에 의하면 바르톨로메오 성인은 산 채로 살갗이 벗겨지는 형벌을 당한 순교자이다. 그가 가는 예술의 길이 고달팠기에, 그렇게 작가의 고통을 표현하려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천국에 들고 싶었던 게다. <최후의 심판>에서 벗겨진 피부로나마 천상세계에 붙어 있게 그리며 영원한 본향을 갈망한 것은 아니었을까. 대조적으로 당시 그의 작품을 혹평하며 괴롭혔던 교황의 의전관 '비아지오 다 체세나'는 뱀에 감긴 채 지옥의 맨 아래에 둔 것은 미켈란젤로다운 보복이라 하겠다. 예술은 바로 미켈란젤로의 천국이고 지옥이었던 것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3.6 ~ 1564.2.18)는 이탈리아 카프레세 출생이나 그곳에서 한 달도 채 머물지 않았고, 진정한 그의 고향은 피렌체(플로렌스)이다. 로마에서 죽었고, 지금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 안치되어있다. 그는 13살 때 양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피렌체의 화가, 기를란다요 문하에서 도제수업을 받았고 프레스코벽화의 확고한 기초를 쌓았다. 이듬해 당시 피렌체시의 권력자이며, 르네상스 운동을 일으킨 메디치가가 세운, 조각학교에서 도나텔로 제자인 베르톨도로부터 조각도 배운다. 미켈란젤로는 화가, 조각가이며 건축가였고, 시인이자 디자이너였다. <최후의 심판> 벽화를 그릴 때는 아예 벽의 기울기를 위로 갈수록 앞으로 경사지게해서 원근법 사용을 대신하며, 먼지로부터 작품을 보호하기도 하는 독창적인 기법을 썼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연스러운 조각을 하기 위해 해부학까지 공부했다.
똑같이 만든 작품이지만 원작은 가슴이 뛰고, 복제한 것은 봐도 두근거리지 않는 것으로, 진품을 가릴 수 있다고 하는 말이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내가 로마 여행 갔을 때 피아차 델라 시뇨리아에 있는 복제한 <다비드 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던 생각이 난다. <다비드 상>은 미켈란젤로가 1501~1504년에 조각하여 종교적 압제자에 대한 시민의 승리의 상징으로 피렌체 시청사 입구에 세워졌다. 현재는 복제품이 놓여있다. 보존상의 이유로 원작품은 피렌체 아카데미 건물 안에 옮겨졌다. 옛날 피렌체인들이 모여 토론을 벌이던, 시청사 앞 광장은 오늘날도 관광객으로 학교 운동회 날 같이 붐빈다. 사진 찍는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 볼 수 없다. 나는 이리저리 밀려다니며 <다비드 상>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았다. 사진으로는 머리 부분이 큰데, 실제로 눈높이에서 위로 쳐다보니, 원근법의 원리로 인해 작게 보여서 균형을 이룬다. 그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계산해서 작품을 만들었다니, 천재적인 미켈란젤로에게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비드 상>을 보니 순수와 자유라는 말이 떠올랐다. 다비드는 구약성서 사무엘 상 17장에 나오는, 거인 골리앗을 돌팔매로 쓰러뜨린 소년 영웅 다윗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제2대 왕으로 시편의 대부분은 다윗이 지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골리앗을 노려보는 강렬한 눈빛에, 돌을 잡고 막 던지려는 순간의 모습이 건장하게 표현되어 있다. 왼발은 조금 앞으로 내딛고, 체중을 실은 오른 쪽 다리에는 수직으로 들어난 힘줄이 단단하다. 푸른 초원을 거칠 것 없이 달리는 준마의 분위기가 뿜어져 나온다고나 할까. 미켈란젤로의 조각품, 청년 다윗은 지순한 아름다움으로 푸르렀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는데도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보다 스스럼없어 보인다. 이보다 더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자신을 화가보다는 조각가로 여겼다고 한다. 그의 조각상을 보고 놀라워하는 사람에게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 형상은 처음부터 암석 속에 있었죠. 나는 단지 불필요한 부분들만 깎아냈을 뿐입니다."
이는 창조주가 놀라운 우주적 원리와 자연의 질서를 만물에 숨겨 놓은, 무언가 평범한 사람에게는 불가해한 신의 코드를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이 알아본 것이 아니겠는가. 그가 ‘한 성격하는’ 것은 신이 처음부터 갖추어 둔 자연스러움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것을 참을 수 없을 때가 아닐까. 평소에는 컴퓨터에 숨어 있다가 3월6일만 데이터를 파괴하는 미켈란젤로바이러스는 그날만 수틀리고 성질나도록 프로그램 입력을 해 놓은 것이다. 주위의 어떤 이가 공연히 성질부리더라도 다툴 일이 아닐 수 있다. 그에게는 휴식과 위안이 필요하다고 입력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http://ssopia7.kll.co.kr
註
*비계
飛階,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
*'영묘의 비극'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 (250 p - 251 p )
조반니파피니 저 | 정진국 역 | 글항아리 2008.12.03 |
*참조(미켈란젤로는 플라톤주의자로 금욕적인 기독교도인*이므로 세간에 알려진 소문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2 (292 p - 299 p )
조반니파피니 저 | 정진국 역 | 글항아리 2008.12.03 |
* 한국수필 (2010. 4월 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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