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바람아, 너는 알고 있잖아 - 남몽해

Joyfule 2015. 5. 27. 10:41

 

 

 월간 신춘문예 당선수필

 

종류별로 강아지다 있어요★클릭★ 바람아, 너는 알고 있잖아 - 남몽해

 

 

야아! 많이도 내렸구나. 나지막하게 고개 숙인 어린 단풍나무 좀 봐. 연산홍도 그리고 주목도 저기 살구나무도 저마다 이고 있는 그 모습이 퍽이나 힘에 겨운가봐! 축 처져 있네, 가지가지 사이에 눈꽃이 숨어들어 수줍다는 듯, 온통 하얗게 덮어 쓰고선 숨죽이고 있는 것 봐. 빨간색, 초록색, 노랑색, 원색의 집들도 모두 새하얀 고깔모자를 쓰고 말이야. 사이사이의 나무들도 흰 옷을 입고 으스대고 있네. 모두들 조용히 파묻혀 있으면서….

새들도 유난히 좋은 듯 노래를 그치질 않는구나. 흰동이네 작은 집 좀 봐. 저기도 소복이들 앉아있네. 겨울이라고 보기에는 믿겨지지 않는 아주 포근한 아침 햇빛이 마구 쏟아져 쫙 깔려있네. 눈이 부신다. 너무나 황홀하다. 심호흡과 기지개를 펴보며 소리도 마음껏 질러본다. 신나게 휘파람을 불며 눈삽으로 길을 한창 내는데 아이쿠! 다 탔겠다. 황급히 뛰어 들어가 벽난로에 구워진 고구마를 조심스레 하나 끄집어내어 살그머니 은박지를 벗기니 와아! 너무나 잘 익었네.

 

 그 때다. 무슨 일일까? 우리 집에는 조그마한 발발이가 있는데 그 이름은 흰동이라고 부른다. 한적한 시골이라 좀처럼 흰동이가 짖는 소리가 드문 편인데 흰동이가 짖는 동시에 낯선 큰 개의 짖는 소리가 커엉 커엉 들리는 것이 아닌가. 나가보니 아주 커다란 개 한 마리. 아마도 썰매를 끄는 털이 푹신푹신 할 것 같은 잿빛의 덩치가 큰, 마치 프란다스 동화에 나오는 개 같았다.

흰동이는 묶인 채로 그리고 그 녀석은 약간 아래를 응시하며 나를 보고서는 금세 짖기를 멈춘다. 보아하니 험하고 꺼칠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워낙 개를 좋아하는터라 선뜻 손을 내밀며 ‘조이 반가워.’ 라고 일부러 친근감을 표시하였더니 금세 다가서서 나의 손을 혀로 살짝사알짝 핥는 것이 아닌가. 용기를 내어 그 녀석의 이마와 목덜미를 두 손으로 쓰다듬어주다 보니 털이 형편없이 뭉쳐있고 거칠하며 냄새가 고약하게 풍길 뿐 아니라 먹지도 못한 것이 돌보아 주는 이 없는 버림받은 개라는 생각이 든다.

이 녀석 한술 더 떠서 머리를 나의 가랑이 속으로 처넣고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고맙다는 표시를 하는 게 아닌가! 잠시 나는 흰동이의 그릇에다 사료와 물을 가득 넣어 주었더니 단숨에 먹어 치운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너무나 측은하다. 이윽고 이 녀석 제 집처럼 커다란 소나무 아래로 가더니 처억 들어눕는 것이다. 어느새 우리는 친구가 되었나 보다. 따사한 햇살은 저 녀석과 나 그리고 흰동이 우리 모두를 포근히 감싸며 무척이나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얼마 후 벽난로의 군고구마가 생각이 났다. 참나무를 지피며 잘도 익은 고구마를 마악 꺼내다가 아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머, 어디서 저렇게 큰 개가 들어왔어요? 거실의 창가 데크 위에 어느새 따라 들어왔는지 아주 편하게 누운 그 녀석을 나는 발견하고

“저 개는 버려진 개인가 봐요, 조금 쉬게 내버려 두어요.”

하였더니

“여보 당신은 눈이 나빠서 잘 보지 못하는 것 같은데 저 개는 허리가 굽어지고 뒷다리 가죽이 벗겨져서 징그러워 볼 수가 없어요.”

 하며 당장 경비실에 연락하는 것이 아닌가. 오랜만의 양지바른 곳이 안식처로 여겨졌던 이 녀석은 이내 달려온 경비아저씨의 호령과 막대기로 마구 치는 난리통에 두어 바퀴 정도 돌더니 하는 수 없이 쫓겨 나가고 만다. 마음속에서는 ‘저 녀석과 같이 살고 싶은데.’ 하며 마구 요동친다. 마음이 무겁다. 한참인가 어흐흥어흐흥 흐느끼는 소리가 난다. 가까이에서 집 주위를 돌며 계속 운다. 분명 그 녀석이 나를 부르는 소리다. 나에게 구원을 간절하게 청하는 소리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과연 어쩔 셈이냐, 네가 잘 돌볼 수 있니! 쩔쩔매기만 한 나는 역시 무기력한 존재. 앉아라, 앉아. 나는 곧 체념하고 만다. 그렇지 저 애절한 소리를 흘려버려야 하는 몰인정한 내가 무슨 사랑을 베푸는 자가 될 수 있을까? 만약 병들고 늙으신 노인이라면, 만약 나라면, 앞으로 여생은 사랑을 베풀며 살겠다는 나의 굳센 의지가 산산이 부서지는 참혹한 현장이다. 그 녀석은 멀리멀리 가 버리고 만 것 같다. 이내 경비가 쫓아오더니

 “그 개가 또 이쪽으로 오는 것 같았는데 어디로 갔나요? 그 개가 심하게 다친 것을 보니 뒷다리가 덫에 걸려 겨우 살아나온 모양인가 봐요. 배도 깡총 달라붙은 걸 보니 무척이나 굶었나 봐요.”

 

 그러는데, 못난 두 궁상은 얼굴만 바라본 채 멍청하게 서 있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아뿔싸 이게 웬일이야! 막차를 놓쳐 버려 집으로 돌아오는 차편이 없다. 바람마저 부는 몹시 추운 밤.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마저도 없다. 너무나 최악이다. 캄캄한 밤길을 조심조심 걸어가야만 된다. 아스팔트포장의 가장자리와 지면 사이의 경사진 곳을 감각으로 겨우 의지하여 걷고 있는데 그 마저도 잔설이 메워져 버려서 분간키가 매우 어렵다. 그야말로 온몸이 땀범벅이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떼는 것이 곡예를 하는 것 같다. 이편저편에서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어대는 바람소리 요란한 것이 꼭 나를 향해 쳐들어오는 것 같다. 게다가 세찬 바람에 낙엽 뒹구는 소리까지 한 몫 하여 정신을 혼돈케 한다. 어쩌다 길도 아닌 수풀 속으로 헤매었나 보다. 커다란 새들이 깜짝 놀라 푸드득하며 날갯짓 하는 소리에 내가 더 놀란다. 너무나 무섭다. 서 있다가 걷고, 걷다가 서고 귀로 소리를 듣고 발바닥으로 겨우겨우 걷는다.

 

 아마 커브길이었나 보다. 자동차의 소리가 갑자기 들리더니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나를 향하는 것이다. 나는 그 불빛에 정신을 잃은 듯 순간 빨려 들어가고 만다. 무의식중에 피한다는 것이 더욱 한 가운데로 향하였나 보다. 바로 그 때다. 자동차의 급브레이크의 높은 굉음이 나더니 ‘깨갱’ 하며 무언가의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온 세상이 꺼져버린 것 같다. 어둠어둠 몸을 가눌 수가 없다. 사방은 너무나 고요하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마구 흘러내린다. 싸늘하게 가지를 흔들어대는 바람 소리만이 일련이 사태를 지켜본 듯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윽고 자동차에서 내리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나에게 걸어오는 듯하다. 조용히도 뚜벅뚜벅 하며 멈춘다.

 

 “이 개가 아저씨의 개에요?”

 나는 ‘아니 개라니!’ 별안간의 사태에 어안이 벙벙하다. 떨리는 음성, 그리고 미안하다는 듯 ‘죽었네요.’ 한다.

 “갑자기 이 개가 뛰어들어 치고 말았지만 아저씨는 전혀 보지를 못하였어요. 하마터면….”

 하고 가쁜 숨을 내쉬며 말을 잇지 못한다.

순간 한 줄기의 차가운 바람이 내 뺨을 스친다.   아니 바로 그 녀석이! 불쌍했던 너. 얼마나 나를 원망했니? 너는 개가 아니고 역시 내 친구야. 미안하다. 면목이 없구나. 솟구치는 이 뜨거운 눈물, 친구야. 흐르는 이 눈물은 흘러 흘러 너 가는 길 함께 따라 갈 거야. 멀리, 저 머얼리. 친구야! 내 눈물일세. 뜨겁다 하지 말고 목이나 축이고 가세. 서럽고 불쌍한 너. 아프디 아픈 가슴 마냥 쓸어내리고만 있는데 맴돌던 바람이 축 처진 내 어깨를 살며시 떠민다. 그래, 부디 잘 가라. 배고픔도 없고 추위도 없는 곳, 그리고 아주 양지 바른 곳으로. 나도, 그도, 불쌍한 내 친구도 서로 염려하고 안녕하기를 약속하며 행복을 비는 고요한 이 밤. 바람아 너는 알고 있잖아. 이런 것이 사랑이라고. 때론 내 가슴이 식어버릴 때에 의지할 곳 없이 방황될 때 찾는 이 없이 외로워 눈물지을 때에 내 눈이 나의 눈이 점점 아파올 때면 바람아 부탁하자꾸나! 고맙고 미안했던 내 친구. 바람아! 꼭 꼬옥 네 등에 태워 찾아와 주렴.

 안녕. 안녕.


글: 남몽해(시각장애 1급)


- 월간 신춘문예 2006년 12월 호에서 발췌 -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테 - 이정희   (0) 2015.06.10
거미 - 배종필   (0) 2015.05.31
등 - 김은주  (0) 2015.05.25
빈방 - 김은주   (0) 2015.05.21
꽃이 지네, 사랑도 지네  (0) 2015.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