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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가?

Joyfule 2015. 4. 6. 08:11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가?

 

 

어떤 여행가이신 분이 책을 출판했는데, ‘바람의 딸이 책 제목이다. 바람처럼 가고 싶으면 배낭하나 달랑 메고 자유롭게 훌쩍 떠난다는 삶의 방식을 멋들어지게 표현했다. 그런 제목을 읽고 있으면 그런 사람이 부러워진다. 직장과 가정에 매어 제대로 된 휴가도 가지 못하고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고단하고 팍팍한 삶에 눌려 점점 지쳐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여행가의 책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 베스트셀러가 되는가 보다.

 

특히 크리스천이라면 보통의 세상 사람보다 더 옥죄는 삶을 살게 마련이다. 인생의 짐 위에 신앙의 짐을 지고 비틀거리며 살아가는 모습이, 딱 내가 그렇다는 생각이 퍼뜩 들지 않은가? 평일이면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분주하게 살다가, 주일이면 새벽부터 교회에 와서 예배와 봉사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가, 파김치가 되어 침대에 쓰러지면 어느새 월요일 아침이다. 그런 고단한 삶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신앙의 짐이 없는 세상 사람들도 사는 게 고단하고 팍팍한 데, 각종 예배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다양한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해야 하는 크리스천이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그림의 떡이 아닐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3:5)

 

그래서 혹시나 자유롭게 사는 게 무엇인지 성경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바람처럼 사는 사람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성령의 사람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성령의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 목표나 목적이 없이, 그저 바람이 자유롭게 부는 것처럼 성령의 뜻을 좇아 사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성령의 사람은 성령께서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넉넉하게 채워주시므로, 생계의 의무나 각종 인생의 짐을 훌쩍 벗어던지고 놀라운 능력으로 폼 나게 살아간다고 한다.

 

성령이 안에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당신이 바로 성령의 사람이 아닌가? 성경은 성령이 내주한 증거로 거듭나야 비로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고 한다. 그래서 성령이 안에 들어와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주일성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천국의 자격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으며, 고되고 힘들지만 교회에서 요구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와 예배행위를 묵묵히 해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생각은 당신의 착각일 뿐이다. 성령이 내주하는 성령의 사람은 인생의 짐을 죄다 벗어버리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그런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지 찬찬히 살펴보라. 아니라면 아닌 거고, 없다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주장이 그간 교회에서 들어온 설교와 너무 달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의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시 찾아보겠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8:26)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8:39)

 

위의 말씀의 주인공은 빌립집사이다. 유대인들이 화가 나서 스데반집사를 죽이면서 교회를 박해하자 사도들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피신하게 되었다. 빌립집사는 베드로와 함께 사마리아 성에 가서 귀신을 쫒아내며 질병을 치유하면서 복음을 전한다. 그러더니 성령께서 빌립에게 가사로 가라는 명령을 내려, 그는 가사에 가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며 세례를 주고, 다시 성령께서 빌립을 이끌어내서 어디론가 홀연히 데리고 간다.

 

빌립은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이 전혀 없이 살아가는, 전형적인 성령의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명령을 좇아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간다. 당신 안에 성령이 계시다고 여긴다면, 빌립과 자신을 비교해서 곱씹어서 생각해보라.

 

필자가 13여 년 전에 사역을 결심했을 때 필자의 생각이나 계획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원룸에 세를 얻어 교회를 시작할 때도 십자가도 간판도 내걸지 않았다. 그리고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면서 오직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생업을 버는 일을 내려놓고 전업으로 사역을 한지도 이제 겨우 두어 달 밖에 되지 않았다. 기도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바라보고 가고 있다. 처음 십여 년 동안에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깨달음을 통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분별했고, 3년 전부터는 영음을 통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

 

예전에 사역과 생업을 병행할 때나, 지금 전업으로 사역을 할 때나 똑같이 생계나 사역에 대한 부담은 없다. 주어진 일만 할 뿐이다. 보내준 양들에게 양식을 먹이고 귀신을 쫒아주고 기도훈련을 할 뿐이다. 언제까지 충주의 시골에서 있을지 모른다. 여기에서 있다가 천국에 오라면 그렇게 하겠고, 내일이라도 다른 일을 맡기신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필자의 계획이나 생각, 목적이나 목표는 없다. 그래서 대출을 얻어 교회나 기도원을 짓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의 사역을 언론매체에 광고하여 교인들을 부르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필자는 오직 하나님이 보내준 양들만 양육할 것이다. 왜냐면 필자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지금의 필자는 사역이 바빠져서 한가하지 않다. 그러나 부담은 없다. 필자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뿐이다.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내일을 걱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래서 필자를 찾아오는 양들과 서로 은혜를 나누고, 천국에서 그들과 함께 살날을 꿈꾸고 있다. 성령의 사람은 바람처럼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다. 사역을 시작하고 육체는 조금 고단했지만 영혼은 마냥 자유로웠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성령의 사람은 자유를 누려야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