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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각오 - 엄상익 변호사

Joyfule 2023. 3. 7. 01:42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변호사의 각오



변두리에 있는 한 자전거포에서였다. 빡빡깍은 머리에 낡은 츄레닝을 입은 사십대쯤의 남자가 기름 묻은 손으로 손녀 자전거를 고치면서 말했다.

“이 자전거포를 하는 데도 자기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어야 해요. 그게 있어야 고객한테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아요. 자존심을 꺽고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줬다고 그 사람이 내 고객이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그 말을 들으면서 얼마 전 한 변호사가 침울한 표정으로 내게 넋두리같이 하던 이런 얘기가 기억이 났다.

“어떤 여자가 상담을 왔는데 보니까 뻔히 질 사건이야. 그래서 맡지 않겠다고 거절했더니 그냥 증인 신청절차만 해달래. 그거야 못할 거 없지. 변호사야 법률서류를 써 주고 수수료를 받는 직업이니까 말이야. 그래서 그 일만 맡기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하고 증인 신청서를 써줬지. 그런데 며칠후 욕과 저주가 가득 찬 말도 안되는 글을 가지고 와 서 변호사 이름으로 제출하라는 거야. 거절을 했더니 그때부터 쌍욕을 하면서 행패를 부리는 거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돈 받아 쳐 먹고 변호사가 뭐하는거냐고 소리지르더라구. 그래서 내가 ‘변호사 사임계를 낼 테니 가쇼’라고 했더니 누구 마음대로 사임계를 내느냐고 덤비더라구.변호사마다 당사자한테 곤욕을 치르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거야. 형사사건은 차라리 간단해. 받은 돈을 돌려주면 되니까. 그런데 민사사건은 찐드기를 붙으면 이건 대책이 없어.”

변호사를 하다 보면 다양한 종류의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민사 법정에서는 소송을 제기당한 쪽을 피고라고 부르게 되어 있다. 재판장이 피고라고 부르자 “어따 대고 사람을 함부로 피고라고 불러?”하고 덤벼들다가 바닥에 뒹구는 사람도 보았다. 법 근처는 악에 받친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었다. 그들이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덤비면 변호사도 마음의 상처를 심하게 받기 마련이다. 

나 역시 여러명의 의뢰인과 다투기도 하고 싸움도 했다. 자전거포는 고장난 자전거가 왔다. 그러나 법률사무소에는 치료 불능의 정신병자나 짐승 수준의 영을 가진 존재가 찾아오기도 했다. 저질의 범죄인은 의식구조부터 다른경우가 있었다. 껍데기는 사람이지만 그 속에는 쥐의 영혼도 뱀의 영혼도 짐승의 영혼도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범죄는 파충류가 무심히 벌레를 잡아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과장일까. 

변호사에 대한 인식도 간단했다. 돈만 주면 자판기 같이 형이 감경되거나 풀려날 것으로 여겼다. 그러다 자기 예상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사무실을 찾아가 변호사의 허벅지에 회칼을 박아넣기도 했다. 쇠 파이프로 검사의 뒷통수를 친 경우도 있다. 석궁을 들고 판사의 아파트를 찾아가 쏜 사건도 있었다. 

저질의 범죄인 반대편에 최고급 지능범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학력과 경력을 갖추고 대통령, 총리, 장관, 의원등 그럴싸한 겉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악취가 배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한 기업가가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막판에 절실했던 그는 도움을 받기 위해 장관이나 정치인을 찾아 다닌 것 같았다. 그 기업인은 자신이 정치자금을 준 대통령에게 스무번 이상 개인접견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막판에 그는 그가 뇌물을 준 몇 명을 유서에 적어놓고 목을 매달았다. 그 명단에 들어있던 뇌물을 먹은 사람들은 다 무죄로 살아났다. 증언을 했던 한 사람이 나중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뇌물을 전달했어요. 증뢰죄로 처벌받을 각오를 하고 돈 준 사실을 진술했는데도 내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뒤로는 협상이 들어오는 거예요. 직접 준게 아니고 보좌관에게 준 걸로 해달라고 말이죠. 그러면서 뇌물을 준 일시와 장소만 다르게 말해달라고 하기도 하고 말이죠. 자기네 들이 국내에 없을 때로 진술해 주면 판사가 무죄를 만들기 쉽다고 하면서.”

그들은 어쩌면 파렴치범보다도 나쁜 놈일 수도 있었다. 

아래부터 위까지 그런 악령으로 가득 찬 시궁창 속에서 변호사업을 해 왔다. 자전거포 주인이 말한 대로 변호사도 나름대로 원칙을 가져야 악마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하나님께 굶어 죽을 각오, 맞아 죽을 각오, 벌 받을 각오를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었다. 돈에는 악마의 낚시바늘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폭력의 두려움에는 맞아 죽을 각오가 방패였다. 용기 있는 말과 글의 뒤에는 벌 받을 각오가 필요했다. 그래도 그분의 은혜로 지금까지 생존해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