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봄은 전보도 안 치고 ㅡ 김기림

Joyfule 2009. 3. 9. 02:32
 
      
      
      봄은 전보도 안 치고 ㅡ 김기림   
      아득한 황혼의 찬 안개를 마시며
      긴―말 없는 산허리를 기어오는
      차소리
      우루루루
      오늘도 철교는 운다. 무엇을 우누.
      글쎄 봄은 언제 온다는 전보도 없이 저 차를 타고 도적과 같이 왔구려
      어머니와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골짝에서 코고는 시냇물들을 불러 일으키면서…….
      해는 지금 붉은 얼굴을 벙글거리며
      사라지는 엷은 눈 위에 이별의 키쓰를 뿌리노라고
      바쁘게 돌아다니오.
      포풀라들은 파―란 연기를 뿜으면서
      빨래와 같은 하―얀 오후의 방천에 늘어서서
      실업쟁이처럼 담배를 피우오.
      봄아
      너는 언제 강가에서라도 만나서
      나에게 이렇다는 약속을 한 일도 없건만
      어쩐지 무엇을―굉장히 훌륭한 무엇을 가져다 줄 것만 같애서
      나는 오늘도 괭이를 멘 채 돌아서서
      아득한 황혼의 찬 안개를 마시며
      긴―말이 없는 산기슭을 기어오는 기차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