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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맛~ 서툰 주례 - 목필균

Joyfule 2012. 12. 5. 09:24

 

사람 사는 맛~ 서툰 주례 목필균

 


 

  살다보면 참으로 뜻밖의 일과 마주칠 때가 있나보다.
  지난 10월 11일(토) 오후 2시 20분. 동방웨딩타운에서 주례를 보았다.
  정말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거절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일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올 7월. 교육청과 인터넷 추적을 통해 갑자기 연락이 왔던 제자 임도영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 나를 세웠다.


  20년 전. 서울월곡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일 때, 특별히 기억에 남도록 잘 해준 일도 없는데 임도영은 이제까지 성장하면서 나를 생각하고 기억해 주었다는데 감동을 주었다. 교사는 이럴 때 보람을 느낀다. 요즘같이 교사들의 교권이 추락하고 학교 붕괴의 길로 치닫고 있는 때에는 어쩌면 희귀한 일로 기록될 지도 모른다. 더구나 1학년 때 도영이는 내게 무엇을 그리도 가슴에 새길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일까? 그저 그렇게 생각해준 제자가 대견할 뿐이었다.
 
  그런데 9월 23일 자기 신부감을 보여주겠다고 한 자리에 나갔다가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결혼식에 주례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난 처음에 너무 어이없어 했다. 아니 20년만에 만난 나를 두 번 째 보는 자리에서 주례를 부탁하다니 펄쩍 뛰며 거절했다. 그런데 신부될 이한나양이 더 적극적으로 부탁하는 것이었다. 7년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늘 선생님 말씀을 하면서 자기는 꼭 목선생님을 만나서 주례말씀을 들으며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친구들에게도 이야기가 되었다고 거절하시면 안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나 지명도도 없고, 무엇보다도 주례가 여자라는 사회적 통념을 깨는 일이 부담스러워서 극구 사양을 했다. 그러나 하도 간곡히 부탁하기에 그럼 고민해보겠다고 하고 청첩장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어느 면으로나 주례로서 부족한 나를 초대하는 철없어 보이는 두 젊은이가 준 청첩장 속의 초대의 글을 보고 난 반승락을 하고 말았다.
 
  『둘이 하나로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저희가 이제 그 쉽지않은 길에 첫발을 내딛으려 합니다.
  상처받고 고단할수록 땀 흠뻑 젖은 몸으로
  부둥켜안고 살아갈 서로의 모습을 믿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렇게 다짐합니다.
  항상 '처음처럼' 그 느낌, 그 마음같이 살아가겠다고…….
  그래서 오늘, 우리의 출발은 희망이고 싶습니다.』
 
  이런 각오로 결혼을 한다면 철부지들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생각없이 내게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이 갔다.
  그리고 도영군의 어머니와 통화를 끝으로 결국 승낙을 하고 말았다.

도영이 어머니께서는 도영이의 소원이니 들어주시고,

자기도 여자 목사를 꿈꾸며 열심히 전도활동을 하는 전도사지만 도영이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하셨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난 주례석에 섰다.

2주일 동안 고민해서 쓴 주례사를 읽으며 코앞에 서있는 신랑신부의 진지한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그래 명심하고 잘 살아라.하는 마음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큰 실수없이 결혼식이 끝나고 난 안도의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여자 주례라고 하객들의 주의집중이 잘 되었던 결혼식, 양가 부모님께서 모두 잘 해주셨다고 하시니 정말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조금 쉬려니 전화가 왔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랑신부의 전화였다.
  "선생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녀와서 인사드릴게요."
  '그래 잘 다녀오너라. 너희들 덕분에 살면서 특별한 경험도 했구나.'

하는 마음에 웃으며 전화 배웅을 했다.
 
  사람 사는 맛이란 이렇게 뜻하지 않은 일도 첫경험으로 해보는 것에도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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