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울타리 - 주영준

Joyfule 2012. 12. 6. 10:40

 

 

 울타리 - 주영준

우리 아파트와 뒤 아파트단지 사이에 통로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저녁 산책을 그쪽으로 나갔다. 뒤 아파트의 상가가 바로 보이는 곳의 철조망을 한 칸 걷어내고 정식으로 출입문이 나 있었다.

나는 그 출입문을 지나 상가 앞까지 걸으면서 지난 일을 회상했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아파트는 아직 상가가 작아서 뒤 아파트상가를 이용했는데 아이들이 철조망을 넘어 다녔다. 그 아이들이 철조망에 걸려 옷이 찢어지고 몸에 상처를 입고해서 주부들은 통로를 내달라고 반상회에서 여러번 건의했지만 울타리는 단지의 경계라고 번번히 대표자 회의에서 부결을 당했다.

그 후 근처에 상가들이 생겨서 이 문제는 해결이 되었는데 왜 새삼스럽게 이제 통로를 냈느지 궁금했다. 다음날 만난 소장은 요새는 개방시대니까 양쪽이 합의해서 냈다고 간단히 말했다. 개방시대와 울타리의 관계는 무엇인가.

울타리는 경계의 표시이며 외부 사람의 침입을 막고 안에 있는 사람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보호한다. 서양식 주택은 튼튼한 벽으로 쌓여 출입문만 닫으면 밖과 차단되고 보호되지만 우리 한국가옥은 개방식이어서 울타리가 없으면 민망하게도 집안이 전면 노출된다. 그러므로 강아지도 쉽게 구멍을 뚫고 드나드는 우리 울타리는 외부인의 칩입을 막기 보다 노출된 내부를 살짝 가려서 집의 외관을 갖추고 외래인과의 체면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다

울타리를 침으로써 집안 분위기가 아늑해지고 가족적인 정을 느끼게 된다. 우리 선조들은 기와집에는 담을 쌓고 초가에는 개나리, 무궁화, 백랍나무(쥐똥나무)등을 심어 생울타리를 치거나 억새같은 키 큰 풀이나 나뭇가지를 엮어 울타리를 둘렀다. 이 울타리에는 호박 울타리 콩이 열리고 나팔꽃 능소화가 꽃을 피우며 잠자리도 쉬었다 가는 한국적이고 서민적인 정서가 흐르는 삶의 테두리였다.

우리는 이 울타리 안에서 3대 4대 가 오손도손 함께 살면서 화목하고 협력하고 혈연의 정을 다지며 살아왔다. 또 울타리의 품안에서 겸손하고 양보하며 장유유서의 질서를 익히고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포근한 감성을 기르며 성숙해 왔다. 이 울타리에 붙어있는 사립문은 항상 반쯤 열려 있어 누구나 언제나 드나들 수 있게 개방되어 오는 사람을 거부하거나 배척하는 일 없이 너그럽게 맞아들였다.

그런데 근래 아파트 빌라등 주거양식이 바뀌어 시골에서도 토속적인 가옥이나 울타리가 사라지고 대형 아파트 단지가 생겨 철조망 울타리를 두른 안에서 살게되니 옛날 울타리가 그리울 때가 있다. 울타리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 사이에도 울타리가 있다.

자녀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부모는 자녀의 울타리요, 노쇠한 부모를 봉양하는 자녀는 부모의 울타리가 된다. 또 학문 취미 친목 그리고 직장이나 사회단체 등 크고 작은 동아리들이 각각 울타리를 치고 모인다. 울타리 안에서 서로 도우며 순수한 모임의 취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한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런데 많은 울타리들 중에는 배타적으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힘을 모으고 사회질서를 역행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웃간의 친화를 깨고 질시를 받는 일이 있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우리문단에도 동아리가 많다. 나라도 이웃도 개방으로 가는 시대에 우리 문단도 크게 통로를 트고 문학에 충실하고 순수한 문학인으로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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