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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무덤교회(Samuel Tomb, 미스바언덕)

Joyfule 2016. 4. 13. 09:59

 

사무엘 무덤교회(Samuel Tomb, 미스바언덕)

 

Gibeon, 기브아, 라마                         (출처- http://bibleatlas.org/full/gibeon.htm)

 

사무엘 (히, Shmu?el)    (글- daum 백과사전)

 

BC 11세기경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이스라엘 역사의 종교적 영웅이다. 〈구약성서〉에서 당시 유대인 남자가 맡을 수 있었던 지도자 역할(선지자·제사장·사사·예언자·군대지휘관)을 모두 맡은 인물로 등장한다. 가장 뛰어난 점은 왕정(王政) 수립과정에서 한 역할이었다. 사무엘에 관한 정보는 〈사무엘 상〉에 실려 있다. 2권의 책에 사무엘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해서 그가 이 책의 저자(실제로 그의 죽음이 〈사무엘 상〉 25장에 언급되어 있음)나 주인공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어떤 의도로 이 책에 그러한 명칭을 붙였는지 추론하기는 어렵다. 사무엘은 엘카나(에브라임 지파 출신)와 한나의 아들로서, 자녀를 낳지 못하던 어머니의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으로 태어났다. 한나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아들을 실로의 주요성소에서 봉사할 사람으로 봉헌(奉獻)하도록 제사장 엘리에게 맡겼다. 이곳에서 소년 사무엘은 엘리의 가문이 몰락할 것을 예언하는 계시를 받았다(Ⅰ사무 1~3). 어른이 되었을 때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에벤에젤에서 팔레스티나인(불레셋)사람들을 크게 무찔렀다(I사무 1~3). 그뒤 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을 세우자고 제의하자 사무엘은 이를 하느님 야훼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충으로 간주하고 분개하면서 거절했다(8). 그러나 야훼의 계시를 받은 뒤,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온 이스라엘 앞에 왕으로 세웠다(9~10). 사울은 이스라엘 군대를 효과적으로 지휘하여 암몬군을 무찌름으로써 왕의 자질을 입증했다(11). 이런 일이 있은 후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났다(12). 그러나 뒤에 다시 등장하여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야훼의 계시를 선포했다. 그 이유는 사울이 제사장의 권한을 가로챘고(13), 그가 아말렉 사람들에 대해서 내린 금지법(대체로 사람이나 물건을 죽이거나 파괴함으로써 신에게 바치는 원시법)을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15). 사무엘은 야훼의 계시에 따라 비밀리에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다(16). 그뒤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얼마 뒤 나욧 성소에 나타났다(19). 죽은 뒤 사울의 요청으로 무당이 불러내자 혼백으로 나타났다. 이때 사무엘의 혼백은 3번째로 사울에 대해 배척을 선언했다(28).

 

사무엘에 관한 상충되는 전승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등장하여 전쟁을 수행하고 법을 시행하는 면에서 지도력을 행사했다. 그의 권위는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것이며, 어느 정도 제사장적 권위도 포함했지만 대체로 예언자적 권위였다. 〈사무엘〉에 보면 그는 처음에는 왕정에 반대했다가 나중에는 찬성하며, 야훼를 대변해 사울과 다윗을 왕으로 임명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확실하지 않다. 수많은 비평 사가(史家)들이 그랬듯이 사무엘의 역사와 이 역사가 보존되어 있는 자료 모두를 면밀히 분석해 보면 의문을 일으키는 모순이 드러난다.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현재 남아 있는 자료의 어느 것도 그 안에 담긴 사건들과 같은 시기의 것이 아니다. 만일 한 자료를 주된 것으로 받아들일 경우 다른 자료들은 모든 역사적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2가지 주요차이점은 비평가들이 '친왕정'(promonarchic)자료라고 부르는 본문들(Ⅰ사무 9:1~10:16)과 '반왕정'(anti-monarchic)자료라고 부르는 본문들(Ⅰ사무 8, 10:17~27)에 있다. 여기서 '자료'라는 단어의 뜻은 재구성할 수 있는 가설 문서라기보다는 전승을 가리킨다. 친왕정 입장에서 쓴 사울의 즉위 이야기에서 사무엘은 무명의 시골 선지자(독특한 초자연적 증거와 함께)로 등장한다. 또한 사무엘에게 계시된 야훼의 뜻에 따라 왕정이 수립되고 왕이 선출된다. 그러나 기름을 붓는 이야기에서 사울이 왕으로 즉위하는 내용 대신 사울이 암몬군을 물리친 이야기가 나온다. 자세히 검토해 보면 이것은 기름을 붓는 의식을 하지 않고 사울이 즉위한 이야기임이 드러난다. 사울은 판관들(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지도자들)이 무용(武勇)과 지도력을 탁월하게 발휘하여 선출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왕이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사무엘의 등장은 매우 어색하다. 사무엘〉에서 반왕정 자료는 왕권·사울·사무엘에 관해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당시에는 불확실한 용어)에 알려진 인물로 등장하며 판관이라는 지위에 근거하여 권위를 행사한다. 왕정 수립은 신의 계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원로들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고 사무엘은 이들의 요청을 야훼에 대한 반역으로 취급한다. 왕은 신의 선택이 아닌 제비뽑기로 선출되는데, 이것은 왕이 될 사람에게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았음을 뜻하며, 이 수줍은 왕 후보자 사울은 숨어 있다가 부름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7장과 12장의 판관 사무엘의 이야기와 연관되며, 여기서 사무엘은 분명히 마지막 판관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판관체제를 배척한 이유에 대해서도 그 체제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 전승에는 2가지 의문점이 있다. 즉 사무엘은 군대 지휘관과 영구적인 통치자를 겸한 유일한 판관이라는 점과 7장에서 그가 필리스티아를 무찌른 것은 역사적 사실일 수 없다는 점이다. 비평가들은 사무엘의 탄생과 소명(召命) 이야기에는 비(非)역사적인 특징들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전설로 간주한다(→ 색인:유대교). 이 기록은 예언자로서의 사무엘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지만, 이 시기에 예언자가 유명한 종교 지도자로 등장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만하다. 이 이야기는 또한 사무엘이 제사장의 역할을 담당했다는 후대의 기록(Ⅰ역대 6)의 기초가 되며, 이는 사무엘이 행한 종교적 역할을 후대의 제사장직에 비추어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버림을 받는 이야기에도 2가지 전승이 있다. 첫번째 이야기(Ⅰ사무 13)에서는 사울이 제사장의 특권을 가로챈 일이 동기가 되는데 그당시 왕의 권력이나 제사장의 특권에 대해 이처럼 상세히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번째 이야기(Ⅰ사무 15)에서는 사울이 성전(聖戰)의 윤리를 지키지 못한 일이 동기가 된다. 이 이야기는 첫번째 이야기보다 신빙성이 있다. 사건의 자세한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사울과 사무엘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는 확실한 전승이 있었던 것 같다.

 

사울을 축복하는 사무엘 (삼상9:21)

 

"21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사무엘     (출처- http://cafe.daum.net/0326788618/Gjtv)

 

사무엘은 최초의 왕 사울에게 즉위의 기름을 부었고(삼상 10:1) 또 가장 위대한 왕 다윗에게도 기름을 부었다(삼상 16:13). 이 그림은 프란치 A. 마울 벨트쉬가 그린 것으로 (다윗의 기름 부음)이다. 18세기 뉘른베르크 국립미술관 소장.

 

사무엘의 일생              (출처- http://cafe.daum.net/junbang413/GOH6)

 

사사시대 300-400년, 즉 주전 1500년대에 모세가 활동했으니 사무엘은 1150-1050년대(왕정시대, 사울, 다윗 왕가 -역대 하- 제왕까지 1095-586년)의 일이 된다.

 

사무엘 무덤교회               (출처-http://wwwnoel.blog.me/140132923163) 

 

비잔틴 시대의 처음  교회가 파괴 된 자리에 1157년 건축된 십자군 시대의 교회이다. 현재는 회교사원으로 사용중이다. 사무엘은 본래 라마에 장사 되었고 이곳은 가묘이다. 사무엘이 죽다 (왕상25:1)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

 

사무엘 무덤교회               (출처-http://wwwnoel.blog.me/140132923163) 

 

사무엘 무덤 교회              (출처-http://huntsmansintheholyland.blogspot.kr/2012/01/jerusalem-overlook-field-trip.html) 

 

사무엘 무덤교회               (출처-http://blog.daum.net/keunsik/12028608)  

 

사무엘 무덤교회               (출처-http://blog.daum.net/keunsik/12028608) 

 

사무엘 무덤교회                   (출처- http://cafe.daum.net/millall7488) 

 

사무엘 무덤교회               (출처-http://wwwnoel.blog.me/140132923163)  

 

사무엘 무덤교회                (출처- iloveoti.com/bbs/view.php?id=8&no=222) 

 

사무엘 무덤교회                (출처-http://blog.daum.net/keunsik/12028608) 

 

사무엘 무덤교회                (출처-http://blog.daum.net/keunsik/12028608) 

 

사무엘 무덤교회         (출처-http://blog.daum.net/keunsik/12028608) 

 

사무엘 무덤교회               (출처-http://wwwnoel.blog.me/140132923163) 

 

사무엘 무덤교회               (출처-http://wwwnoel.blog.me/140132923163) 

 

사무엘 무덤               (출처-http://huntsmansintheholyland.blogspot.kr/2012/01/jerusalem-overlook-field-trip.html) 

 

사무엘 무덤               (출처-http://huntsmansintheholyland.blogspot.kr/2012/01/jerusalem-overlook-field-trip.html) 

 

사무엘 무덤               (출처-http://huntsmansintheholyland.blogspot.kr/2012/01/jerusalem-overlook-field-trip.html) 

 

사무엘 무덤               (출처-http://wwwnoel.blog.me/140132923163

 

사무엘 무덤               (출처-http://wwwnoel.blog.me/140132923163) 

 

비잔틴 시대 유적, 미스바 언덕              (출처- http://cafe.daum.net/millall7488)

 

미스바언덕은 오늘날 텔 엔 나스베이다. 이곳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경제지역에 있던 요새였다. 또한 이곳은 전 이스라엘의 기도와 경배의 장소였다(삿20-21장) 사무엘은 이곳에 온백성을 모이게 하여 민족적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종교개혁을 시도하였다. 온 백성이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는 하늘보좌에 상달되었고 하나님의 권능 앞에 블레섹이 패주하는 [에벤에셀]의 기적을 낳았다. 블레셋을 물리침으로써 명실상부한 민족지도자로 인정받은 사무엘은 하나님께 받은 능력과 경건하고 청렴한 삶을 통하여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나라를 통치하였다. 그런데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의 안정만을 위해 열심을 내는 사무엘은 그의 가정에는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 사무엘의 아들들의 타락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서 등을 돌리고 왕을 요구하는 구실이 되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백성들의 배척을 받게 된 것이다. 엘리의 뒤를 이은 제사장으로서 또한 선지자와 사사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보자가 된 사무엘은 이스라엘 전역을 두루 다니며 율법을 가르치고 우상숭배로부터 돌아설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킨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을 주축으로 미스바에 모여 나라와 민족을 위한 대 금식성회를 열어 기도하였다. 온 백성이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는 하늘보좌에 상달되었고 하나님의 권능 앞에 블레섹이 패주하는 [에벤에셀]의 기적을 낳았다. 블레셋을 물리침으로써 명실상부한 민족지도자로 인정받은 사무엘은 하나님께 받은 능력과 경건하고 청렴한 삶을 통하여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나라를 통치하였다. 그런데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의 안정만을 위해 열심을 내는 사무엘은 그의 가정에는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 사무엘의 아들들의 타락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서 등을 돌리고 왕을 요구하는 구실이 되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백성들의 배척을 받으면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중보기도를 쉬지 않는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택하신 사울에게 통치권을 넘기고 제사장과 선지 자로서의 직무만을 수행하게 된 사무엘은 항상 백성들이 행복하기를 기원 하였다. 이러한 사무엘의 애국심은 사울의 타락 앞에 이스라엘의 진정한 새지도자를 구하는 열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결국 사무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주었고 이를 시기하는 사울로부터 다윗의 생명을 보호하기도 하였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왕 사울과 새로운 왕으로 부상하는 다윗의 갈등이 계속되는 와중에서 사무엘은 고향인 라마로 돌아가 선지학교를 세워 후진양성에 힘썼다. 평생토록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으로서 [기도]와 [순종]의 삶을 살았던 사무엘은 고향에서 평안히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다. 비록 이스라엘의 안정과 번영을 보지 못한채 사무엘은 죽었으나 그를 통해 펼쳐진 하나님의 뜻은 그의 사후에 아름답게 결실하였다. 자신을 배척한 백성들을 위하여 축복한 사무엘의 민족애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오늘날 무질서와 폭력으로 혼란된 이 세상은 사무엘이 보여준 [하나님의 사랑]이 실천될 때 행복이 넘치는 아름다운 사회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출처- http://cafe.daum.net/0326788618/Gjtv)

 

비잔틴 시대 유적, 미스바 언덕              (출처- http://cafe.daum.net/millall7488)

 

비잔틴 시대 유적, 미스바 언덕              (출처- http://cafe.daum.net/millall7488)

 

기브온 산당 터,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던 산당 터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비잔틴 시대 유적, 미스바 언덕                 (출처-http://blog.daum.net/keunsik/12028608)  

 

비잔틴 시대 유적, 미스바 언덕                 (출처-http://blog.daum.net/keunsik/12028608) 

 

비잔틴 시대 유적, 미스바 언덕                  (출처-http://blog.daum.net/keunsik/12028608) 

 

사무엘 무덤에서 바라보는  기브온 산지, 베냐민 평지                   (출처-http://blog.daum.net/keunsik/12028608)